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낙동강과 회천이 만나 오광대 발상지 밤마리를 만들다.

천부인권 2010. 10. 22. 10:02

 

 

 <낙동강 사업으로 몰락의 길로 가는 마을에는 생존권 보장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회천(會川)은 해발 1,430m의 가야산 서북쪽 사면을 흘러내려 증산면과 성주댐을 지나 성주군 벽진, 수륜면 등을 거쳐 흐르는 대가천과 가야산 국립공원을 거쳐 흘러내리는 소가천을 품고, 해인사를 끼고 흐르는 가야천과 고령에서 물줄기를 모아 큰 지류를 형성한다하여 회천(會川)이라 불린다. 이 회천이 태백시 황지에서 발원하여 민족과 함께 해온 낙동강과 만나는 곳이 합천군 덕곡면 밤마리(栗旨)이다. 밤마리나루터는 70년 전만해도 낙동강 수운의 중심지로 창녕, 합천, 고령의 교역중심지로 하루에 수없이 많은 배들이 낙동강을 따라 드나들던 곳이다.
낙동강을 따라 움직이는 상권이 이곳 밤마리(栗旨)나룻터를 중심으로 해서 창녕, 합천, 고령 사람들이 모여 1일과 6일에 큰 장을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큰 장이 열리니 자연 광대들이 모였고 장터에는 자연히 오광대의 연희가 펼쳐졌다.


 

 

<회천둑에서 바라본 율지마을>

 

오광대의 유래


전설에 따르면 350여년전 대홍수 때 큰 나무궤짝 하나가 이곳 밤마리에 떠내려 와 마을 사람들이 건져서 열어보니 궤짝 속에는 많은 가면과 ″영노전초권″이라고 하는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당시 마을에는 전염병과 재앙이 그치지 않으므로 좋다는 방법을 다 해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나 어떤 사람의 말대로 탈을 쓰고 그 책에 쓰여 있는 놀음을 하여 보았더니 이상하게도 재앙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탈을 쓰고 연극을 해왔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오광대 가면극은 산대(山臺) 가면극이 점차 연극으로 발전되었다. 낙동강 물류의 중심지인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밤마을)에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흥행단이 흘러 들어온 가운데 합천군 초계(草溪)를 근거지로 한 일파(一派)가 형성되어 탈놀음을 하면서 인근(隣近) 지역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낙동강을 따라 오가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 밤마리의 오광대놀이를 보고 많은 곳에 전파(傳播)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광대  놀이는 밤마리가 발상지라 하는 것이며, 이 탈놀음이 오광대라고 불리는 것은 이 놀음의 첫 과장(科場)이 다섯 광대가 등장하면서 시작되므로 이름이 붙어지게 되었다.

 

탈춤내용

 

제1과장(오방신장무):오방(동방,서방,남방,북방,중앙)신장은 다섯방위를 나타내며 중앙신인 황제장군이 사방신을 다스려 마을에 사악한 것을 쫓아내며 굿거리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며 화합하여 안녕을 비는 오방무이다.
제2과장(중과장):도를 많이 닦은 노승이 속세의 연정에 이끌려 제물댁을 유혹하는 타락과 파계를 풍자함.
제3과장(양반과장):말뚝이가 양반의 근본을 낱낱이 폭로하며 비인간적인 추악상을 들추어 내어 양반들의 권세와 평민에 대한 천대, 멸시를 강하게 비판하며 조롱한다.
제4과장(영노과장):상상적동물 영노(이무기)가 나타나 양반을 잡아먹으려 하자 자신의 신분까지도 부정하며 서로 대결한다.
제5과장(할미영감과장):본처와 첩사이의 관계로 인한 갈등에서 오는 가정비극. 본처의 죽음으로 가정의 소중함과 인생 무상함을 표현.
제6과장(사자무):사자가 담비를 잡아먹고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한바탕 노는 무언극이다.

