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고성 남산에 있는 보광사 유형문화재를 찾아보다.

천부인권 2010. 11. 6. 10:36

 

 

 

풍수적으로 옛 고을들은 마을의 뒤쪽에 진산을 두고 앞에는 남산을 두어 바람이 직접적으로 마을로 오지 않는 곳에 성을 쌓고 적으로부터 마을을 방어하기 좋은 위치에 사람을 살게 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보통 마을 앞쪽 산 이름은 남산이라 통칭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남 고성군도 그러한 남산이 있는데 지금은 차나무를 심는 등 공원으로 잘 가꾸어 두었다.


 

 

남산의 입구에는 1972년 개천절에 고성군수 허직(許稙)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이곳에 옮겨 둔 사연을 적었는데,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형제기리 우애한 옛 얼을 되새기기 위하여 뉘 돌보는 이 없이 빗물에 씻기고 바람에 넘어져 이곳저곳에 버려져 있던 옛님의 얼을 아로새긴 빗돌을 여기 한자리에 옮겨 세웁니다.”라 적어 두었다.


 

 

 

잘 정비된 남산공원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충절을 기리는 충혼탑과 6.25반공유적비가 세워져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찾고자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75호, ‘보광사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 보광사도 있다. 보광사는 담장도 없고 대웅전이 덩그러니 서있고 좌측에는 요사체가 있으며 뒤편에 작은 산신각이 있다.
‘고성보광사목조대세지보살좌상(固城普光寺木造大勢至菩薩坐像)’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둔
“진주 불교대학 총동문회” 글을 옮겨둔다.

 

 

 

 

 

 

고성보광사목조대세지보살좌상(固城普光寺木造大勢至菩薩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75호
고성군 고성읍 동외리 369-1

 

조선 후기 삼존상의 특징을 지닌 것으로 17세기 전·중반의 목조상들과 비교해 규모도 작아지고 어깨도 약간 위축되었다 진주 연화사의 본존상과 비교할 때 보광사 불상은 불신은 작아졌지만 신체의 비례라 든지 긴 콧날, 사선으로 접힌 승각기의 형태는 매우 유사하며, 단지 우측 어깨의 대의 주름이 물방울 모양을 이루지 않고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은 본존상과 협시상이라는 격의 차이에서 표현의 간략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목조 대세지보살좌상은 보광사 대웅전에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1959년 옥천사 포교당(남산 보광사)을 열면서 고성 雲興寺에서 목조삼존상 중 대세지보살상을 모셔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나머지 중 목조관음보살상은 현재 운흥사에 있으며, 본존상은 진주 연화사로 이봉되어 주존불로 모셔지다가 최근 지정조사를 통해 유형문화재 제462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사찰 측에 따르면 1986년 10월에 개금불사를 하였다고 전하며, 아쉽게도 불사 당시 발견되었던 복장유물은 물목 사진이나 내용은 파악되지 않은 채 봉안해 버렸고 한다. (당시 주지 지성 증언)

손에는 긴 연봉가지를 들고 있으며, 원통형의 보관은 일부 훼손되어 보강·수리되었으며, 도금되지 않고 붉은 채색만을 칠하고 장식물 일부도 결손 된 상태이다. 무엇보다 불상 뒷면에 목 뒷덜미 아래로부터 저부까지 균열된 부분을 ‘ㄷ’형의 철 못으로 등과 허리측을 보강처리 하였는데, 이것이 처음 조성 당시부터 있었던 것인지 혹은 중수하는 과정에서 후보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인지 불상은 좌측의 어깨 쪽이 오른쪽 어깨보다 낮아 보이는 느낌이다.

이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머리에 봉황과 운문 그리고 화문이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손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긴 연봉을 들었으며, 손가락에는 라마형 정병을 걸어 대세지보살의 도상임을 알 수 있다.

17세기 전·중반의 목조상들과 비교해 규모도 작아지고 어깨도 약간 위축되었다. 방형의 얼굴은 턱을 둥글게 깎았으며, 눈에서 이어지는 콧날은 긴 편이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 인자한 인상을 준다.

수인은 중품하생의 아미타인으로,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서 살짝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변형통견식으로 입은 법의는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입고 그 위에 대의를 입어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어 흘러내리며, 가장 안쪽 옷 주름이 넓게 접혀있으며, 끝단은 둥글다. 배 앞 대의 밖으로 흘러 내린 편삼은 반원형을 이루는 도식적 옷주름을 이루며, U자형으로 벌어진 법의 사이로 수평으로 길게 내려 입은 승각기는 가운데를 사선으로 접어 모양을 내었다. 발목으로부터 내려오는 군의의 가장 안쪽 주름은 넓으면서 우측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리며, 왼쪽 무릎 위 소매주름은 길어 실제 접혀진 듯한 사실적인 형태로 나타나 주목된다. 이 불상은 진주 연화사의 본존상과 비교해 보면 보광사 불상의 규모가 작아 상의 규모로써 격을 달리하는 조선후기 삼존상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보광사 불상은 불신은 작아졌지만 신체의 비례라 든지 긴 콧날, 사선으로 접힌 승각기의 형태는 매우 유사하며, 단지 우측 어깨의 대의 주름이 물방울 모양을 이루지 않고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은 본존상과 협시상이라는 격의 차이에서 표현의 간략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삼존상은 왼쪽다리 위의 소매주름은 거의 동일하게 표현되는데 보광사 상과 진주 연화사 상이 달리 나타나는 것은 조각승이 가지는 표현적인 특징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중수과정(개금)에서 눈과 얼굴 표현이 바뀌는 경우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동일 작품의 경우에도 도금 금어의 매김 솜씨에 따라 변모됨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