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12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802번지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0호로 지정된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晉州聖殿庵木造如來坐像)을 모시고 있는 성전암(聖殿庵)이 위치한 곳이다. 오봉산(五峰山 : 524.7m) 7부 능선인 350m 높이에 자리한 성전암은 암벽 사이를 삭평한 조그만 터에 높이를 달리하여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아기자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차량으로 성전암 마당까지 올라 갈 수 있으나 이반성면 장안로65번길 195에 위치한 孝子密陽朴公之碑(효자밀양박공지비)와 비각이 있는 오봉산 입구까지는 순조로운 길이지만 성전암으로 오르는 막바지 산길은 가파른 곡예를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아찔한 길이다.
이 성전암은 6·25사변 때 폭격으로 모든 건물이 파괴되는 비운을 맞았으나 “진주 성전암 목조여래좌상”이 폭격 속에서도 홀로 남아 불사(佛舍)가 건설되었고, 2010년 개신교의 신도가 방화를 하여 당시 대웅전과 전각이 불탔으나 또 다시 “진주 성전암 목조여래좌상”은 화마에서 빠져나와 주지 성공을 비롯한 성전암 신도들이 낙담하지 않고 새로 불사를 완성하였다.
이전에는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을 모신 전각을 대웅전이란 현판을 사용했지만 이번에 불사를 완성한 전각의 이름은 아미타여래를 모신 법당이라는 뜻에서 무량수전(無量壽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무량수전의 기둥은 12그루의 국내산 느티나무를 나무 모양대로 자연스럽게 다듬어 세워 건물에 자연미를 더했다.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晉州聖殿庵木造如來坐像)은 배 안의 복장유물(불상을 만들 때 남긴 기록과 경전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이 불상은 조선 인조 22년(1644)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불상은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의 불상을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성전암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중기의 불상 목조로 제작된 높이 60㎝, 폭 43㎝의 작은 여래좌상이다. 머리 부분은 상투 모양의 육계와 중앙계주의 표현이 있으며, 작은 입을 꼭 다문 모습으로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모습이다. 옷자락은 양쪽 어깨에 걸쳐서 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아미타불의 9가지 수인 중 하품하생인을 짓고 있다. 전체적으로 여래좌상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출처 : 디지털진주문화대전]
이곳 안내판에 있는 내용에는 성전암은 신라 헌강왕 5년(879)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도선은 우리나라를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하여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한강 이북인 삼각산에 한 지맥이 머물렀고 남강의 물을 끼고 있는 여항산에 와서 다른 한 지맥이 맺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도선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성전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성전암은 조선 제16대 왕 인조(仁祖 : 1623∼1649)와 인연이 깊은 도량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 능양군(綾陽君) 시절에 외갓집 인근의 오봉산 성전암에 머물며 100일 기도를 올렸다. 야인(野人)으로 전국을 떠돌던 능양군이 석 달 열흘간 국난 타개를 위해 이 성전암에서 정성을 다한 결과 임금이 되었다. 이 절은 인조를 기리기 위해 인조각을 세웠으며, 오늘날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다.
이곳에 기도를 올리는 많은 중생들은 인조의 뜻을 이루게 한 기도처인 만큼 간절한 기도를 하면 그 기도처럼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기 위해 이곳 성전암을 찾는 이가 많다. 무량수전에서 기도를 하는 분과 이야기를 해보니 자신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고 이곳을 처음 찾게 되었다며 기도를 끝내고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고 있었다.
성전암 인조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특히 해지는 노을을 바라 볼 수 있다면 그 환상적 풍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갈 길이 바쁜 탓에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晉州聖殿庵木造如來坐像)의 모습만 사진에 담고 하산을 하였다.
<인조각 내부 전경>
<인조각 앞에서 바라본 이반성면>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晉州聖殿庵木造如來坐像)>
<성전암 부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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