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내서읍 전안마을의 묵암 백경수 효행비

천부인권 2015. 11. 6. 12:30





내서읍 신감리 1281-3번지는 전안마을 느티나무 노거수가 위치한 부근의 길옆 이다. 이곳에는 전면에 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知義禁府使黙庵水原白公孝行碑(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지의금부사묵암수원백공효행비)라 새긴 묵암 백경수 공의 효행비가 있다. 이 비의 내용에 의하면 白景洙德源이고, 黙庵이다. 지극한 효심의 공은 물고기가 나오지 않을 때에 물고기를 잡으려 가니 물고기가 스스로 잡혔고, 려막에서 시묘 3년상을 지내니 호랑이가 수호를 해 주었다고 한다. 정부인은 밀양 박씨이다.

고종 무진년(1868)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知義禁府使가 재수 되었다고 기록했다. 이 비문을 쓴 사람은 조원규로 -丙午 八月 上浣 咸安 趙元珪 撰- 했다고 적었다.

 





백경수는 일찌기 효성이 지극하여 양친을 봉양함이 극진하여 하늘이 감동하는 이적을 낳았다고 한다. 마을에 불이 나서 불길이 그의집으로 옮겨 붙게 되니 뜰의 감나무를 붙들고 호곡을 하니 느닷없이 역풍이 불어 불길을 돌리고 난데없이 비가내려 불이 꺼졌다. 부모를 위해 때아닌 겨울철에 물고기를 구해다 봉양하고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범이와서 여막 밖을 지켜주었다. 효행이 알려져 고종 5년(1868)에 가선대부호조참판겸 자의금부사로 증직되었다.





공의 휘는 경수요 자는 덕원이며 호는 묵암으로 휴암 인걸의 후예이다. 칠세조 홍생이 사화에 환멸을 느끼고 파주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회산의 감천에 은거하였다. 자손들도 따라서 감천 사람이 되었다. 공의 천성은 효성이 지극하여 양친을 봉양함에 사랑과 공경을 다하고 즐거이 부모를 섬겼다. 하루는 이웃에서 불이 났는데 불길이 그곳으로 곧 번져 오려고 하자 공이 긴 나무를 안고 하늘에 호소하니 바람이 반대쪽으로 불고 비가 내렸다. 또 계절이 아닌데도 고기를 구하자 개천의 고기들이 스스로 뛰어 나와 잡혔다. 여묘살이 삼년 중에는 호랑이가 와서 호위를 하였으니 지극한 효성이 없으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공의 부인은 정부인 밀양박씨이고 공과 같이 덕스러웠다. 고종 무오년 때 가선대부 호조참판겸지 의금부사로 증직 되었다. 지금 돌을 다듬어 세우고 제반 공사를 주도한 사람은 현손 길흠, 곡종, 승영이다. 나에게 글을 청하기에 사실의 말을 기록하였으니 후손들은 오래도록 잊지 말지어다.
병오년 8월 상순 함안 조원규 지음

출처 및 참조

내 고장 전설-의창군

비문 내용

1994년 창원군지





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知義禁府使黙庵水原白公孝行碑

公諱景洙字德源號黙庵水原人 休菴仁傑之后也 七世祖弘生懲室禍自 坡州南下隱居 于檜山甘泉 子孫遂爲甘泉人 公天性至孝 奉養二親愛敬 備盡爲親之嗜 庭養嘉梯 一日隣里失火 火將延矣 公抱樹長 號天乃反風而雨又 有非時求魚川魚自躍 廬墓三年虎來相守之異 非誠孝之感神鳥能有是 配貞夫人密陽朴氏與夫公同德 高宗戊辰 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知義禁府使 今代石 而竪于周道者 玄孫吉欽谷鍾承榮也 請余文記實書此侈之以資 後人之不忘焉爾
丙午年 八月上浣 咸安 趙元珪 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