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해인사 소리길에서 만난 농산정과 치원대각석

천부인권 2013. 5. 22. 07:00

 


<2013/05/18 해인사 홍류문>

 


소리길을 따라 해인사로 향하다 보면 해인사 일주문 구실을 하는 법보사찰가야산해인사(法寶寺刹伽倻山海印寺)라는 현판이 새겨진 커다란 홍류문(紅流門)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입장료를 내고 조금만 오르면 농산정(籠山亭)을 만난다.



 



 


고운 최치원선생이 은둔생활을 한 곳으로 유명한 홍류동 계곡에 위치한 농산정(籠山亭)의 본래 창건 시기는 알 수가 없고, 지금의 것은 후손과 유림들에 의해 1936년에 중건된 것으로 1990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통하여 현재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72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장방형으로 팔작지붕을 한 단아한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정자의 이름은 고운선생의 둔세시(遁世詩) 중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농산(籠山)에서 따온 것이라 하며, 김영한이 쓴 농산정기(籠山亭記)와 찬양사(讚揚辭) 등 많은 현판이 걸려 있다.



 



 


농산정 안쪽에 걸려 있는 현판들 중 고운선생이 제시석벽에 쓴 둔세시(遁世詩)와 같은 내용으로 글쓴이가 없는 농산정(籠山亭)이라는 현판이 있어 그 시를 먼저 소개를 한다. 


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가야산 독서당에서 짓다.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속세의 시비 소리가 혹시라도 귀에 들릴세라,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롱산)-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에워싸게 하였다. 


 


<제시석벽의 친필>

 


홍류동 계곡에 건립된 농산정(籠山亭)이 계곡 좌측에 나타나면, 농산정을 마주하고 도로 옆에 치원대(致遠臺) 또는 제시석(題詩石)이라 불리는 석벽이 있는데 옛 선인들의 숱한 이름과 글귀가 석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제시석벽 글 중에는 고운 최치원선생이 직접 쓴 칠언절구 둔세시(遁世詩)가 새겨져 있다. 글씨를 잘 몰라도 눈에 확 들어오는 범상치 않는 글귀를 찾으면 그것이 세상과 인연을 끊고자 했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라는 선생의 친필이라 더 많은 애정이 간다.



 


<몸서리치는 일제의 아픈 흔적>

 


농산정(籠山亭)을 에워싸고 커다란 노송들이 즐비한데 소나무의 허리마다 아물지 못한 생채기가 나 있다. 일제가 대동아전쟁으로 연료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절에도 세금 대신 송진을 요구했고 송진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생채기를 내었던 흔적들이다. 이처럼 아직도 일제의 수탈과 만행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는데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부끄러운 일이며, 상처 난 소나무에게 뼈저리게 배워야하는 교훈이다. 

 


 

 

<2011/8/21 농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