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남해 다정리 지석묘에서 뿌리 깊은 남해를 본다.

천부인권 2011. 12. 1. 10:02

 


 

19번 국도를 따라가면 길 왼쪽 장평저수지가 보이는 곳에는 듈립꽃을 심어 두었고 오른편에는 마늘모양 형태의 보물섬마늘나라가 있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뒤편 길을 따라 200m여를 가면 들판에 분묘와 함께 3~4m 간격으로 놓여 진 여러 기의 지석묘들을 만나게 된다. 창원시 인근에서 만나는 지석묘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당당한 느낌은 아직도 살아있는 듯 했다.


 

 

 

이곳의 지석묘에는 성혈(性穴)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지석묘 앞에서 의식을 행하거나 복을 비는 무속행위 등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지형이 현재와 비슷했다면 생각해 볼 것도 없겠지만 지금으로부터 5,000년전 남해는 섬이 아니라 육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지형의 변화로 인해 당시의 인류가 육지로 이동을 했다면 남해를 비롯한 여러 섬에 남아 있는 문명시대 이전의 흔적들에서 지구의 변화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남해 다정리 지석묘 (南海茶丁里 支石墓)
경상남도 기념물 제62호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 911-5번지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가운데 하나로 고인돌 또는 돌멘(支石墓, dolmen)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北方式)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南方式)으로 구분된다.

 

이곳 다정리 지석묘들은 현재 들판의 논둑을 따라 3~4m의 간격을 두고 모두 11기가 자리하고 있다. 외형상으로 모두 바둑판식 지석묘로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3m, 너비 2m 정도 이다. 땅 속에 마련된 하부구조의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이와 유사한 지석묘의 하부구조를 볼 때 상자모양의 돌널(石棺)일 가능성이 크다. 이 주변일대에는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어, 이곡이 청동기 시대에 남해지역의 주요 생활 근거지 중의 하나였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이밖에 남해군에는 남면리, 팽현리, 심천리 등 관내 각지의 해안 평야와 창선도에 이르기까지 지석묘들이 폭넓게 분포되어 있어 청동기시대의 남해지역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지석묘 옆 논에는 제주도 특산의 백년초로 알려진 손바닥선인장이 재배되고 있어 남해가 기후적으로 재주도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년초는 고혈압, 암 발생 억제, 골다공증, 관절염, 당뇨 억제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주도에서는 기념물 제35호로 지정한 식물이다.
옛날에 사고로 몸에 멍이 들거나, 퉁퉁 부어오르면 손바닥선인장을 둘로 쪼개어 환부에 붙어서 열기를 내리고 멍을 빼는 약으로 사용했던 추억이 있는 식물이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는 마늘이 초겨울의 추위를 무시하고 초록의 색상을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따뜻한 기후로 인해 성장이 너무 빨라 정작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