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진전면 고사리 고인돌과 조창제 송덕비와 서어나무 노거수

천부인권 2017. 1. 19. 15:13



<2014.11.30. 고사리 고인돌과 서어나무와 조창제씨 송덕비가 있는 풍경>

 

진전면 고사리 의산보건진료소 30m앞 들판의 돌출된 돌무지 위에는 서어나무 노거수 한그루가 서있고 아래에 조창제씨 송덕비가 있다. 돌출된 돌무지에서 고사리 방향의 논 아래를 보면 고인돌이 있다. 이곳의 주소는 진전면 고사리 751-3번지이다.





이곳 고사리 고인돌에서는 석기들이 제법 출토되었다고 하며 고인돌의 상석은 편평한 방형으로 반듯하게 놓였으며, 지석과 성혈은 확인되지 않았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250, 170, 두께 82이다.




<2015.9.10. 고사리 평암마을 입구 서어나무>

 

이곳 지형이 돌출된 것은 사람들이 논을 일구면서 쓸모가 없게 된 돌들을 한곳으로 모으다 보니 돌출된 형태의 봉우리가 생기게 되었고 그곳에 나무를 심어 고된 농사일에서 오는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이 평지돌출 형의 돌무지 위에는 10년 전에만 해도 서어나무 두 그루가 있었지만 한그루는 수명을 다하고 그곳에 쓰러져 있다. ‘진전면 고사리 서어나무 노거수는 가슴높이 둘레 255cm이고, 높이 18m이며, 나이는 200년이다.




<2016.10.17. 평지돌출형의 서어나무와 고인돌 및 조창제씨 비>

 

서어나무 노거수 아래에는 전면에 趙昌濟氏頌德碑(조창제씨송덕비)라 음각 했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내용을 적었다. 그 내용은 상평출신인 조창제씨가 일본으로 건너가 갖은 고생 끝에 재산을 모아 이곳 고향으로 돌아 왔다. 고향의 친지들은 아직도 백자등불을 켜며 문명의 혜택을 모르며 살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에 거금을 쾌척하여 전기를 가설해 준 것에 동네 사람이 합심하여 조창제씨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19745월 홍한순씨가 글을 짓고, 변지섭씨가 썼다. 독립운동가 변상태 선생의 아들인 변지섭씨는 일암리 사람으로 <경남독립운동사>를 저술한바 있다.




<비의 뒷면>


 

<비 전면>


조창제씨송덕비(趙昌濟氏頌德碑)

조창제씨는 여항면 상평에 사셨던 분인데 일찍이 마음을 크게 먹은 바 있어 조국을 떠나 일본 낮선 땅에서 손발이 닳도록 일한 그 보람을 입어 생활의 여유를 보았는지라. 40여년 만에 고국 옛 산천에 돌아오니 고향의 친지들이 아직도 백자등 어둠의 세계에서 문명의 혜택을 외면하고 있는지라. 이에 이를 크게 딱하게 여겨 신고의 보람으로 얻은 결과인 거금을 쾌히 던져 여기 이 지방에 광명의 불을 켜게 하니 거룩할진저. 그 뜻이어 어느 뉘 제의 재물이 뼈아프지 않으리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깎아온 뼈를 고향에 바쳐 친지들의 살이 되게 하였고 눈이 되게 하였도다. 옛 성현이 이르기를 스스로의 몸을 죽여 어짐을 이룬다하였는지라 누보라 휘몰아치는 겨울마냥 각박한 이 사회에 남을 위하여 일함의 어려움을 우리 스스로 깨닫는 도다. 겨울이 이에 물러나고 봄 날씨 이에서 훈훈하리로다. 이로써 인심은 혜풍화창하고 사회는 명랑할지니 이는 오로지 이 사회를 외면아니한 그의 뜻을 본 받으므로써 이루어지리로다.
서기 1974년 3월 8일 지방주민 일동
홍한순 짓고, 변지섭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