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30 사림동 회화나무>
창원시에는 53개소 87본의 보호수가 있는데 수종으로는 느티나무 27본, 푸조나무 23본, 팽나무 11본, 소나무 8본, 은행나무 3본 기타 15본이 지정되어 있다. 이들을 지역별로 보면 의창구 22개소 33본, 성산구 7개소 8본, 합포구 10개소 32본, 회원구 5개소 5본, 진해구 9개소 9본이 존재한다.
<2009/7/30 사림동 회화나무>
이 중 의창구 사림동 79-6번지에 위치한 사림동 할배 당산나무인 회화나무는 창원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종이다. 20013년 6월 14일에 2013-12-1호로 지정된 이 당산목의 수령은 300년, 나무 높이는 12m, 가슴높이 둘레는 480cm라고 창원시는 기록하고 있다. 가슴높이 둘레를 실측 해보니 490cm로 10cm가 큰 것으로 나왔다. 이처럼 10cm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위치의 문제 일 것이다.
<2013/6/15 사림동 할배 당산나무>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창원시가 나무 나이를 산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회화나무는 수령이 500년 이상 되는 나무라고 퇴촌동 주민들은 주장을 하고 있다. 주민들의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 회화나무는 마을에서 봉림동으로 가는 길 옆에 위치했고 지금의 3배 정도 구역을 갖추고 있었으며, 근처 논 가운데 일정한 영역을 확보하고 둥근 동산처럼 있었다.
퇴촌동이라는 마을의 형성 연대는 가락국이 멸망하는 532년 이후로 추증하고 있는데 신라·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으로 변경되면서 지금의 ‘창원의 집’ 원주인인 낙향한 김씨가에서 회화나무를 심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수령은 300년이 아니라 600년으로 올려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9/2/12 사림동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운이 흘러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고 하였다. 회화나무는 권력 있는 선비의 집이나 서원(書院), 절간, 대궐 같은 곳에만 심을 수 있었고, 특별히 공이 많은 학자나 관리한테 임금이 상으로 내리기도 했다. 이 나무에는 잡귀신이 감히 범접을 못하는 좋은 기운이 있으므로 열매를 이용하여 부적을 쓸 때 만드는 종이를 물들일 때 사용한다.
이 회화나무 아래에는 유구한 세월을 거친 성혈이 많은 고인돌이 놓여 있는데 깨어진 고인돌의 큰 돌에 “퇴촌 괴헌정(退村 槐軒亭)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고 그 좌측에 ‘광무9년 을사년(光武九年 乙巳年 : 1905년) 3월’이라는 글귀가 있다. 그해 10월에는 을사늑약이 맺어져 조선이 망하는 안타까운 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회화나무 삼면에는 개인주택이 건설되어 있는데 보호수로 지정하면서 주변을 정리하지 못하고 안쪽이 너무 낮아 물빠짐이 문제가 되고 그나마 사람들이 채소를 경작하고 있어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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