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솥바위와 정암루 그리고 정암철교

천부인권 2015. 1. 11. 11:07

 

 

 

<2014/12/10 함안 정암에서 바라본 정암루>

 

남덕유산에서 떨어진 빗방울과 산이 뿜어내는 물줄기가 합치고 모여 서부경남을 적시고 창녕 남지까지 흘러와 낙동강을 만나는 남강은 청룡이 하늘로 승천하기 위한 통로로 이용했을 법한 용트림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젖줄이다. 선사시대 이전부터 굽이굽이 흘러가는 남강의 품안에서 이 물길에 의존하여 인간들이 생명을 잉태하며 살았고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있다.

자연도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가듯이 인간사 그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 삶의 애환과 꿈이 담겨있겠는가 그러한 소망과 열망의 이야기가 남강을 따라 곳곳에 남아있지만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강물 깊숙이 뿌리를 내린 정암(鼎巖)일 것이다. 정암은 용이 여의주를 움켜진 발가락으로 여의주는 부귀영화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제왕의 위상으로 여의주를 가진 자가 곧 나라를 다스리는 주인임을 의미한다.

 

 

 

 

<2014/12/10 구 정암교에서 바라본 솥바위>

 

정암(鼎巖)이란 남강의 물속에 가마솥의 다리처럼 세 개의 다리를 뻗고 물위에 드러난 암석은 마치 솥뚜껑처럼 보인다는 정암이 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한자로 솥 정이라 하고, 바위 암이라 한다. 우리가 현대에 와서 생각하는 솥은 물을 끓이고, 음식을 익히는 무쇠로 만든 솥을 말하지만 이 발이 셋 달리고 귀가 둘 달린 음식을 익히는데 쓰는 기구인 솥의 뜻 속에는 존귀하다, 바야흐로, 이제한창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중국 하나라 우왕(禑王)이 구주(九州)의 금속을 모아 만든 아홉 개의 솥을 만든 후 처음에는 음식을 익히거나 죄인을 삶아 죽이는데 쓰다가 후에 왕위전승(王位傳承)의 보기(寶器)로 삼게 되어 국가(國家).왕위(王位).제업(帝業)의 뜻을 담게 되었다.

 

 

 

 

<국보 91호 기마인물형토기>

 

솥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으로 국보 91호로 지정이 된 신라 6세기 초, 높이 24cm인 기마인물형토기(騎馬人物形土器) 주인상을 보면 알게 된다.

 

 

 

 

<2009/11/25 구 정암교에서 바라본 솥바위>

 

 

 

<2009/11/25 구 정암교에서 바라본 솥바위>

 

 

 

<2009/11/25 정암나루에서 바라본 솥바위>

 

 

<2009/11/25 정암나루에서 바라본 솥바위>

 

남강이 의령과 함안을 넘나드는 길을 막자 경치가 수려한 이곳을 잇기 위해 정암나루가 생기게 되었고 나루를 관리하는 정암루(鼎巖樓)가 생겨났다. 정암나루는 함안과 의령을 잇는 길이 되자 함안 쪽에도 마을이 형성되고, 의령 쪽에도 마을이 생겨나 강을 마주보는 두 마을의 지명이 정암으로 불렸다.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 산1-1번지의 정암루가 소재한 곳은 남강변에 우뚝 솟은 언덕으로 조선 중기까지는 취원루가 있었던 자리이다. 임진왜란 등으로 취원루는 소실되어 없어졌고 1935년 이 고장 유림과 유지들이 의령의 관문인 이 자리에 정암루를 다시 재건하였다.

 

 

 

 

 

<2014/12/10 구 정암교에서 바라본 의령관문과 곽재우 동상>

 

이곳 정암나루는 1592년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들이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진주로 향하는 왜적을 물리친 승전지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정암루가 있는 옆 공터에는 돌산을 깨어내어 평지의 공간을 확보한 후 지금은 곽재우 장군의 동상을 세운 공원으로 개발을 하였다. 그리고 함안과 의령을 잇는 새로운 대교를 건설하여 의령의 관문으로 삼았다.

 

 

<2014/12/10 정암교에서 바라본 정암루>

 

정암나루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처절하게 전투에 패배하는 치욕적인 장소였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의령군과 함안군을 연결하는 구 정암철교(鼎岩鐵橋)를 일제의 물류수송을 위해 1935년에 철골트러스교로 건설하였다. 이 정암철교는 6·25사변으로 미군이 파괴를 하였고 1958년까지 남아있던 2개의 경간을 그대로 살려 상부는 철골트러스형식으로 재건하면서, 완전히 파괴된 부분은 새로운 교각을 세워 7개의 경간을 지닌 철근 콘크리트 T형보로 재건하였다. 이 두 개의 경간을 사용한 것이 201410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639호로 지정을 받는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구 정암철교(鼎岩鐵橋)는 경남 의령군과 함안군을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경남 서부지역 교통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교량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

 

 

 

<2009/11/25 정암루>

 

 

 

 

 

6·25사변 때 정암나루 아래를 건너오던 인민군 전차가 강물에 빠져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었는데 철근이 필요했던 시절에 사람들이 조금씩 잘라가다가 어느 날 모두 인양을 해갔다. 그리고 낙동강 하구언 수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이곳까지 숭어가 떼거리로 몰려와 겨울에 강이 꽁꽁 얼면 얼음을 깨고 잡기도 했는데 지금은 숭어가 아예 보이지 않는 생태계가 파괴된 강이 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파괴한 강의 생태계는 아직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강이 살아야 먹거리가 생긴다는 것을 언제까지 말을 해야 하는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