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강민첨이 심었다는 두양리 은행나무

천부인권 2014. 11. 17. 06:00

 

 

<2014/11/4 두양리 은행나무>

 

옥종면 청룡리 은행나무와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 때 머물렀다는 이홍훈가를 구경하고 은열공 강민첨장군을 모시는 두방재(斗芳齋)로 향하는 길에 옥종면 두양리 산36번지에 있다는 두양리은행(斗陽里檭杏)”나무를 찾아보기로 했다. 1005호 국도를 따라 두양리 방향을 가다보면 좌측에 두양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옥단로라는 도로를 따라가면 좌측에 두양천이 흐르고 있다. 두양마을 못 미쳐 두방교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차량 한 대 지날만한 콘크리드로 만든 경사가 상당히 가파른 산길을 만난다. 이 산길을 올라가면 좌우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길을 선택하고 급경사를 따라 끝까지 가면 해발 220m 높이의 대나무 숲속에 우뚝 솟아있는 두양리은행나무를 만나게 된다.

 

 

 

 

두양리 은행나무는 진양강씨 은열공파 중시조이신 강민첨 장군이 선조(先祖)의 사적지(事蹟址)인 이곳 두양재에 왔을 때 심었다고 한다. 이곳 지형을 보니 지금은 대나무가 무성하지만 옛날에는 밭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밭을 만들기 위해 돌축대를 쌓았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두양리은행나무 역시 도장지(徒長枝)가 잘 발달해 있었고 아직은 완전한 노란색 단풍으로 물들지는 않았다. 더 안쪽에는 성인키보다 큰 선돌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 선돌의 의미는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은행나무 아래에는 돌의 안쪽을 둥글게 판 돌이 있었는데 이 돌 역시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은행나무 아래 바닥에는 참나물이 지천에 있어 봄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귀한 찬거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 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구팔공산의 갓바위와 마찬가지로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면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다는 구전이 전해와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 안내판의 내용은 이렇게 적었다.

1983·12·20일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된 두양리은행(斗陽里檭杏)나무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우뚝 서있다.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약 900년이고, 높이 27m, 가슴높이 둘레 9.3m, 동서 21.5m, 남북 18.3m로 풍부한 가지를 펼치고 있다.

고려시대 은열공 강민첨(殷烈公 姜民瞻 : 963·11·29 ~ 1021·11·12)장군이 15세까지 진주향교에서 공부하다가 선조(先祖)의 사적지(事蹟址)가 있는 이곳에 와서 은행나무를 심고 무술을 연마하며 학문을 닦았다 한다. 이 은행나무 동편 20m지점에는 높이 4m의 활 쏘는 곳이 지금도 대나무 숲 속에 우뚝 서 있다.

이 나무 그늘은 여름날 농사에 지친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 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면 영험을 본다고 믿고 있다. 지금도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