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롭게 건설한 관음전은 성주사 입구에 있던 용화전을 없애고 불상을 옮겨오면서 생긴 전각이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35호인 창원성주사관음보살입상(昌原聖住寺觀音菩薩立像)은 원래 용화전이 있던 아래쪽 용화사지에 있던 것을 용화전 자리로 옮겨와 세워 두었다가 1960년도 후반 어느 해에 일본으로 팔려가자 천선동, 성주동, 안민동, 불모산동, 삼정자동 주민들이 마애석불을 팔아먹은 당시 주지를 때려죽일 기세로 "다시 가져오라"고 닦달을 하자 용화전을 세우고 새롭게 만든 관음보살입상을 가져왔다.
그때 모습은 화강암석 본래의 하얀 모습이었고 입술에는 빨간 칠을 하고 이마에는 유리구슬을 박아두는 등 불상을 치장하고 있었다. 그 때 주민들 중 몇 명이 부산에까지 가서 가져온 불상이 현재 관음전에 모셔둔 창원성주사관음보살입상이다. 당시 주지와 불상을 가져온 사람들은 옛날에 있던 불상이 너무 낡아 이렇게 예쁘게 생긴 불상으로 대체하고 용화전각도 세웠으니 마을 주민들이 욕할 일만은 아니라고 설득하여 무마가 되었다.
성주사의 삼층석탑(1972), 대웅전(1974) 등은 국가가 문화재를 보호할 목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할 당시 선정되었지만 이 불상이 1997년에야 문화재로 등록되는 이유가 고려시대 불상이라고 보기엔 뭔가 의심스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창원공단의 등장으로 농경사회인 자연부락들이 사라진 후에 슬며시 성주사관음보살입상(聖住寺觀音菩薩立像)이 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 지금은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으며 사실 그 때 불상을 팔아먹은 사람들도 이제 돌아가셨거나 이곳에 살지 않기에 증언해 줄 사람도 별로 없다. 둥근 상호의 양미간에는 백호를 새겼으며, 소발(素髮)의 머리에 보관(寶冠: 보살이 머리에 쓰는 관으로 장식과 상징의 기능이 있음)이 조각되어 있는데, 얼핏 보기에는 광배로 착각할 정도다. 둥근 어깨와 굵은 곡선으로 새긴 U자형의 옷주름이 부드러운 인상을 주고 있으나 상체에 비하여 하체가 짧아 균형감각이 상실해 보인다. 불상의 높이는 148㎝로 아담한 모습이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새롭게 건립한 관음전 주련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진묵겁전조성불(盡墨劫前造成佛) 아득한 영겁전에 성불하시고
예전에 용화전에 모셔 둘 당시에는 "관음보살은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보살로 현재의 위치에서 발견되었으며 그 자리에 용화전을 건립하여 봉안하였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화강암에 불신과 광배, 연화좌대를 부조(浮彫)한 마애 입상이다.
위도중생현세간(爲度衆生現世間) 중생제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외외덕상월륜만(巍巍德相月輪滿) 높고 높은 덕스런 모습 보름달 같고
어삼계중작도사(於三界中作導師) 삼계 가운데서 스승이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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