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벚꽃 휘날리던 날 가본 김해 진영 미양서원

천부인권 2016. 4. 7. 08:33



 

<2013.4.7 김해 진영 미양서원 입구>

 

2013473년이 지난 오늘은 비가 내리지만 그날엔 벚꽃이 바람에 휘날리는 멋진 봄 풍경을 연출하던 날이었다. 지금도 경상남도의 문화재를 찾고 있지만 3년 전 오늘도 문화재를 찾아서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 산 61-4(진영로 430-16)에 위치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2호로 지정이 된 薇陽書院(미양서원)으로 갔었다. 14번 국도가 지금의 대로가 아닌 편도 1차선이던 시절 진영읍을 지나 김해로 막 빠져나가는 길옆에 위치한 미양서원은 주소가 산 61-4번지라 산속에 있는 줄 알아도 사실은 길옆에 붙어있다.





 

<2013.4.7 미양서원 정면>

 

미양서원의 입구에서 외삼문인 不貳門(불이문)까지 가는 길 양쪽에는 흐드러진 벚꽃이 도열하여 피어있었다. 불이문 앞 광장에는 미양서원을 알리는 안내판과 비석이 서있다. 이곳에 세운 안내판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불이문 아래로 본 미양서원 강당>

 

薇陽書院(미양서원)에 보관된 책판은 조선 전기의 학자 西岡 金係錦(서강 김계금, 1405~1493)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1915년 후손 金奎東(김규동)이 제작한 것이다. 문집에는 선생이 쓴 시 3수가 전하는데 모두 어린 임금 端宗(단종)에 대한 그의 충성심을 노래하고 있다.

책판은 표지를 포함하여 모두 26매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교적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20세기 초의 목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김계금은 판서 金墩(김돈)의 아들로 1454(단종 2)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다. 世祖(세조) 원년(1455)集賢殿 權知學諭(집현전 권지학유)가 되었으나 이듬해 死六臣(사육신)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화를 당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집현전 학사를 지낼 만큼 문장이 뛰어나고 의로운 행동으로 이름이 높아 죽은 뒤에 유생들이 그의 사당을 세워 추모하였다.







 

불이문이 굳게 닫혀있어 불이문 아래로 카메라를 놓고 미양서원의 현판이 달려있는 강당만 촬영을 하고 광장을 둘러보니 미양서원의 좌측 야산으로 가는 길에는 서강선생 묘소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미양서원의 전체 풍경을 담는 것은 포기를 하고 좌측의 묘소방향으로 가다가 담장 너머로 강당과 사당의 모습을 촬영했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아쉽지만 미양서원 건물의 모습은 이것으로 만족했다.

 


 


20m 좌측 야산을 오르니 잘 정리된 묘소가 나타난다. 묘소는 위쪽과 아래에 각각 문인석을 세우고 비석을 세운 모습으로 보아 아래쪽의 묘가 서강 김계금 선생의 묘인 것을 보아 위쪽은 선조의 묘로 보였다.

 



 



서강선생의 묘소 좌우에는 문인석이 세워져있고, 묘의 앞에는 판석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으며, 판석 뒤에는 金先生係錦之墓(김선생계금지묘)”라고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하대석은 보이지 않지만 비신 위의 蓋石(개석)인 종모양의 冠石(관석)에는 연꽃 봉우리 2개가 조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