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장복산 덕주바위와 김덕주 이야기

천부인권 2012. 7. 15. 10:45

장복산 덕주바위와 김덕주 이야기

 

100년은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이다.
장복산 602m지점의 바위를 덕주봉이라 칭하는데 이는 진해와 창원을 무대로 살았던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 전한다. 창원시 남산동 줄봇또랑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어머니(분성배씨 현재 83세)의 이야기 속에도 등장하는 ‘덕주’라는 사람은 축지법을 사용하여 남산동 줄봇또랑에서 놀다가 비가 올 것 같으면 “어! 내 간다.”라는 말을 하고나면 장복산 덕주봉에 불빛이 생긴다고 하였다.

 

 

 

 

<2012/1/5 불모산 방향에서 바라본 장복산>


그의 성은 김씨라고 하나, 이름은 '덕주'라고도 하고, '덕조'라고도 하였다.
경화동 조천마을 에 많이 살고 있는 선산 김씨의 30대 손이면서 족보에는 올라 있지 않았다.

 

 

 

그는 장복산 가장 높은 꼭대기에 있는 큰바위 옆에 바위들을 붙여서 지은 바위집에서 살았다. 혼자서 근처에 있는 바위를 짊어지고 날라서 지었다고 한다. 출입문 역시 바위로 한짝문을 만들었는데 보통 사람은 도저히 열 수도 없다. 농만한 바위를 등에 지고 절벽을 오르는 것을 보고 나물 캐는 아낙네들이
"아제(아저씨), 뭐 하는기요?"하고 물으면
"응, 누고?"
하면서 바위를 내려놓는데 바위는 굴러 떨어지는 일이 없이 절벽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장차 난리가 나면 양식으로 하겠다면서 비지나 엿 찌꺼기를 모았고, 평소에는 술지게미나 솔잎을 주식으로 하였다.
밥이 먹고 싶을 때는 제피내(현 경화동 조천마을)에 있는 친척집을 찾아와서 얻어먹었다.
그러면서 해질 무렵, 소나기가 내리면 설거지를 걱정하고 집 밖에 나서는데 얼마 안 가 그 바윗집에는 불이 켜졌다고 한다.
언젠가는 친척들과 같이 부산에 갈 일이 있어서 경화역에서 기차를 탈 때에 그는 굳이 걸어 가겠다 하여 헤어져 부산역에 도착해 보니 어느새 그가 먼저 거기에 와 있었다고 한다.

 

 

 

 

<2012/6/19 삼정자에서 바라본 덕주바위>

 

 

그는 예언을 잘 하였으며 그 가운데 후세까지 남은 몇 가지는
1) '흰다리'가 오면 나라가 망한다.
2) '한일거리'에 큰 도시가 생길 것이다.
3) 장시(5일장)가 옮겨 올 것이다.
4) 웅동에서 뱀들이 꼬리를 물고 몰려 올 것이다.
5) 벌통 같은 집에 살게 되면 세상 다 된 줄 알아라.
6) 창원에서 진해로 물이 넘어가면 일제가 망하고 해방이 될 것이다.
7) 낙동강물이 소목고개를 넘어오면 창원이 망할 것이다.

와 같은 말이다. 이것을 풀어보면

1)은 이 고장에 군항을 설치하려고 측량을 하러 다리에 흰 행건을 두르고 최초에 들어온 부대가 일본 해군 육전대였고
2)는 '한일거리'가 도시계획으로 '경화동'이란 격자형 도시가 된 것을 뜻하고,
3)은 물해안통(풍덕개)에서 3ㆍ8일로 열리는 장시가 경화동으로 옮겨온 것을 뜻하고,
4)는 웅동에서 서진해까지 송수관이 부설된 것을 뜻하고,
5)는 오늘날 아파트를 뜻하여 그렇게 주택난 시대가 오면 인심도 각박해질 것을 예언한 말이다.
6) 성주사저수지 물이 진해로 넘어갈 것을 예언한 경우로 저수지 물이 넘어가기도 전에 해방이 되었다.
7) 낙동강에 홍수가 나면 창원사람들은 정병산으로 올라가서 동읍, 대산면 등에 물난리가 난 것을 구경하곤 했다. 현재 낙동강 물이 창원으로 넘어 오고 있는데 창원이 망한다고 한 것은 농촌사회가 붕되고 전혀 다른 세상이 만들어 진다는 것을 말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예언은 적중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2012/6/19 삼정자에서 바라본 장복산>

 

 

머리카락은 자라나는 그대로 두어서 치렁치렁했다. 지금도 머리를 단정히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덕주 머리'같다고 한다.
그가 살고 있던 바위집을 '덕주집' 또는 '덕주바위'라고 하였으며 그 집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풍화로 무너져버렸다. 200m쯤 서남쪽에 그가 쓰던 샘이 있는 데 그것을 '덕주샘'이라고 부른다. 높은 산 바위틈에서 사철 변함없이 물이 나서 요즈음도 그 샘을 신성시하고 그 물로 거기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사람도 있다. 그가 공기 놀이를 했다고 전하는 바위가 남아 있고 예전에는 덕주집 바로 아래에 전구지(부추) 밭이 조금 남아 있었는데 덕주가 기른 채소 밭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인 김덕주는 초인의 힘을 지니고 축지법을 썼으며 예언을 하고 보통 사람과 다른 생활을 하면서 속세와 절연하고 있다가 어느 날 일본 헌병의 불심 검문을 받고 그에 불응하고 대항을 하였다. 뒤에 일본 헌병이 장복산까지 수색을 하러 오는 것을 보고 그길로 김해 방면으로 피신을 하여 여생을 마쳤다.

일본인은 이런 전설을 듣고 김덕주를 '선인'이라 하였고 그가 살던 바윗집을 '선인굴'(仙人窟)이라 하였다.
(진해시 경화동 1441. 金在錫 71세 구전)  
출처 :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고 적어 두었던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