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31 까치아파트에서 바라본 봉림산과 정병산>
봉림산의 위치에 대해 창원문화원장 박동백씨는 소설을 쓰고 있는데 소설은 사실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현재 보물 제363호로 지정되어 경복궁에 있는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에는 봉림산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다. 이곳 창원 땅에는 888년(신라 진성여왕2)까지 봉림이라는 지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의 내용은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림산문을 창건한 진경대사(심희 855년 ~ 923년)가 김해의 서쪽에 복림(福林)이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 산이 있는 곳으로 오던 중 김해 진례(進禮)에 잠시 머무르자 진례성제군사 김율희(進禮城諸軍事 金律熙)가 성(城)으로 맞이하여 대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또한 김해부진례성제군사 명의장군 김인광(金海府進禮城諸軍事 明義將軍 金仁匡)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대궐에서 정성을 다하였으며, 선문에 귀의하여 숭앙하고 삼보(三寶)의 집을 돕고 수리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진경대사가 이곳 봉림사지에 당도해 보니 지세가 산맥과 이어지고 문이 담장뿌리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없는 절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이 땅의 풍광과 기상을 보고 띠집을 새로 수리하고 이름을 봉림이라 고치고 선방을 중건 했기에 봉림산이라는 지명이 창원에 생겼다. 따라서 봉림산(鳳林山 298.3m)은 봉림사(鳳林寺)가 있는 곳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정병산(精兵山 566.7m)과는 아무른 관련이 없는 산이다.
<출처 : 문화재청,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 보물제363호>
풍수상으로 본다면 경남기념물 제127호인 봉림사지(鳳林寺址)의 주산(主山)은 봉림산이고, 조산(朝山)은 창원의 천주산(天柱山, 640m)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봉림사지는 주산 외에도 진산(鎭山)으로 자리매김 될 배후의 산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병산(精兵山)이다. 진산인 정병산은 기세가 강성하고 남성적이며, 진산의 맥이 흘러나온 주산 봉림산은 온화하고 모성적이다.[출처 : 두산백과]
<봉림사지 진경대사 보월능공탑비가 있던 곳의 표식>
비문의 내용 중 일부 발췌
「無何遠聞 金海西有福林, 忽別此山 言歸南界 及乎達於進禮 暫以踟躕 爰有□□」
얼마 안되어 멀리 金海 서쪽에 복림(福林)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문득 이 산을 떠났다. 그 소문이 남쪽 경계에 미치고 진례(進禮)에 이르러 잠시 머뭇거렸다.
「所以 刱修茅舍 方止 輿 改號鳳林 重開禪宇」
그래서 띠집을 새로 수리하고 바야흐로 가마를 멈추고, 이름을 봉림(鳳林)이라 고치고 선방을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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