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5. 육지로 변한 연도에 있는 강유출 송덕비>
‘경상도 속찬 지리지’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椽島(연도)는 괴정마을에서 동남쪽 4km에 떨어진 섬이었으나 지금은 뱃길이 사라지고 마을버스가 운행하는 육지로 변한 섬마을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굿당산(107.3m)으로 봉우리의 동쪽 아래에 ‘사당’이 있다.
진해구 연도동 70번지 웅천초등학교연도분교 담장 입구에는 姜裕出頌德碑(강유출 송덕비)가 서있다. 姜裕出(강유출 : 1902년 11월 11일~1967년 1월 12일)은 웅천만의 조그만 椽島(연도)라는 섬에 살면서 평생토록 섬 주민들에게 仁德(인덕)으로 대하니 사람들이 감화하였고 그의 사후 10년이나 지난 1977년에 공덕을 잊지 못한 연도 사람들이 강유출의 송덕비를 세웠다.
<2016.12.5. 육지로 변한 연도에 있는 강유출 송덕비 좌측면>
<2016.12.5. 육지로 변한 연도에 있는 강유출 송덕비 우측면>
강유출 송덕비는 비신의 머리 부분 양쪽을 약간의 각을 이루도록 깎은 碑座直首(비좌직수)형이며, 비신의 높이는 101cm, 폭 49cm, 두께 17cm,이고, 비좌의 높이는 15cm, 폭 78cm, 두께 47.5cm이다.
비의 전면에는 “碩士晉陽姜公裕出頌德碑(석사진양강공유출송덕비)”라 세로로 음각하였고, 우측에는 아래처럼 새겼다.
處世由來德遇隣(처세유래덕우린) 공의 처세는 이웃에 덕을 베푸는 데서 비롯하였으니
今爲碩士昇天客(금위석사승천객) 지금은 비록 석사 강공께서 불귀의 객이 되셨지만
島中士女頌公仁(도중사녀송공인) 섬 마을의 모든 이들이 공의 어지신 덕을 칭송하니
庶幾聲名不朽人(서기성명불후인) 어찌 떨치신 이름 후세 사람들에게 영원히 전하지 않으리오
<2016.12.5. 육지로 변한 연도에 있는 강유출 송덕비 뒤면>
비의 뒷면에는 한글로 비문을 적었는데 『온후와 인자로 후진을 교화하였고, 고장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 한 바 크셨다. 공의 유덕을 길이 전하고 거울 삼고져, 이 비를 세우다.』고 기록했다.
비의 좌측에는 『단기 4310년 5월 일, 서기 1977년 5월 일, 椽島洞民竪(연도동민수)』이라 새겨 비를 세운 날짜를 기록하고 연도동민이 세웠음을 밝혔다.
이 강유출 송덕비는 연도라는 마을 자체가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다보니 앞으로 어떻게 보존이 될지 모르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창원시가 비지정문화재이지만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는다면 이 비를 이건할 것이고 아니면 땅에 묻힐 것이다.
<2016.12.5. 육지로 변한 연도에 있는 전화사업 준공비>
<2016.12.5. 육지로 변한 연도에 있는 김연태 기념표식>
출처 및 참조
진해의 비문(1996년)
진해의 땅 이름 이야기
디지털창원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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