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구복신앙의 백미 진양 대천리 입석

천부인권 2012. 11. 24. 18:57

 

국도2호선을 타고 이반성면 대천리 사거리에서 경상남도수목원 방향으로 조금가다 우측 논을 보면 들판 가운데에 약 200m가량의 거리를 두고 삐죽 솟은 선바위를 볼 수 있다. 이 입석은 청동기시대 지석묘(支石墓)의 분포 및 마을의 경계 등을 표시하는 거석(巨石)문화의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입석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인 ‘진양대천리입석(晋陽大川里立石)’으로 국도2호선과 가까운 서쪽에 서있는 바위가 각시바위이고, 동쪽에 조금 더 높게 서있는 바위가 신랑바위 또는 총각바위라고 부른다. 각시바위는 높이 2.6m, 둘레 2.7m, 두께 0.9m이고, 신랑바위는 높이 3.0m, 둘레 2.6m, 두께 0.85m이며, 둘 다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각시바우>

 

진주 명석면의 경남도민속문화재 제12호인 명석자웅석(鳴石雌雄石)처럼 설화로 전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대략 이렇게 전한다. [고려 중엽 때 반촌에서 민촌으로 향하는 두 개의 돌이 걸어오는 것을,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던 민촌마을 처녀가 발견하고 부엌에서 마당으로 나오면서 “어머니 저기 돌이 걸어갑니다.”라고 고함을 치면서 막대기로 마당을 치자, 돌이 현재의 위치에 서서 가던 길을 멈추었다.]고 전한다.

 

 

<신랑바우>

 

진양 대천리 입석(晋陽 大川里 立石)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242, 254-6

 

선돌은 바위를 길게 다듬어 세워두는 것으로, 입석(立石)이라고도 하며 고인돌과 같은 큰돌 문화의 일종이다. 선사시대에는 고인돌 주변에 세워 묘의 영역을 나타내기도 하였고, 역사시대에 와서는 마을 입구에 세워 귀신을 막거나 경계를 표시하였으며, 토착신앙과 합쳐져 무병장수를 비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 선돌이 신앙의 대상이 되면서 전해오는 사연이 있다. 고려중기에 두 개의 커다란 돌이 반촌(지금의 대동마을)에서 민촌(지금의 하촌마을)방향으로 다음 도읍지를 향헤 걸어가고 있었는데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느 처녀가 이를 보고 막대기로 마당을 치자 돌이 멈추어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한다.

현재 논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위치로 보아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