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대산면 우암리 소나무 도래솔

천부인권 2015. 5. 20. 06:22

 

 

<2015/4/15 우암리 소나무 도래솔>

 

대산면 牛岩里(우암리)는 대산평야의 동쪽에 있는 고립된 구릉선 산지인 월림산(79m)의 산록을 중심으로 우암마을·덕현마을·월림마을·신곡마을·용등마을·동곡마을·중포마을 등의 7개 자연마을로 형성된 낙동강의 배후습지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우리나라의 聚落(취락)은 남향·동향·남동향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암리는 대산평야가 서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경지와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주로 서사면(西斜面)에 마을이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우암리의 이름은 마을 뒤에 있는 소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고, ‘동쪽에 있는 바위를 뜻한다고 해서 생겼다는 설도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우암리 고분군, 우암리 우암 당목, 우암리 고인돌 등이 있다.

 

 

 

 

대산면 유등리에서 牛岩里(우암리)로 오다보면 동곡버스정류장을 만나고 그 우측 대산면 우암리 118에 위치한 우암리 소나무 도래솔을 볼 수 있다. 이 도래솔이 감싸고 있는 묘의 상석에는 孺人金海金氏之墓 慶州李公諱世章墓在頭洞戹垷嶝이라 기록한 것을 볼 때 김해김씨 부인이 주인공인 것 같다. 3그루의 도래솔 중 가장 큰 것의 나이는 대략 150년으로 보이고, 가슴높이 둘레를 재어 보니 270cm이며, 높이는 17m이다.

 

 

 

 

 

둥근 방석도 그 모양에 빗대어 도래방석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도래솔이란 무덤가에 둘러 심은 소나무를 가리키는 말로서 둘레 소나무가 줄어 도래솔이 됐다.

도래솔의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고구려 9대 고국천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왕비 우씨는 둘째 시동생 연우를 도와 10常山王(상산왕)에 오르게 한다. 이후 우씨는 상산왕에게 개가해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왕비를 두 번한 여인이다. 고국천왕의 왕비로 18, 이어서 상산왕의 왕비로서의 30년을 합쳐 두 임금 48년에 걸쳐 영광을 누린다.

동천왕 8(234)에 죽으면서 지하에서 고국천왕을 만날 면목이 없으니 상산왕릉 옆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그러자 고국천왕의 혼백은 나라의 유명한 무당에게 나타나 백성 보기에 민망하니 나의 무덤 앞을 막아버리는 가리개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무당이 동천왕에게 이를 알려서 고국천왕의 능 앞에는 자그마치 일곱 겹으로 소나무를 심었다고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