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내서읍 평성리 상수리나무 노거수와의 공생

천부인권 2015. 3. 20. 08:57

 

 

 

<2015/3/19 내서읍 평성리 상수리나무>

 

마산회원구 내서읍 평성리 660번지는 평성마을 일대의 모든 도로 지번이다. 이처럼 도로지번이 등장하는 것은 내서읍 평성리 상수리나무 노거수라 명명하는 나무가 안성로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가려 한다면 평성리 261-3(안성로 3-1)번지로 가면 오히려 쉽게 내서읍 평성리 상수리나무 노거수를 만날 수 있다.

 

 

 

 

도로의 특성상 차량이 진출하는데 불편한 것들은 제거하고 평면이 되도록 하여 차량의 원활한 통행에만 집중하다보니 마을의 노거수나 중요한 민속들이 파괴되어 그 마을만의 특성들이 사라져 왔다. 그런 측면에서 평성리 상수리나무의 생존은 인간이 모든 자연과 함께할 수 있다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 하겠다는 의지로 여겨져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제는 생각이 바뀌고 있음을 알 게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인간이 노거수와 공생을 택하는 데에는 경제적 부()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들의 추억 속에 존재하는 노거수나 당집 등이 그리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상수리나무의 나이는 150~200년으로 추정이 되고, 나무높이 13m정도이며, 가슴높이 둘레는 230cm이다.

 

 

 

 

상수리나무는 인류가 최초로 먹을거리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다가간 나무로 도토리묵을 만드는 가장 우수한 나무이며, 가장 좋은 품질의 숯을 만드는 재료이며, 침목, 장작, 기구재, 기둥, 선박재, 화목, 버섯의 골목, 통나무관 등 너무나 다양하게 활용되어 나무 중의 나무, 진짜나무라는 의미를 가진 참나뭇과의 대표적 나무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난을 피해 도망을 가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선조 임금의 수라상에 묵이 올라와 선조가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터라 전란이 끝나고 그때 먹은 것을 잊지 못해 구해오라고 하여 늘상 먹었다하여 상수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한 상수리나무에 도토리가 많이 열리면 흉년이 들고 상수리나무에 열매가 적게 열리면 들판은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이는 봄에 가뭄이 지속되고 바람이 많이 불면 풍매화인 상수리나무는 수분이 잘되어 열매가 많이 열리는 특징을 이르는 것이다.

특히 우리지역 동읍 다호리에서 발굴된 가야시대 목관으로 쓰인 나무가 상수리나무이며, 부곡면 비봉리에서는 도토리를 보관했던 흔적과 실재 도토리가 발굴되기도 했다.

 

 

 

 

상수리나무는 참나뭇과()에 속한 낙엽 교목으로 키는 20~25미터까지 곧게 자라며, 학명은 Quercus acutissima이다. 나무껍질은 검은 회색으로 세로로 갈라지며, 잎은 밤나무 잎과 비슷하게 생긴 긴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으며, 잎 뒷면에는 털이 있다.

암수한그루로 5월에 꽃이 피고, 공 모양의 열매는 이듬해 10월에 익는다. 열매인 상수리를 가을에 따서 가루로 만들어 떡 또는 묵을 만들어 먹거나 밥에 섞어 상수리밥을 지어 먹는다. 열매를 삶은 물은 염색약으로 쓰이기도 하며 재목은 기구재나 땔감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타이완, 네팔, 미얀마 및 만주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 국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