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14 백암사-주지와 6명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
집중호우로 함안 백암사(柏岩寺)가 많은 피해를 입어 마창기술봉사단에서 봉사활동으로 백암사로 찾아갔다.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 산 81번지에 있다고 하나 네비게이션이 잘 찾지를 못하기 때문에 바로 아래에 있는 백암지(白巖池)를 입력하고 찾으면 쉽다.
백암사에서 수해를 입은 창고의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어 씻기도 하고 썩은 것은 정리도 하면서 어느 듯 점심시간이 되었다. 봉사단원들과 이곳에 거주하는 아이들 6명까지 함께 식사를 마친 후 잠시 대웅전 구경을 하러 갔다. 생활관보다 위쪽에 자리한 절집들은 이번 호우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절집의 마당과 물과 함께 산으로부터 내려온 흙과 이물질 들이 생활관을 덮쳐 피해를 준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커다란 약사여래좌상과 좌우에 배치된 야사여래입상과 포대화상의 조각품이며, 그 앞에 놓인 향로이다.
대웅전은 크지도 웅장하지도 않으며, 한옥도 아닌 일본식 기와에 시멘트로 지은 한옥처럼 보이는 집이다. 그리고 입구에 있는 근래에 지은 것 같은 종각은 범종만 하나 달렸지만 네 개의 배흘림기둥에 우리나라 기와를 얻은 전통건물 방식을 따르고 법종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한글로 새겨져있다.
<백암사-법종각 모습>
용신각과 삼성각 사이에 5층석탑이 서 있고, 삼성각 역시 대웅전처럼 일본식 기와에 시멘트로 지었고, 밖에는 유리창으로 된 창문을 설치했다. 한마디로 초라한 절집이라 생각하면 된다.
대웅전 앞에는 함안 백암사 석조여래좌상에 대한 안내문이 있어 읽어 보니 대웅전에 모신 백암사 석조여래좌상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두었다. “백암사 석조여래좌상은 정확한 제작년도는 알려지지 않으나 대좌에 표현된 문양과 연잎의 표현방식과 특징을 살펴 볼 때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까지 표면에 금으로 도금 되어 있어 불상의 변형과 파손이 심각하였으나, 현재 표면의 도금을 제거하여 원래의 모습이 재현되었다. 따라서 전승에 대한 의미와 제작연대의 중요성으로 미루어 그 가치가 인정 되어 2011.4.28.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529호로 인정되어 보존되고 있다.”라 적었다.
<삼성각과 5층석탑>
대웅전 문을 열고 불상을 보는 순간 이건 보물로 지정되어야 할 것인데 문화재자료로 인정한 것은 불상의 정체성에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좌는 하대에 연잎 모양을 아래로 향하게 한 복련의 조각을 하였고, 중대는 팔각형으로 기둥을 표현한 것 외 장식은 없으며, 상대 역시 연잎을 새겼는데 꽃이 피어있는 모양을 한 양련으로 만들어져 있다. 대좌 위에 결과부좌를 한 부처가 앉았는데 양손은 자연스럽게 양 무릎 위에 손바닥이 땅으로 가도록 내려놓았으며, 법의는 앞가슴만 노출되도록 입고 있다. 목은 삼도가 뚜렷하지 않아 자세히 보니 부러진 것을 이어 놓았다. 얼굴에는 백호의 흔적이 보이고, 나발은 뚜렷하지 않으나 육계(정수리에 혹처럼 솟은 부분)는 뚜렷하다. 뒤쪽을 살펴보니 광배를 붙일 수 있도록 홈이 파져 있지만 현재 광배는 없는 상태이다. 크기나 형태를 보건대 이쯤이면 보물급인데 그렇게 지정이 되지 않은 것은 이 부처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는 것 같다.
모처럼 뜻하지 않게 문화재를 만나게 되어 경남의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나로서는 어째든 반갑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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