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진동면 교동리 보호수-느티나무

천부인권 2014. 12. 11. 19:10

 

 

<2014/11/30 진동면 교동 보호수-느티나무>

 

조선초기의 교육정책은 성리학(性理學)을 통한 통치이념을 심는 것이었다. 태조(太祖)는 한양에 성균관을 건립하고 지방에는 사대부를 교육하는 향교설립이 최우선 과제였다. 태조의 교육정책을 이어받은 태종(太宗)은 향교의 수학(修學) 성과를 수령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삼고 13(1413)에 각 향교의 관리 및 유지에 충당할 비용을 마련토록 학전(學田)을 지급하는 등 강력한 정책을 추진했다. 전국의 행정단위마다 고루 1개소씩 향교가 설치되어 전국의 향교는 모두 360개로 늘어나 명실 공히 지방 교육기관으로서의 체제와 규모 및 기능을 완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향교는 234곳이다.[출처 : 성균관]

 

 

 

 

창원지역에는 조선시대에 웅천향교, 진해향교, 창원향교 3곳에 향교가 건립하였으나 1909년 진해현이 없어지면서 진해향교는 폐교되었고, 1915년에는 웅천향교가 폐쇄되어 창원향교로 통합 되었다. 이후 1966년 마산시에 진동면이 편입 되면서 창원향교에서 분리되어 마산향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하였다.

 

 

 

 

조선시대 어느 지역이나 향교가 있는 마을의 지명은 교동(校洞)”이 많았는데 창원지역에서는 진동면 진해향교 앞마을이 교동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다. 옛 진해현의 행정구역 설립으로 진해향교가 건설 되면서 향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자 마을 이름도 자연히 교동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창원향교나 웅천향교는 향교가 들어서기 전에 이름을 가진 마을이 그 지역에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교동이라는 지명이 생기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창원에서는 유일하게 향교와 관련된 마을 이름을 가지고 있는 교동에는 오랜 역사만큼 함께해온 마을 당산나무가 19821110일 관리번호 12-17-6-7-1호의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 보호수 앞 안내판이나 창원시 보호수 상세내력에는 나무나이 300, 나무높이 18m, 나무둘레 420cm라 기록하고 있다.

 

 

 

 

진동면 교동리 722번지에 위치한 보호수 느티나무는 뿌리부분에서부터60cm의 높이에서 9개의 가지가 갈라지고 있어 줄기의 높이는 60cm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60cm 높이의 나무둘레를 재어 보니 650cm이고, 밑둥의 둘레는 700cm이며, 가슴높이 가지들을 각각 재어 보니 375cm, 318cm, 250cm, 165cm 등이다. 진동면 교동리 느티나무 보호수의 높이는 25m로 꽤 높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