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이순신장군에 감동한 황제의 선물 ‘명조팔사품’

천부인권 2013. 1. 14. 20:01

 

명(明)나라 신종(神宗)황제가 이 충무공의 공훈을 높이 기려 보내준 군의장물(軍議臟物)로 1966.2.4 보물 제 440호로 지정되었으며, 도둑인(都督印), 영패(令牌), 귀도(鬼刀), 참도(斬刀), 독전기(督戰旗). 홍소령기(紅小令旗), 남소령기(藍小令旗), 곡나팔(曲喇叭)등 8종에 도독인만 1점이고 나머지는 한쌍씩 모두 15점으로 통제영에 보관되어 오다가 1896년부터 충렬사로 옮겼고, 도독인을 제외한 나머지 유물들 1개씩은 1969년 현충사가 완공되자 그곳에 옮겨놓았다.

그러나 통영사람들의 간곡한 염원으로 다시 충렬사에 보관되어 오다가 2002년 명조팔사품(明朝八賜品)의 부식이 빠르게 진행되는 등 보존처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경기도박물관에 의뢰, 영구보존 처리한 뒤 수장고 보관에 들어가 이제는 진품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보물 제440-1호 - 도독인<부인함1개포함> (都督印<附印函1個包含>)>

 

 

도독인 1개는 손잡이가 달린 장방형의 동으로 만든 도장으로 가로 5.5cm, 세로 10cm, 두께 1.1cm이다. 이 도장은 모를 죽인 방형의 뚜껑이 있는 함에 보관되어 있다.


 

 

<보물 제440-2호 - 호두령패 (虎頭令牌)>

 

 

호두령패 2개는 가로 20.5cm, 세로 21cm, 두께 1.7cm크기로 나무로 만든 것으로, 한 쪽에는 검은 칠을 하고 '令'자를 새긴 다음 붉은 색으로 메웠고, 후면에는 분칠을 하고 대장의 두 자를 썼다. 이 목패는 사슴가죽으로 만든 주머니가 있는데, 표범의 머리를 그려 장식하였다.

 

 

 

 

<보물 제440-3호 - 귀도<부도초2개포함> (鬼刀 <附刀2個包含>)>

 

귀도 2자루는 총길이 144cm, 칼날 길이 90cm, 폭 4.3cm의 칼이다. 전단 나무로 만든 칼자루는 용의 머리를 새기고 그 위에는 귀신의 머리를 조각하고, 붉은 색을 칠하였다. 칼집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종이로 싸서 붉은 칠을 하였다.

 

 

 

 

<보물 제440-4호 - 참도<부도초2개포함> (斬刀<附刀초2個包含>)>

 

참도 2자루는 길이 162cm, 폭 3.5cm의 칼이다. 칼자루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상어껍질로 싸고 붉은 칠을 한 다음 쇠가죽 오라기를 감았다. 칼집은 역시 나무로 만들고 쇠가죽으로 싸고 붉은 칠을 하였으며 은도금한 쇠로 장식이 되어있다.

 

 

 

 

<보물 제440-5호 - 독전기 (督戰旗)>
<보물 제440-6호 - 남소령기 (藍小令旗)>
<보물 제440-7호 - 홍소령기 (紅小令旗)>

 

독전기 2폭는 전투를 독려하던 깃발이다. 가로 60cm, 세로 70cm, 자루길이는 303cm이고 자루 끝에는 길이 24cm의 창이 꽂혀 있다. 남색비단으로 만들고 한 가운데에는 '군사가 적을 만났을 때 명령에 따르지 않은 자는 처단한다.'라 쓰고 그 좌우에는 붉은 비단으로 '도전'의 두 자를 오려 붙이고 그 주위를 실로 꿰메었다. 깃대 머리에는 창이 꽂혀 있다.

 

홍소령기 2폭은 가로 60cm, 세로 70cm, 깃대길이 204cm의 군대의 명령을 전하는데 쓰던 깃발이다.


남소령기 2폭은 홍소령기와 같은 형식이나 다만 남색 비단 바탕에 홍색 비단으로 '令'자를 오려서 붙였다. 자루 끝에는 홍소령기와 마찬가지로 창이 꽂혀 있다.

 

 

 

 

 

<보물 제440-8호 -  곡나팔 (曲喇叭)>

 

곡나팔 2개는 길이 130cm이고 입지름이 19cm인 구부러진 나팔이다. 구리로 만들었고 나팔 입은 펴졌으며 4마디가 있고 붉은 술이 드리워져 있다. 목이 구부러진 형태라서 곡나팔이라 한다.


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명조팔사품은 모조품(模造品)이지만 그 품격이 인정되는 작품들이다. 중국의 학자들에 의하면 명나라 신종(神宗)황제의 기록 어디에도 이순신 장군에게 명조팔사품(明朝八賜品)을 선물 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 명조팔사품(明朝八賜品)은 이순신에게 감동 받은 진린(陳璘, 천린, 1543년 ~ 1607년)도독(都督) 자신이 임진왜란과 관계없이 황제로부터 받은 것이거나 직접제작을 하여 이순신에게 선물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