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분성배씨의 시조를 모신 김해 칠산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36호)

천부인권 2016. 9. 9. 23:07



<2016.9.9 칠산재 외삼문 광정문>


 

김해시 화목동 1334번지에 위치한 七山齋(칠산재)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36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칠산재는 七山(칠산;89m) 중턱에 자리잡은 盆城裴氏(분성배씨) 시조인 盆城君(분성군) 裵元龍(배원룡; 2927)의 묘 인근에 배씨의 始祖(시조), 中始祖(중시조), 受貫祖(수관조:관을 받은 조상) 세분을 봉향하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盆城(분성)은 분산산성이 있는 곳으로 김해의 진산이다. 분산산성 안에는 봉화대, 만장대, 해은사, 충의각 등을 볼 수 있다.

 



<칠산재 정면>


 

김해읍지 本朝(본조)에 따르면 배원룡은 驪朝(려조) 사람이다. 벼슬이 平章事(평장사)에 이르고 분성군에 봉해졌다. 편지로 鄭圃隱 (정포은)에게 盆山山城記(분산산성기)’를 지을 것을 청하여 받았다는 사실이 선생의 문집과 本府(본부)勝覽:승람에 나타난다.고 기록 되어 있다.

 

분성배씨 수관조인 분성군 배원룡은 고려 우왕 11(1385)년에 鷄林府尹(계림부윤)으로 있으면서 () 4(4)을 베었다. 輿地圖書(여지도서)에는 신증 배원룡은 고려시대 말 사람이다. 벼슬이 병부상서 겸 도원수에 이르렀다. 왜구의 우두머리를 친 공로로 분성군에 봉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직사와 광>


 

문화재청 기록에는 현 분성배씨의 파조로 그에 의해 관향이 분성으로 되었다. 1759(英祖 己卯)에 간행한 盆城世譜金海七山宮谷而라 한 것으로 보아 18세기 중엽 이전에 칠산재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에도 1764(甲申)宗人들이 모여 宗會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19011월에 작성된 김해시청 재산대장 내역서에 칠산재가 배씨 문중 재실(경남 김해시 화목51334번지)로 등재되어 있다.1900년대 이후 수차례 걸쳐 중수되었으며 수리내용을 살펴보면, 1907년과 1958년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현재의 모습은 1958년 대대적으로 중수한 이후의 모습으로 생각된다. 칠산재는 근대기에 건축된 盆城裴氏 受貫祖盆城君 裴元龍인근에 건축된 재실로, 묘와 재실의 배치관계를 잘 보여준다. 고려시대 묘를 갖춘 재실로서의 경관이 잘 보존된 근대기 재실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당에 세운 공적비>

 

七山(칠산;89m)은 김해평야의 중앙에 독립적으로 위치한 나지막한 산으로 동쪽 산자락을 따라 주택이 밀집해 있는 형태이다. 칠산재가 위치한 곳은 칠산의 중간쯤 이고, 화목동에서 좁다란 마을길을 따라 산위로 계속 올라가면 칠산재를 숲속에서 만나게 된다. 칠산재를 오르는 좁다란 산길 좌우에는 분성배씨들의 묘가 곳곳에 있다.


 




<칠산재 대청마루 위에 붙어 있는 각종 현판>


 

칠산재 입구에 도착하면 오래된 팽나무 2그루와 칠산재 외삼문인 光正門(광정문) 앞에 은행나무 2그루가 우뚝 서있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 보인다. 마을과 뚝 떨어진 산속에 위치한 칠산재에는 노인 한 분이 칠산재를 관리하고 있었지만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아 집 구경만 하고 나왔다.


 




<내삼문 추원문>


 

외삼문인 광정문을 지나면 꽤 너른 마당이 나오고 마당에는 칠산재에 공이 많은 분들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현성금을 낸 분들의 이름을 새긴 비도 있다. 마당 정면에는 칠산재가 위치하고, 뒤쪽에는 계단 위에 내삼문인 追遠門(추원문)이 자리하고 있다. 추원문을 지나면 분성배씨의 시조와 중시조, 수관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 永慕祠(영모사)가 있다.

칠산재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좌측에는 칠산재를 관리하는 고직사가 있고 그 옆에는 광(곳간)이 있으며, 뒤쪽에는 화장실을 지어 두었다.


 



<사당 영모재>


 

중심 건물인 칠산재는 정면 4, 측면 1칸 반의 익공계 5량 집으로 전·후의 기둥과 도리를 다르게 하였는데 전명 원주의 굴도리에는 장식요소가 많은 반면 후면의 방주와 납도리는 간소하게 처리하여 근대적 특성을 보인다. 대청마루 상부 부재의 결합방식은 구조적이면서도 장식효과를 겸하고 있다.




<담장 밖에서 본 칠산재>



<칠산재 뒤편에 있는 배원룡공의 묘>



<숲으로 쌓여 있는 칠산재 입구 모습>



<칠산재 앞에서 본 김해평야>


칠산이 높지는 않지만 칠산재에서 바라보는 김해의 들판은 평야임을 실감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