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구산면 난포리 팽나무 노거수

천부인권 2015. 4. 23. 08:11

 

 

 

<2015/4/21 난포리 팽나무 노거수>

 

1993년 옛 지명 찾기 사업으로 卵抱里(난포리)로 개칭되었지만 세종 실록 지리지[1454]에서는 여포(餘浦)와 여음포(餘音浦)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 동국 여지 승람[1530]에는 여음포로 기록되어 있으며, 호구 총수[1789]에는 칠원현 구산면 남포리로 확인된다. 특히 난중일기1592(선조 25) 57일 기록에서 藍浦(남포)가 확인되고 있다. 이날 이순신(李舜臣)과 원균(元均)의 연합함대가 거제 玉浦(옥포웅천 合浦(합포) 해전에서 31척의 왜선을 무찌르고 창원 藍浦(남포)에서 진을 치고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였다는 기록에서 卵抱里(난포리)의 옛 지명이 藍浦(남포)였음을 알게 한다.

 

 

 

 

난포리 뒤 烽火山(봉화산)은 예전에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통신수단의 하나인 봉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카톨릭교육관이 들어서 마을의 지맥을 누르는 형국이라 보기가 흉하다.

 

 

 

<버스정류소가 있는 풍경>

 

 

<기록하지 않은 다른 한그루의 밑둥 둘레는 276cm이다>

 

 

<두 그루 처럼 보이는 모습>

 

난포리 팽나무 노거수라 명명하는 이 노거수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나이가 150년 가슴높이 둘레 300cm, 높이 13m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번 탐방에서 주민을 만나니 나무의 아랫부분은 1m이상 흙을 덮어 올렸다고 하고, 두 그루로 보이는 이 나무는 덮인 흙을 파면 뿌리가 하나라고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주민의 말처럼 500년 이상 되는 노거수로 인정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또 이곳을 숲이라 부르고 있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커다란 소나무 등 노거수가 밖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이 주민은 팽나무 앞이 지금은 육지이지만 예전에는 바다였다고 증언해 주었다.

 

 

 

<2015/4/21 난포리 전경>

 

난포리 팽나무 노거수가 위치하는 곳은 구산면 난포리 342번지로 이 지번의 모양을 보면 사라진 숲이 어떤 형태로 자리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고, 삼덕물산이 자리한 곳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고 그 배후까지 갈대가 무성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