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보물 2개를 간직한 보천사지

천부인권 2014. 12. 16. 18:08

 

 

 

<2014/12/11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

 

의령읍 하리 797-4번지에는 두 개의 대한민국 보물이 전해 오는데 보물 제373호인 보천사지삼층석탑(寶泉寺址三層石塔)과 보물 제472호인 보천사지부도(寶泉寺址浮屠)가 그것이다. 이 두 보물은 200m 간격을 두고 서 있으며, 보천사는 통일신란 경덕왕(742~765) 때에 창건 되었다고 하나 고려 초기에 번성했던 절로 추정될 뿐 더 이상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이 보천사지는 땅의 형태를 보면 중리천이 범람을 하여 만든 계곡의 편평한 땅위에 창건이 되었던 모양을 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 중기에 이미 폐사가 되었고 그 원인은 빈대가 많아 중들이 절을 떠났기 때문이라 한다.

 

 

 

 

보천사지부도(寶泉寺址浮屠)보다는 위쪽에 위치한 보천사지삼층석탑(寶泉寺址三層石塔)은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탑으로 높이는 4.57m이고,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중석 및 각 면이 한 돌로 구성되어 있다. 상층기단의 중석은 우주를 새긴 큰 판석을 양면에 세우고, 다른 면에는 무늬없는 작은 석재를 끼운 구조로 탱주는 생략하였다. 옥개석과 옥신도 한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각층 옥개석 아래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특히 이 탑은 지대석의 네 귀에 각으로 홈을 판 돌기둥을 세워 기단부가 물러나지 않도록 조처했으며, 기단의 면적이나 갑석의 턱과 홈에 의한 견실한 결구 등은 아주 용이 주도한 축조물임을 보여준다. 또한 옥개석의 아름다운 곡선과 수직으로 끊어낸 처마의 전각 등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상층기단의 판석에는 먹으로 쓴 이름들이 보이고, 옥개석의 몸신에도 붓으로 쓴 이름들이 보이며, 탑의 몇 곳에는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어 6·25의 참혹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67년 도괴로 인해 해체 복원되었으며 이때 3층 옥개석에서 사리공, 상층기단에서 동제불상, 동제광배조각, 토탑 등이 발견 되었다.

 

 

 

 

보천사지부도(寶泉寺址浮屠)200911월에 방문했을 때 쓴 글을 대신하지만 보천사지승탑으로 불리는 이 부도에서도 아무른 역사적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보천사지는 화려했던 과거를 잊어버린 절이 되었다.

 

 

 

<2009/11/25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

 

 

<2009/11/25 의령 수암사 333개 약사여래상>

 

그러나 이 보물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옛길의 흔적을 따라 333개의 약사여래상이 도열을 하고 있는 끝에는 수암사가 자리를 하고 있어 천천히 수암사를 방문해 보는 것도 여행객의 재미를 더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