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김해 백운대 고분에서 불꽃놀이 구경은 어떨까?

천부인권 2010. 9. 1. 10:42

 

 

 

처음 찾아가 본 ‘김해 구산동 백운대 고분’은 대성동 22-2번지에 있는데, 어떻게 구산동이란 명칭이 생겼는지 궁금했다. 김해시가 도로를 내고 토지구획 사업을 하면서 이 고분이 구산동 고분과 상관없이 뚝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과거에는 구산동 고분과 연결된 동일 선상의 구릉에 있었기에 실제 동(洞) 이름은 대성동이지만 구산동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째거나 대성동 입장에서는 유적지 이름하나를 잃은 꼴이다.


공원처럼 꾸며놓은 ‘김해 구산동 백운대 고분’은 김해시와 김수로왕릉, 허왕후릉(許王后陵)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이곳이 가야문화축제 행사가 진행되는 대성동고분군을 잘 볼 수 있어 개막식의 화려한 불꽃놀이를 전망할 수 있는 최적의 전망 장소라 한다. 2011년 4월에는 가야문화제에도 참가하고 불꽃놀이 구경을 이곳에서 해볼까?

 

 

 

이 고분이 김해시에서는 드물게 보는 봉토분(封土墳)이라 소개한 것은 금관가야시대에 다수의 무덤은 나무 널을 써서 목관묘(목곽묘)로 무덤을 만들어 따로 흙을 쌓는 봉분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굴식 돌방무덤은 돌을 쌓아 방처럼 만들어 놓고 통로를 만들어 시신을 넣을 수 있게 한 무덤으로 삼국시대 후반에 널리 유행하는 양식이다. 따라서 이 무덤의 주인공은 가야인이긴 하지만 신라의 신하로서 가야 땅을 다스린 사람 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김해 구산동 백운대 고분(金海 龜山洞 白雲臺 古墳)
경상남도 기념물 제223호
김해시 대성동 21-2

 

이 고분은 김해시 동북쪽 분산성(盆山城)의 서남쪽 기슭에 있는데, 김해시에서는 드물게 봉토분(封土墳)의 현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허왕후릉(許王后陵)과 김해 향교 뒤편 백운대 구릉에 걸쳐 모두 4기의 고분이 확인 되었다. 이 고분은 원래 사적 제75호였던 김해 구산동 고분군의 일부였으나, 동상. 대성 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하면서 1999년 8월 3일에 경상남도 기념물 223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1기는 1919년에 발굴되어 삼산리(三山里) 1호 분으로 불리고 있으며, 1997년에는 부경대학교 박물관에서 백운대 구릉에 위치한 또 다른 1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된 2기의 고분은 모두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며, 둘레돌(護石)과 부장석곽(副葬石槨), 딸린무덤(陪墓) 등을 갖추고 있다. 무덤안의 구조와 유물의 상태로 보아 2차에 걸쳐 추가장이 이루어 졌음도 확인되었다. 이 무덤에서는 금동제 장신구를 비롯하여 각종 토기와 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구조와 출토 유물로 보아 이 무덤은 기원 후 6세기 말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허왕후릉과 구지봉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남쪽 방향에는 김해시와 김수로왕릉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