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진주 원내리 보호수와 진주류씨 유홍림 유허비

천부인권 2016. 9. 19. 06:00



<2015.3.6 원당 경로당과 느티나무 노거수>



20153월 진주시 수곡면의 문화재 탐방을 하던 중 만나게 된 원내리 보호수와 진주류씨 유허비각을 보게 되었다. 시간을 쪼개어 문화재 탐방을 하다 보니 보통은 지나치기 일수 이지만 노거수에 관심을 가지면서 마을의 수호신격인 노거수가 있으면 한 번씩 이처럼 기록을 한다. ‘원내리 느티나무 보호수에는 마을 동제를 지내 왔지만 1990년 미신타파라는 시대정신과 동민들의 의식부제로 사라졌다.





원내리 느티나무 노거수는 수곡면 원내리 345번지에 있는 느티나무로 19881027일 지정(12-9-16-1)되었다.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수령은 400년으로 1본이고, 흉고 둘레는 4.3m, 수고는 13m이며 소유자는 수곡면 원내리 마을공동이다. 지정사유는 거목으로써 수관발달이 고루 되어 경관이 좋아서 이고 나무의 특징은 동공부패부위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출처 : 진주문화사랑-황경규]




<수령 400년의 원내리 느티나무>



<2015.3.6 상서공유허비각>



원내리 느티나무 노거수가 위치한 진주시 수곡면 원내리 347-1번지에는 지금은 원당경로당이 건설되어 있다. 옆에는 晉州柳氏尙書公洪林遺墟碑閣(진주류씨상서공유허비각)과 비 및 식읍을 표시하던 경계석이 있다.

아마도 진양지 제2亭臺(정대)편에서 기록한 洪林亭(홍림정)의 위치가 이곳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내용은 洪林亭在元堂村前大樹蔭履洞人遊賞必於此焉원당 마을 앞에 있다. 큰 나무들이 그늘을 지어 덮었는데 동인들은 유상을 반드시 여기서 하였다.이다.




<2015.3.6 상서공유허비각이 있는 원당경로당 자리가 홍림정의 위치 일 것이다>




진주류씨의 시조는 류정(柳挺)으로 고려 중기에 금자광록대부 중서령 좌우위상장군(金紫光祿大夫 中書令 左右衛上將軍)에 이르고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진주(晉州)로 삼게 되었는데, 진주의 옛이름은 진강(晉康), 진녕(晉寧), 진원(晉原), 진양(晉陽), 진흥(晉興), 진산(晉山), 진천(晉川), 청양(菁陽), 청천(菁川), 강주(康州)등 여럿으로 불렸음이 자손들이 받은 봉군작호(封君爵號)에서 알 수 있다.

류정(柳挺)은 고려 희종 대에서 고종조에 걸쳐 정계에서 크게 활약했던 진강후 최충헌(晉康侯 崔忠獻)의 외조부로, 오래도록 진주에서 살아 온 토족(土族)출신이다. 고려 무신인 최충헌이 집권 할 때 우봉 최씨가에서 사위와 며느리를 들이는 등 당시엔 진주류씨 가문의 권력을 짐작케 한다.[출처 : 다음 블로그-벽강]





이 유허비의 주인공인 류홍림은 류정의 4세손이며, 벼슬은 평장사를 거쳐 진양부원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인근에 1987년 유한양행 설립자 류일한씨가 문중 산자락에 건립한 재실이 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진주류씨의 식읍의 위치를 표시한 경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