 

 

 <활인대와 당산나무(회화나무를 심어 두어 신령한 힘을 빌리려 했음을 엿보게 한다.)>

 

율지 활인대 복원 기념비(栗旨 活人臺 復原 記念碑)


마을 당산나무 아래 2005년 4월에 세워 둔 율지 활인대 복원 기념비(栗旨 活人臺 復原 記念碑)에는 『이곳 율지마을은 낙동강변에 위치하여 마치 섬과 같아서 홍수로 만약 강물이 크게 넘치면 마을 사람들이 지극히 위험한지라 1817년에 초계군수 이면대(李勉大)와 마을대표 변광주(卞光柱)가 경상감영에 호소하여 감영으로부터 밭 세석지기를 지원 받아 그 땅을 높게 쌓았더니 1856년 6월에 대홍수가 밀려와 강변의 다른 마을 사람들은 큰 재앙을 당했으나 율지의 천여명은 이곳에 올라 목숨을 구했으니 활인대(活人臺)라 하였도다.
그 후 세월이 오래되어 활인대 또한 무너져 훼손되어 마을대표 송학봉(宋鶴鳳), 하진오(河進五)가 초계군수 윤치원()과 상의하여 활인대 개축을 애원하는 호소문을 널리 알리니 수백냥의 성금이 모여 완전하게 다시 쌓았도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깊은 세월에 다시 허물어 졌는지라 마침 문화광관부와 전국문화원연합회가 이곳 율지마을을 영남지역 오광대문화의 발상지로서 문화. 역사마을로 지정하고 2003년부터 합천문화원에서 1차사업 1억 1천 5백만원으로 상징조형물 건립 등 다양한 문화사업을 추진하여 시행하던 중 2005년에 2차 사업으로 4400만원을 들여 이 활인대를 처음처럼 온전히 복원하노니 사람을 구한 큰 은혜를 훗날까지 잊지 않게 되기를 바라노라.』고 적어 두었다.

 

 

<밤마리 주막촌을 건립하여 관광객 유치에 힘쓴 흔적도 보이고, 마을 담장에 그림도 그렸다. 활인대에는 선정비 등이 세워져 있어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율지마을 서낭당

 

이곳은 율지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광대 탈놀이 행사 전 광대일파들이 이곳에서 서낭제를 올렸다고 전해지며, 광대패들이 들고 다녔던 “서낭당 각시”의 원조 모태가 되지 않나 추정하고 있다.
현재 대나무로 된 서낭당 깃발이 이 마을에 있고 다른 한개는 인근 북동마을에 소재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어 상당히 뜻 깊은 곳이기도 하며 지금도 마을에서 신성시 되고 있는 곳이다.

 

 

<오광대 탈춤 그림을 담장에 그렸고 오광대 전수관도 있다.>

 

당산제 고유문

 

2009년 7월 율지마을 동민이 새겨 둔 ‘당산제 고유문’에는『유세차 년 월 일 유학 감사고우 감히 당산신께 고하나이다. 그 위엄은 두려워 할만하고 징험이 밝으시니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립니다. 감응이 매우 밝으시니 주민들을 보우하여 주옵소서. 호구는 해마다 증가하고 경사는 날로 이루게 하소서. 사특한 마귀는 쓸어 제거하시고 아름다운 복록을 내려 베푸소서. 마을 남여노소는 무병장수하게 하시고 세업으로 전해오는 재물은 가옥을 윤택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같이 좋은 날에 제사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드립니다. 진실로 신의 보우에 힘입게 해주실 것을 기원하면서 공손히 음식과 잔을 드리오니 음향하시고 안락하게 하여 주소서.』라 기록해 두었다.

 

 

 

<이곳이 오광대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기념물>

 

밤마리 오광대 기념물


이곳 합천군 덕곡면 율지(밤마리)마을로서 2003년 전국 문화원연합회가 문화역사마을로 선정하고 합천문화원이 본 사업을 추진하였다.
합천오광대 역사를 재현하고 수로교통이 발달한 낙동강포구에서 남부형 탈춤이 발상되었음을 널리 알리고자 탈춤조형물과 나룻배 모양을 제작 설치하였다.
탈춤 조형물은 오광대 6개 과장으로써 오방신장무과장, 중과장, 양반과장, 영노과장, 할미영감과장, 사자무과장 등을 관광객들이 공연장면을 관람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