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칠불사 갔더니 ‘前三三與後三三’이라

천부인권 2013. 10. 24. 07:51

 

 

 

가락국(駕洛國)의 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金首露王)102녀 중 첫째 거등왕(居登王)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 석()과 삼남 명()왕자는 어머니 허황옥(許黃玉) 황후의 성씨를 따라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리고 창원 불모산(佛母山)에서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삼촌인 범승(梵僧) 장유보옥선사(長有寶玉禪師)에게 출가(出家)를 하여 곰절(성주사)에서 수도를 했으며,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고, 의령 수도산과 사천 와룡산 등을 거쳐 서기 101년에 지리산 반야봉 남쪽 해발 약 8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칠불사(七佛寺)에 이르러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정진한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칠불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칠불의 명호는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이다.

이를 증명하듯 김해에서 특산물로 내어 놓은 남방계통의 녹차인 장군차가 불모산과 일곱 왕자들이 수도를 했다는 산맥을 따라 자라고 있으며, 마지막 성불의 장소인 칠불사 인근에서도 장군차가 발견된다.

 

 

 김해 연화사 사적기에 적힌 내용.

칠불(七佛)의 명호(名號)1. 김왕광불(金王光佛) 2.김왕당불(金王幢佛) 3.김왕상불(金王相佛) 4.김왕행불(金王行佛) 5.김왕향불(金王香佛) 6.김왕성불(金王性佛) 7.김왕공불(金王空佛) 이시다. 이러한 칠불 탄생지는 천하무비(天下無比)의 성지(聖地) 중 성지(聖地)인지라 과거(過去) 지리산 칠불암에 칠불존영(七佛尊影)을 모셨으나 여수(麗水) 순천(順天) 반란사건(叛亂事件) 때 불타 없어지고 칠불의 탄생지인 연화사(蓮華寺)에 다시 모시게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칠불사의 터에 대해서는 옥룡자(玉龍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3.10)가 저술한 옥룡자결에 의하면 "하동 땅에서 북쪽으로 1백리 가면 와우형(臥牛形)의 길지가 있는데 이곳에 집을 지으면 부()는 중국의 석숭 못지않고, 백자천손이 번창할 것이며, 기도처로 삼으면 무수인(無數人)이 득도할 것" 이란 내용이 있다. 즉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 명당이 칠불사라 한다.

 

 

 

 

칠불사 입구에 이르면 명지(覭池)라는 둥근 인공 연못이 고요한 지리산 반야봉을 담고 있다. 이 명지는 출가한 일곱 왕자들을 만나보고 싶어 수로왕과 허황후가 이곳 칠불사에 찾아왔는데 장유화상은 득도를 하려는 왕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만날 수 없다고 하면서 꼭 보고 싶으면 이곳에 못을 만들면 왕자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 하여 수로왕이 이 둥근 연못을 만드니 왕자들의 모습이 보였다고 전한다. 아마도 군대 보낸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부모의 마음도 이러하리라.

 

 

 

 

 

절 마당으로 가려는 입구에는 대중들에게 설법을 전하는 보세루(普說樓)가 높이 솟아 있는데 정면에는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세루 아래를 지나면 대웅전이 높다랗게 정면을 마주한다.

 

 

 

 

좌측의 건물은 그 유명한 칠불사 아자방 건물인데 편액에도 亞字房이라고 적었다. 아자방의 내부를 볼 수 있는 곳은 유리창으로 만들어져 있어 사진으로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자방 앞 안내표지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칠불사 아자방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4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1605

1세기경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그들의 외삼촌인 범승(梵僧) 장유보옥선사(長有寶玉禪師)를 따라 이곳에 와서 수도한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였으므로 칠불사(七佛寺)라 이름 하였다. 그 후 신라 효공왕(孝恭王, 897~911) 때 담공선사(曇空禪師)가 길이 약 8m의 이중온돌방(二重溫突房)을 축조하였는데 그 방 모양이 亞字와 같아 아자방(亞字房)이라 하였다. 1951년 소실되어 초가로 복원하였다가 현재와 같이 신축하였다.

 

 

 

 

 

문화재로 등록된 아자방을 겉만 보고 곧장 대웅전을 보니 대웅전 주련에는 아래처럼 적혀 있다. 글씨는 서예가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 1927~ 2007.2.1.)이 쓰고, 서각은 정도화 전 경상대미술교육과 교수가 새긴 것 이다.

 

 

 

 

대웅전(大雄殿)의 주련(柱聯)

彿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부처님 몸 법게에 충만하사

普顯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시니

隨緣赴感靡不同(수연부감미부동) 인연 따라 감응함이 두루하시어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리좌) 이 보리좌에 항상 계시네.

 

 

 

 

대웅전의 우측에는 칠불사의 탄생 전설과 함께하는 문수전(文殊殿)이 세워져 있는데 칠불사가 문수신앙 도량임을 잘 나타내주는 전각이다. 문수전의 주련에는 무착선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고사을 적었는데 문수보살이 남긴 前三三與後三三이라는 말귀의 그 뜻을 알 듯 말듯 하다.

 

 

 

 

 

문수전(文殊殿) 주련

千峯盤窟色如籃(천봉반굴색여람) 일천봉우리 깊은 골짝 쪽빛 같이 푸른데

誰謂曼殊是對談(수위만수시대담) 문수만나 말했다고 그 누가 말하랴

敢笑淸凉多少衆(감소청양다소중) 우습다 청량산 대중이 몇이냐 하니

前三三與後三三(전삼삼여후삼삼) 전 삼삼 후 삼삼이라 함이여

 

 

 

 

보세루 아래에 걸려 있는 반석이라는 부처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칠불사 여행기를 마친다.

 

반석(盤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기 어려움을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고,

누구나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일상의 참음이다.

자기보다 약한 이의 허물을 용서하고,

부귀영화 속에서 겸손하고 절제하라.

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이 수행의 덕이니,

원망을 원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성내는 사람을 대하여도 마음을 고요희 하여,

남들이 모두 악행한다고 가담하지 말라.

강한 자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고,

자기와 같은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서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다.

욕설과 헐뜯음을 못 참는 것은 어리석음이요,

욕설과 비방을 잘 참음은 지혜로움이니,

욕설이나 칭찬으로 지혜로운 이를 어찌하지 못함은

큰 바위에 폭우가 쏟아져도 부서지지 않음과 같아

비방과 칭찬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나도

지혜로운 어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이 그러해서 욕을 먹으면

그것이 사실이니 성낼 것 없고

사실이 아닌데도 욕을 먹으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화를 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