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진해구 남문동 개고개 입구 쌍효각 雙孝閣

천부인권 2016. 11. 28. 19:51

 

2016.11.08. 남문동 웅신 고개 입구에 세운 쌍효각

창원시 남문동 산 1063-3번지에는 진해 남문동에서 웅신 고개[개고개]로 올라가는 길 왼편에 虎患(호환)을 당하여 생명이 위독하게 된 부친을 구한 아들 徐志淳(서지순 1734~1801), 며느리 경주 이씨의 효성을 기리는 정려가 있다. 이 정려에는 李載現(이재현)이 쓴 雙孝閣(쌍효각)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고 내부에는 孝子戶曹參判徐志淳之閭(효자호조참판서지순지려), 孝婦貞夫人慶州李氏之閭(효부정부인경주이씨지려)”라 적은 편액이 정면에 나란히 걸려있다. 또한 벽 좌우에는 雙孝傳(쌍효전)三綱錄(삼강록)이 붙어 있다. 그리고 雙孝閣(쌍효각) 좌측에는 효자달성서공지비 및 효부정부인경주이씨지비라 새긴 碑座圓首(비좌원수) 형의 비석도 세워져 있다. 雙孝閣(쌍효각)에 얽힌 이야기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2016.11.08. 남문동 웅신 고개 입구의 쌍효각

곰메에 살던 범 한 마리가 굶주렸는지 어느 날 서중 마을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았다. “저 범 잡아라!” 들에서 일을 하다가 그 범을 본 장정들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 나섰다. 장정들이 저마다 흉기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범을 쫓으니 범은 당황하여 달아날 방향을 산으로 잡지 못하고 제포 쪽으로 달렸다.

내닫던 범은 망덕 마을 근처 논에서 무심히 일을 하고 있던 서지순의 부친을 물고 쫓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사람 살려라.” 다른 논에서 일을 하고 있던 서지순이 비명을 듣고 쳐다보니 범이 부친에게 덤비고 있었다. 당시 23세였던 서지순은 낫을 들고 범에게로 다가갔다. 범을 쫓아온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였고, 그는 낫을 범에게 겨누고 내리치려 했다. 낫을 든 지순을 본 범은 부친을 놓고 이번에는 지순에게로 덤볐다. 지순과 범의 격투가 벌어졌다. 용맹한 지순은 끈질긴 격투 끝에 마침내 범을 죽이고 말았다.

지순의 용감한 격투로 범을 죽여 마을 사람들은 호환을 면하였으나 망덕 마을과 지순의 집안에는 불안한 일이 생겼다. 부친의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고, 밤이면 암범 한 마리가 망덕리 뒷 독메에 내려와서 으르렁거리며 위협을 하는 것이었다.

밤마다 들리는 암범의 포효로 온 마을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지순의 집에서는 나날이 더해가는 부친의 병세에 안절부절 못하였다. “보이소! 무슨 좋은 수가 없는 기요?” 지순의 아내는 잠자리에 들면서 근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뾰족한 꾀도 안 나고 그렇다고 점쟁이를 찾아 갈 수도 없고...” 지순은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아내는 보이소! 독메에 호단을 지어 치성을 드리고 아버님 상처의 고름을 빨아내고 해 볼끼예.” 아내의 말에 지순이 벌떡 일어나며 보소, 호단을 짓는 기이사 어렵지 않겠소만 고름을 우째 입으로 빨아낸단 말이요.” 날이 새자 지순은 호단을 지었고, 아내는 치성을 드렸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상처에서 약을 떼어내고 깨끗이 닦은 뒤에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다시 약을 발랐다. 그런 며느리의 정성스러운 치성과 간병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계속 되었다. 하루가 가고, 열흘이 가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삼년이 지나자 상처는 아물고 더 이상 범도 나타나지 않았다.

