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12 함안 군북면 원북리 어계생가>
2009년 5월 4일에 이곳 어계생가를 찾았을 때에는 건물을 수리 중에 있어 어수선한 모습만 보고 나왔었다. 이번에 우연한 기회가 생겨 생육신 어계 조려의 생가를 찾았더니 생가 앞에서부터 말끔하게 정리를 하여 주차를 하기 쉽게 해 두었다. 당시의 사진을 보니 솟을삼문 앞이 상당히 좁았는데 지금은 차량이 회전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만들었다. 당시에도 집 앞에 가이즈카향나무를 일렬로 심어 두었는데 이번에도 입구를 확장은 했지만 나무는 그대로 두었다. 함안군이나 조려의 후손들이 일본의 정신을 상징하는 가이즈카향나무의 유래를 알았더라면 아마도 수종을 변경했을 것이다.
세종 2년(1420년) 성종 20년(1489년)] 조선 초기 단종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 본관은 함안(咸安). 자(字)는 주옹(主翁), 호(號)는 어계(漁溪). 경상남도 함안출신. 고려 공조전서(工曹典書) 열(悅)의 손자로,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안(安)의 아들이다.
단종 1년(1453년) 성균관 진사가 되어 당시의 사림 사이에 명망이 높았으나, 1455년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禪位)하자 성균관에 있다가 함안으로 돌아와서 서산(西山) 아래에 살았는데, 이 서산(西山)을 후세 사람들이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 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다만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 어계(漁溪)라 칭호(稱號)하였다. 숙종 24년(1698년)에 노산군(魯山君)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703년 경상도 유생 곽억령(郭億齡) 등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의 예에 따라 생육신인 조여도 사당을 세워 제향하도록 건의하였던바, 1706년에 그대로 시행되었다. 고향인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는 그를 비롯하여 김시습(金時習), 이맹전(李孟專), 원호(元昊), 남효온(南孝溫), 성담수(成聃壽) 등이 제향(祭享)되어 있다. 정조 5년(1781년)에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어계집(漁溪集)이 남아 있다. 시호(諡號)는 정절(貞節)이다.[출처 : 황세옥의 전통건축이야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592번지에 있는 어계생가(漁溪生家)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이 되었으며, 조선(朝鮮) 세종(世宗) 2년(1420년)에 태어나 성종(成宗) 20년(1489년)에 돌아가신 충신(忠臣)으로 단종시(端宗時) 생육신(生六臣)의 한 분인 어계은자(漁溪隱者) 조려(趙旅) 선생의 생가이다. 이 집은 어계선생(漁溪先生)께서 영월(寧越)에서 단종(端宗)의 시신(屍身)을 거두어 장례를 치루고 왕(王)의 얼을 동학사(東鶴寺)에 모신 후 이곳 백이산하(伯夷山下)에 은거(隱居)했던 곳으로서 지금은 후손들이 재실(齋室)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우진각 기와집으로 개와(蓋瓦)에는 무오(戊午) 9월 일(九月 日)이라 명문(銘文)되어 있고, 주변은 토담을 둘렀다. 이집 바로 뒤에는 어계선생(漁溪先生)과 정부인(貞夫人) 흥양이씨(興陽李氏)에게 향례(享禮)를 올리는 조묘가 있고, 이곳에 하사품(下賜品)인 동제향로(銅製香爐)와 그가 짚던 죽장(竹杖)이 보관되어 있다. 원북재(院北齋)에 있는 조묘는 어계선조와 정부인 흥양이씨(興陽李氏)에게 향례(享禮)를 드리는 곳으로 매년 3월 상정일(上丁日)과 9월 상정일(上丁日)에 거행한다.
조려선생이 일찍이 지은 "구일등고시(九日登高詩)"에는 선생의 뜻이 은미(隱微)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생가 기둥의 주련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구일등고시(九日登高詩)
구월구일시중구(九月九日是重九) 구월 구일은 중양절(重陽節)
욕수가절등고강(欲酬佳節登高岡) 좋은 계절 즐기고자 산등성이 올랐네,
백운비혜안남빈(白雲飛兮雁南賓) 흰 구름 뭉게뭉게 기러기 떼 날라 오고,
난유수혜국유방(蘭有秀兮菊有芳) 난초 잎 빼어나고 국화꽃 향기롭네.
산명수벽연참담(山明水碧煙慘憺) 산 밝고 물 푸른데 연기 가듯 참담(慘憺)하고,
풍고일정기처량(風高日晶氣凄凉) 바람 불고 햇살 맑은데 가을 기운 처량(凄凉)하네
적화토설강지호(荻花吐雪江之滸) 갈대꽃은 강가에 눈발처럼 휘 날리고,
풍장홍금산지양(楓粧紅錦山之陽) 단풍잎은 양지쪽을 비단같이 물 들였네.
두목기상취미수(杜牧旣上翠微峀) 두목(杜牧)은 호방(豪放)하게 취미(翠薇)산에 올랐고,
도잠창망백의랑(陶潛 望白衣郞) 도연명(陶淵明)은 술 심부름꾼 오기만 기다렸네,
천재풍류여작일(千載風流如昨日) 천 년 전 풍류(風流) 세월 어제일 같았는데,
지금호기늠추상(至今豪氣凜秋霜) 지금도 그 기상 서리 발처럼 엄숙하네,
회두거목강산모(回頭擧目江山暮) 머리 돌려 해 저문 강산을 바라보니,
지활천고사묘망(地闊天高思渺茫) 땅 넓고 하늘 높아 사념(思念)이 아득하네,
희헌원의비하극(羲軒遠矣悲何極) 희헌(羲軒)의 세상 멀어져 슬프기 한이 없고,
화훈불견심자상(華勳不見心自傷) 요순(堯舜) 시절 못 만나니 마음 절로 상하구나,
심음필하건곤활(沈吟筆下乾坤 ) 침통히 읊조리는 붓끝에는 천지가 망막하고,
난취준전일월장(爛醉樽前日月長) 흠뻑 취한 술잔 앞에 세월은 유유 하네
차재료도생고만(嗟哉 倒生苦晩) 가엷어라 이 늙은이 오래 삶이 괴롭구나,
회가인혜불능망(懷佳人兮不能忘) 마음속 그리운 임 잊을 수가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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