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남해의 비경 물건 방조어부림

천부인권 2012. 11. 28. 09:04

 

경남정보사회연구소에서 주최하고 있는 "공감! 경남오일장의 맛과 멋"을 취재하기 위해 남해 삼동면 동천장을 들렀지만 이미 폐장이 되어 있었다. 이왕 여기 남해에 왔으니 미조면을 들러 볼까하고 생각하다 산모둥이를 넘으니 물건리에 도착했다. “물건리(勿巾里)는 마을 생김새가 선비들이 바둑을 두며 놀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여자가 수건을 쓸 수 없다 해서 물건이라 부른다는 설과 마을 뒷산 모양이 만물 "勿"자 형이며 건(巾)은 산을 크게 보면 병풍처럼 둘러싸인 가운데를 내(川)가 흐르고 있어 그 모양이 수건 "巾"자라하여 물건(勿巾)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짧은 내 생각으로는 풍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산의 모양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출처 : 남해군 삼동면]

 

 

 

 

국도 제3호선인 동부대로를 경계로 아랫마을은 물건리 옛 집들이고 위쪽은 현대식 건축물로 지은 독일마을이다. 도로의 좌우가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를 비교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

 

 

 

 

방조어부림은 몽돌이 밀려와 쌓인 곳에 나무를 심어 마을을 성난 파도로부터 또는 재해를 사전에 방지할 목적도 있겠지만 여름의 푸른 숲이 녹색이라 녹색을 좋아하는 물고기들이 숲 가까이로 몰려 올 것도 생각해서 심었을 것이다. 밤낚시를 할 때 볼락이나 칼치, 호래기, 오징어 등은 집어등을 켜 고기를 모으는데 집어등의 색깔이 녹색인 이유가 고기가 녹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물건리 방파제는 감성돔 낚시터로도 유명한데 오늘도 붉은 등대 주면에는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인다.

 

 

 

 

 

숲은 수령이 300년이 넘는 10,000그루 이상의 다양한 나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약200여 년 전 국가 공요전을 납부할 능력이 없어 본 밀림을 벌채하여 납부하였는바 불의의 재난이 발생하여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어 마을 전체가 폐농지경에 이르게 되므로 마을사람들이 각성하여 철저하게 숲을 보호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100여년 전 병술년의 대흉사 때에는 이곳 나무들의 초근목피로 주민들의 생명을 구했다하니 1.5km의 해안을 따라 하늘의 은하수가 펼쳐지듯 수많은 몽돌과 함께 마을의 수호신 구실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큰 이팝나무 아래에는 당산제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기원을 하고 제물을 남겨두어 현세에서 알 수 없는 신령한 힘을 얻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숲 가운데로 나무데크를 깔아두어 숲 사이로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물건리는 방향이 동쪽을 향하고 있어 해맞이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니 새해 첫날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남해의 일출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물건 방조어부림(勿巾 防潮魚付林)

천연기념물 제150호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산12-1

 

이 숲은 370여 년 전에 바닷바람에 의한 염해와 해일이나 밀물 등의 피해를 막을 목적으로 조성되었으며 바닷가를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길이 1,500m, 너비 약30m이다.

나무의 높이는 대체로 10~15m이며 위층은 2,000여 그루의 팽나무, 푸조나무, 상수리나무, 참느릅나무 등으로 그 아래 층은 8,000여 그루의 보리수나무, 동백나무, 광대싸리, 윤노리나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세기 말엽 이 숲의 일부 나무를 베어낸 다음 폭풍을 만나 마을이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자 “이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라는 말이 전해 오면서 더욱 잘 보존해 왔다. 숲 속에 서있는 가장 큰 이팝나무를 당산목으로 모시고, 매년 10월 15일에 제사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