 

 

쌍효각雙孝閣 편액

 

[前判書非聾李載現書(전판서비농이재현서)-雙孝閣(쌍효각)]

 

 

효자호조참판서지순지려( 孝子戶曹參判徐志淳之閭 ) 편액

 

 

효부정부인경주이씨지려(孝婦貞夫人慶州李氏之閭) 편액

 

 

2020.02.08 쌍효전 편액

 

쌍효각 내부에 있는 雙孝傳(쌍효전) 편액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雙孝傳
昔我 莊獻大王丙寅 嶠南熊川縣 有一孝子 幷孝婦出 孝子姓徐氏名志淳 達城君穎之后 昌溪公應時九世孫 大根子孝婦 卽志淳之妻 慶州后成均進士李德瑞之女也 孝子生而天姿溫恭濟 以剛果自少業儒 以文學名而 爲儕流之所敬重焉 當時邑有虎患 官軍驅遂 一日其父遇虎危急 孝子以鎌赴 而斫殺之救 其父濱死之命 直與魯之楊香事相類 而父受傷之餘 累月辛苦 孝子與其妻李氏日夜憂焦 至誠侍湯優身之物 適口之未 左右而就之設 壇於後園 而中夜齊沐稽顙 北痕獲神感而復 其常一鄕之驚歎 雙孝之幷出 而稟聞于官 官題曰 天性之孝人所難 卽當報營褒揚 而因厚賞之儒林闡文 又相繼而發 此可見秉彛之本同 而公議之攸在也 孝子之孫相淑 以其祖考家狀方欲籍重於君子之立 言以顯其祖妣而敢爲之請 一言余曰 有是哉孝乎 夫虎之爲物長百獸 而能食人者也 其視耽耽 其欲遂遂 嘯而脾睨威風凜烈 怒而哮高岳震動 苟非馮婦之勇卞 莊子之智 無或攖之者 而若徐孝子 者徒知父命之生 而不顧其命之死 惟恐父身之傷 而不念其身之危 致令其父免禍 而竟斃其猛獸 噫若人性孝之出天也 以一書生 而敢爲人所不敢 爲必是孝感所 致乃得天神之助也 況配以孝婦之內相乎 如使李益齊先生 復作於世 則當與楊香 事列書于 孝行錄中倍光於 綽楔之日矣 此不侫所 以爲雙孝立傳 以勵頹俗云爾
歲在丁丑 流火節 上澣 豐山 柳道昇撰

 

쌍효전(雙孝傳)

옛 날 장헌대왕 병인년 교남지역 웅천현에서 유일한 효자와 효부가 났으니 효자의 성은 서씨이고 이름은 지순이니 달성군 영의 후손으로 창계공 응시의 구세손인 대근의 아들이며, 효부 즉 지순의 처는 경주 이씨의 후손 성규관 진사 덕서의 따님이다.

효자는 태어난 후 자질이 온순하고 공손하였으며 소년시절부터 학업에 열중하여 유학에 업을 두어 명성이 同學(동학)의 무리에서 敬重(경중)되었다. 당시 웅천 읍내에서는 호환이 있어서 관군이 이를 쫓아 내고는 하였는데 하루는 지순의 부친이 호환을 당하여 위급하게 되었으나 효자가 낫을 들고 달려가 호랑이를 찍어 죽이고 부친을 죽음에서 구했으니 이는 곧 노나라 양향(楊香)의 효행과 같은 것이다. 아버지가 호환으로 상해를 입어 여러 달 신고(辛苦)를 겪자 효자는 그의 내자 이씨와 밤낮으로 염려하여 지성으로 약을 다려 올리고 몸에 이로운 것은 주위에서 구해다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집 뒤 뜰에 ()을 마련하여 한 밤중에 함께 목욕제계하고 상처가 낮기를 기도하니 신도 감명하여 그 부친의 병이 쾌유하였다.

그 뒤로 늘 부부가 지성으로 아비를 봉양하니 마을 사람들이 경탄하며 쌍효가 함께 나가게 된 것을 관에 품문(稟聞)하였다. 관제에 이르기를 천성의 효자는 어려움을 당하여도 마땅히 보응이 있으려니 ()에서 褒揚(포양)하고 이에 두터이 상을 내리도록 유림이 闡文(천문)하며 연이어 올리니 秉彝(병이)의 근본으로 볼 수 있는 公議(공의)攸在(유재)이다.

효자의 손자 相淑(상숙)은 그 할아버지의 가장을 전적에 올릴 양으로 거듭 군자의 입언을 구하였으며 그 할머니의 행적도 같이 올리려고 내게 청하며 말하기를 호랑이란 놈은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능히 사람도 먹을 수 있는데 그 시선이 그윽하고 바람이 독실하여 울부짖거나 노려보는 위풍이 늠름하여 위엄이 있고 성내어 울부짖으면 높은 산이 진동할 지경이다.

