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말 명성황후는 순종(純宗)을 낳고 명산마다 세자의 무병장수와 국태민안을 비는 백일기도를 올렸다. 한반도 제일 명산이라는 천자봉을 매일 오르내리며 100일간이나 간절히 기도를 하였던 그 심정을 누가 알까마는 그 간절함이 남긴 마을이 있으니 진해 웅천동의 백일마을이 그 곳이다.
백일마을은 웅천읍성에서 좁은 농로를 따라 약 2km를 올라가면 갈림길에서 우측에 보이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아침에는 늦게 태양이 뜨고 저녁에는 해가 빨리 떨어지는 응달에 옹기종기 집들이 몇 채 모여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백일마을 위쪽에 절터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니 명성황후가 기도를 올리던 당시에는 터만 남았다는 그 절에서 기거를 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혹자들은 천자봉이 아니라 시루봉(곰메바위)에서 기도를 올린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지만 백일마을에 가보면 천자봉에서 기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일마을에서 천자봉까지는 직선으로 약 1.4km 정도가 되는 거리이며 백일마을에서 좌측 위쪽에 있는 봉우리이고, 시루봉은 마을 뒤편에서 꾀 먼 거리에 위치한다. 시루봉에서 기도를 하였다면 백일마을이 아니라 자은동 방면에서 올라오는 것이 오히려 쉬울 것이다.*1)근거 없음
그리고 천자봉은 이성계로 이어지는 조선개국의 기원이 되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중국대륙에 천자가 된다는 주원장의 전설도 함께 전하는 명당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명당의 전설은 이러하다.
[수정]
*1)근거 없음 : 2011. 2. 5일에 이 글을 썼는데 지금(2022.4.11) 생각해 보니 이 부분은 수정이 필요한것 같다. 옛 고지도를 살펴보니 천자봉은 시루봉을 지칭하고 있으며, 당시의 천자봉이란 지금의 천자봉 위치가 아니라 시루봉이 있는 웅산의 정상부를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시루봉에 제당이 있었다는 기록도 존재하고 지금도 기와 파편이 발견된다. 따라서 천자봉은 시루봉이 위치한 웅산의 정상부를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다.
옛날 함경도 땅에 이씨(李氏)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조상의 묘터를 찾기 위하여 팔도강산을 두루 섭렵하며 태백산맥을 따라 내려 오다 지리산을 거쳐 낙남정맥을 헤메이다, 이곳 곰내(熊川)마을 웅천에 이르게 되었다. 천자봉(天子峯)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던 이씨의 눈에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팔도를 헤매며 찾았던 명당터가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바위에 구멍이 둘 있으니 첫째 구멍에 묘(墓)를 쓰면 자손 중에 왕이 나올 것이요, 둘째 구멍에서는 천자가 나올 것이 틀림없는 천하의 명당을 찾았으니 어찌 흥분되지 않으리요.
그는 즉시로 데리고 온 하인에게 자기 선대의 묘를 둘째 구멍에 이장 하도록 일렀다. 주인의 분부를 받은 하인은 이때 슬그머니 딴 욕심이 생겨 둘째 구멍에 자신의 선대 묘를 이장하고, 첫째 구멍에 주인 이씨의 선대 묘를 감쪽같이 이장 하였다.
세월이 흘러 두 집안에 비범한 인물이 났으니, 이씨 문중에는 이성계(李成桂)라는 인물이 나와 조선을 개국하여 태조가 되었고, 하인 주씨 집안에도 인물이 났으니 그가 바로 명(明)나라의 천자 주원장(朱元障)이라 전한다.
명성황후의 간절한 기도가 백일마을을 남겼다면, 명나라의 건국 이야기가 되는 “강철”의 전설 또한 천자봉에 남아있다.
이러한 전설을 뒷밭침하는 이름들이 있으니, 천자봉과 그 아래에 있는 천자암이며, 장군천과 장천동, 자은동이란 지명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장군천은 천자봉으로부터 흐르는 하천으로 천자가 놀았다고 해서 붙여졌으며, 장군천 주변으로 취락을 이룬 장천마을이란 지명도 이를 뒷밭침 한다. 자은동이란 지명 또한 주천자가 스스로 자취를 감춘 곳이라 하여 붙어진 이름이라 전한다.
천자봉 강철-진해시 편
진해 장천동 뒤편에 천자봉(465m)이 있다. 이 천자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천자봉에는 못이 있었고 그 못에는 용이 못된 강철이 살고 있었다. 강철은 언제나 인가에 내려와서 주민들을 괴롭히고 가축을 해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항상 불안 속에 살고 있었다.
이것을 안 염라대왕은 사자를 보내 등천화룡도 되지 못하면서 못된 짓만 하는 강철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워낙 사나운 강철인지라 사자가 잡아오지 못하자 염라대왕은 노하여 기어이 데려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강철을 사로잡아 갈 수 없다고 판단한 사자가 강철을 꾀었다. "용이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어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대국의 천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 말을 들은 강철은 그 말에 응해 스스로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말았다. 강철이 죽자 죽은 강철의 입에서 파랑새가 한 마리 나와 천자봉 지붕 아래에 있던 백일마을의 주씨 집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주씨 부인은 잉태를 하게 되었고 열달 후는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입산수도 생활하였는데 머리가 영특하며 노는 것도 남 다른 데가 있었다. 무술놀이를 즐겼고 언제나 장수노릇을 했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왼손을 쥐고 있었다. 놀이를 할 때나 잠을 잘 때나 왼손 주먹만은 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동무들은 그가 잠자는 틈에 그의 왼손을 펴보았다. 그 아이의 왼손 바닥에는 대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잠을 깬 그 아이는 매우 놀라 하며 같이 놀던 아이를 죽여 버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후 그 아이는 명나라에 가서 무술을 닦아 명태조 주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천자봉 아래에 있는 넓은 평지를 마당재라 하는데 주천자가 어릴 때 무술을 닦고 전쟁놀이를 하던 장소라 전하고 있으며 그가 태어난 집의 오른쪽에 있는 산등성이를 장군목이라 한다.
<출처>
제 목 : 「경남전설을 찾아서」
발행처 : 농협중앙회경남지역본부
발행일 : 1997/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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