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한국의 스톤헨지 창원 환주산과 회원현성지

천부인권 2015. 9. 2. 11:05

 

2015/9/1  환주산 정산의 모습

합포구 자산동 산 17-1번지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88호로로 지정된 회원현성지會原縣城址가 있는 정상부이다. 이곳에는 이름 없는 망루가 건설되어 있으며, GPS고도계는 해발 146m를 기록하고 위도 35°12'29"N 경도 128°34'04"E를 가리킨다. 

(고리 환) + (구슬 주) + (뫼 산)둥근 구슬이 있는 산또는 구슬이 고리모양을 하고 있는 산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환주산은 추산동(騶山洞)에 위치하고 있다. 혹자는 [‘환주(還珠)’진주가 돌아왔다는 의미이며, 선정을 펼친 수령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환주산 정상부의 모습

 

 

두척산이 바다를 향하다 마지막 혈 자리를 숨긴 곳이 環珠山(환주산, 143.8m)으로 산의 정산에는 환주를 이루는 바위의 일부가 훼손되기는 했으나 몇 개는 그대로 환을 이루면서 자리를 하고 있다. 이 바위는 옛 선인들이 세운 것으로 보이며, 스톤헨지처럼 둥근 환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환주의 의미가 퇴색 된 이후 이곳은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되어 토성을 쌓아 성곽의 형태를 유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현재 이곳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을 한 회원현성지가 되지만 성지보다도 둥근 환을 이루는 바위가 있어 환주산이라는 지명이 생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토성이 굽어져 이어지는 곳

 

 

 

고려사(高麗史)57() () 11 지리(地理)2, 경상도(慶尙道) 금주조(金州條)에는 (忠烈王八年 更名會原陞爲縣令以賞元世祖東征供億之勞 別號還珠有月影臺)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1282(충렬왕 8)에 원나라 세조가 동정(東征)할 때 크게 협조한 공로의 상으로 지명을 회원(會原)이라 고치고 현령으로 승격시켰다. 별칭으로 환주(還珠)라고 부르고, 월영대(月影臺)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회원이라는 지명이 생기는 충열왕 8년 이전에 이곳의 지명이 환주라는 것인데 이는 환주산 정상의 스톤헨지 같은 환주가 있어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그러면 환주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

아마도 오래 전 마산만을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던 이 땅의 주인들이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험난한 바다에서 사고 없이 풍어를 이루도록 기원하는 장소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환주산은 신라에게 멸망하는 골포국(骨浦國)의 왕이 직접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회원현성지의 모습

 

 

이곳 환주산의 會原縣城址(회원현성지)는 마산합포구 자산동 산 12-4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지역 주민들은 玆山山城(자산산성)이라 불렀다. 이 성은 몽고의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였던 征東行省(정동행성)과 합포성을 옮기기 전 節度使營(절도사영) 등 중요 군사시설이 있던 유서 깊은 장소이다.

 

 

판축기법으로 쌓고 시대별 모습을 보여줌

 

 

성벽은 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약 620m 정도가 잔존하고 야산 등성을 따라 너비 4.3~5.2m, 최고 높이 4.5m 규모로 축조된 包谷式城(포곡식성)으로 남북방향의 긴 장타원형 모습을 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성벽은 여러 번에 걸쳐 수리되어 재차 사용되었음과 흙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版築(판축) 기법으로 축조되었음을 밝혔다.

성의 동북쪽은 騶山洞(추산동) 뒷산으로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고, 남쪽은 玆山川(자산천)이 흘러 자연적인 해자 구실을 한 것으로 보여 진다. ...북 모두에 門址(문지)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1988년도 조사에서 북문의 자리와 적의 접근을 낙기 위해 도랑(垓字)을 팠던 곳을 확인했다. 2005~2006년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2007~2008년 회원현성지의 토성(315m)과 산정상부에 망루 1동을 복원했다고 한다.

 

 

 

 

<망루 아래쪽에서 바라본 마산만 모습>

 

이름도 없는 망루와 환주의 훼손을 낳은 건물 복원

 

 

2008년도에 환주산의 가장 중요한 위치인 정산부에 세운 이 망루는 이름도 없는 그냥 望樓(망루)이고, 사방을 관망할 수도 없는 형태라 망루라 부르기가 민망하다. 따라서 망루는 시가지와 바다가 보이는 아래쪽으로 이전하여 시민들의 이용을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성스러운 환주를 훼손하고 이름도 없는 망루를 지었다는 것은 시대적 정신을 스스로 망치는 행위에 불과하다. 창원시는 성곽의 복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이루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그 위상을 기리고, 성대하게 복원하여 해상왕국의 위용을 자랑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