구차스럽게 그 부인의 용대를 빌리지 않더라도 장자의 지혜로서 서 효자와 같은 인물은 부친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도 돌보지 않고 오직 부친의 몸에 상처라도 날까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위험은 생각하지 않고 그 부친이 화를 면할 수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사나운 맹수도 쓰러뜨리고 마니 아! 이와 같은 사람이야 말로 출천지효(出天之孝)가 아닌가.

이처럼 일개서생이 이러한 일을 능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필시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 천지신명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내자도 효부이니 지어미의 내조가 있었기에 이와 같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李益齊先生(이익제 선생)께서 다시금 세간에 내어 놓으신 효행록 중에 楊香(양향)의 일과 함께 列書(열서)된 경우에 해당되니 綽楔(작설)을 받은 날에 영광이 배가 되었다. 이는 아첨하는 일이 아니라 쌍효전을 세워 쇠퇴해 가는 풍속을 바로잡도록 권장할 일이다.

정축년(1877, 고종 14) 칠월 상순 풍산 유도승 찬

 

 

三綱銘
徐志涥斫(虎) 昌原郡熊川望德
志涥達城人 工參大根子 昌溪公應時后 自幼知愛 親志色備養 其後親爲虎咬 以短鎌斫虎頭殺之 救親命 以咬每累月委席 藥石之治 祈禱之誠 始終靡懈 其妻李氏亦如之 及丁憂三年 哀毁如禮 一鄕稱夫妻雙孝 詩 孩提時亦愛親 知人道黃香復見之 虎咬親前 身不顧短鎌揮 處血淋漓 閨有賢妻 夫志推持 誠恒似入廚 時四隣咸服 稱雙孝 長使行人聽口碑
高宗光武後 孝子公璇源錄
縣監公諱濟 派系
先考通政大夫工曹參議諱大根
先妣淑夫人參奉東萊鄭漢相之女
也生子三男 長子諱志涥孫
               長子婦慶州李氏

 

삼강명(三綱銘)
서지순(徐志涥) 호랑이를 찌르다. 창원군(昌原郡) 웅천(熊川) 망덕(望德)
지순(志涥)은 달성인(達城人)이다. 공조참의 대근(大根)의 아들이며 창계공(昌溪公) 응시(應時)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사랑하는 법을 알아 부모의 뜻과 얼굴빛을 알아보고 잘 봉양하였다. 그 후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렸을 때 짧은 낫을 들고 달려가 호랑이의 머리를 찔러 죽이고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였다. 호랑이에게 물려 여러 달 병석에 누웠을 때 약을 다려 병을 조섭하고 하늘에 지극 정성으로 빌며 시종일관 게을리 않았는데 그 처 이씨 역시 그러하였다. 초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슬퍼하며 몸을 상하기를 예에 맞게 하니 온 고을이 부부의 쌍효(雙孝)를 칭찬하였다. 어릴 때 부모를 사랑하여 후한 때 황향(黃香)이 덥고 시원함에 맞추어 부모를 봉양하는 행실을 그대로 행하였고 눈앞에서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리자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짧은 낫을 휘두르니 호랑이의 피가 흥건하였다. 집안에는 어진 처가 있으니 지아비의 뜻을 받들어 부모를 모시고 항상 정성을 다하여 부엌으로 들어가니 사방의 이웃들이 감동하여 쌍효(雙孝)라고 칭찬고 장려하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효자비의 이야기를 길이 전하게 하였다.
고종(高宗) 광무(光武) 후(後) 효자공선원록(孝子公璇源錄)
현감공(縣監公) 휘(諱) 제(濟) 파계(派系)
선고(先考)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 휘(諱) 대근(大根)
선비(先妣) 숙부인(淑夫人) 참봉(參奉) 동래(東萊) 정한상(鄭漢相)의 딸
3남을 낳음 장자(長子) 휘(諱) 지순(志涥)
                    부인 경주이씨(慶州李氏)

 

 

출처 및 참고

디지털창원문화대전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2000)-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

진해의 비문(1996)-진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