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진전면 봉곡리 이동신 처 최씨 포열각

천부인권 2016. 10. 24. 06:00



<2016.10.17. 이동신 처 삭녕 최씨 구 포열각 자리>

 

임곡삼거리 회전교차로를 지나 옛 국도 2호 도로를 가다보면 진전면 봉곡리 417-1번지의 산기슭 도로변에 구 최씨 褒熱閣(포열각) 자리가 나온다. 이곳은 지금 포열각 옛터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星州李東新妻朔寧崔氏旌閭舊址(성주이동신처삭녕최씨정려구지)”라 새겼다. 이 포열각 구지를 뒤로 하고 봉곡리로 약 450m를 가다보면 도로변에 집이 나온다. 집 우측으로 들어가면 뒤편에 포열각과 우측에 비가 보이는데 이 비는 烈婦李相允妻咸安李氏事行碑(열부이상윤처함안이씨사행비)”라는 글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성주이씨 집안의 또 다른 열부비인 것 같다. 이곳 주소는 창원시 진전면 봉곡리 337이다.

 




<2016.10.17 성주이동신처삭녕최씨정려구지 전경>



<성주이동신처삭녕최씨정려구지 비>



<최씨 포열각과 함안 이씨 사실비 전경>



李東新(이동신)의 처 최씨의 열행을 기리는 정려인 포열각은 정·측면 각각 1칸인 맞배지붕이다. 포열각 입구에는 철창으로 만든 문을 달았고, 좌우 뒤쪽은 붉은 벽돌로 담장을 하였다. 려각의 정면에 褒熱閣(포열각)이라는 편액을 달았고, 내부에는 學生李東新之妻烈女朔寧崔氏閭(학생이동신지처열녀삭녕최씨려)’를 표한 정려문과 朔寧崔氏旌閭四修記(삭녕최씨정려사수기)’ 烈女崔氏旌閭實記(열녀최씨정려실기)’가 있다.





烈女崔氏旌閭實記(열녀최씨정려실기)’의 내용을 보면 처사 이동신은 성산 부원군 문열공 이조년의 13세손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을 지낸 이일장의 증손자이다. 1654년에 이동신이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게 되자 그 처 최씨가 밤낮으로 천지에 빌고 빌어 대신하기를 청하니 마침내 차도가 있어 8개월을 더 연명하였다고 한다. 병이 다시 재발하자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나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신을 거두어 염습하고 장례를 치름에 조금도 예에 어긋남이 없었고, 최씨는 6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돌아갔으니, 1719년 나라에서 이 일을 알고 정려를 내려 삼강록에 실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창원현의 서쪽 10리 곡안 봉대 우측 산기슭에 있었다고 하나 몇 번의 전란과 난리를 겪는 동안 정려는 다 타버렸고 문헌도 모두 사라졌다. 이후 두어 번의 보수가 있었으나 완전하지 않았고, 방손인 이필화가 마을 앞으로 옮겨 다시 지었다. 이후 이필화의 재종숙인 이형렬이 대암 아래의 길지를 잡아 세 번째로 자리를 옮겼다.

 



<烈婦李相允妻咸安李氏事行碑(열부이상윤처함안이씨사행비)>



출처 및 참고

디지털창원문화대전

열녀최씨정려실기

삭녕최씨정려사수기

창원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