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울진 망양정에 올라

천부인권 2017. 6. 18. 06:05



2017.5.31 울진 망양정


지난 5월 31일 울진향교 봉심고유를 갔다 오면서 일행들은 관동팔경의 한곳인 망양정(望洋亭)을 둘러봤다. 옛 망양정 터는 가보지 못했지만 지금의 망양정도 왕피천과 망양해수욕장을 굽어 볼 수 있는 멋진 위치에 자리했다. 이곳 망양정 앞에 세운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었다.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2
이 정자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넓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산 정상에 날을듯 앉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원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그 후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85년에 중건하였으나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에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특히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 하여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란 현판을 하사 하였으며, 망양정의 절경을 읊은 유명한 시와 글로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정철의 관동별곡 등이 전해오며, 그림으로는 정선의 벽납병(百納屛) 관동명승첩에 있는 망양정도가 유명하다.




2017.5.31 울진 망양정


망양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와가로 다포계 양식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닥의 기초에서 약 1.2m높이로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마루형식의 공간을 마련한 누(樓)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방에 돌계단을 놓아 접근성을 높여 호젓한 곳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모습이다.




망양정 누각에서 북쪽 방향을 보면 왕피천이 동해로 흘러들고 북쪽으로 망양해수욕장이 펼쳐 진다. 사진에서 망양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산자락의 끝이 처음 망양정을 지었던 곳이라 한다.

왕피천이라는 이름은 실직국(悉直國:삼국 시대 이전에 강원도 삼척군 지역에 있었던 부족 국가)의 왕이 이곳으로 피난해 숨어 살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은 왕피리,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은 왕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망양정 내부에 걸려 있는 편액 중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시판은 김시습의 7언율시를 단산 김재일이란 분이 쓴 것으로 시판에는 세로로 4자가 쓰여 있지만 7언율시로 읽어 본다.

十里沙平望大洋(십리사평망대양)  십리 평평한 모래에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니
海天療闊月蒼蒼(해천요활월창창)  바다와 하늘은 넓고 멀지만 달빛은 창창하네
蓬山正與塵寰隔(봉산정여진환격)  봉래산이 그야말로 속세와 떨어졌으니
人在浮一葉傍(인재부여일엽방)  사람은 물 위에 뜬 마름 한 잎에 사는게지




이산해(李山海)의 시
枕海危亭望眼通 (침해위정망안통)  바다를 낀 높은 정자는 눈앞이 탁 티여
登臨猶足盪心胸 (등임유족탕심흉)  올라보면 가슴 속이 씻기네
長風吹上黃昏月 (장풍취상황혼월)  긴 바람이 황혼 달을 불어 올리면
金闕瑛瓏玉鏡中 (금궐영롱옥경중)  황금 궁궐이 옥거울 속에 영롱하다





望洋亭 (正祖 詩)
元氣濸茫放海溟(원기창망방해명) 일기가 창망할 때 바닷가로 나오니
誰人辨此望洋亭(수인변차망양정) 뉘라서 이곳에 망양정을 알 수 있으리오 
恰如縱目宣尼宅(흡여종목선니댁) 흡사 공부자의 집 구경하듯이
宗廟官墻歷歷經(종묘관장역역경) 종묘며 관청 담장 뚜렷이 구분되어있구나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
<天根(텬근)을 못내보와 望洋亭(망양뎡)의 올은 말이 바다밧근 하날이니 하날밧근 므서신고 갓득 노한 고래
뉘라서 놀내관대 불거니 뿜거니 어즈러이 구난디고 銀山(은산)을 것거내여 六合(뉵합)의 나리난닷 五月長天(오월댱텬)의 白雪(백셜)은 므사일고<중략>






望洋亭 (肅宗 詩)
列壑重重逶迤開(열학중중위이개) 여러 골짜기 구불구불 겹겹이 열리고
驚濤巨浪接天來(경도거랑접천래) 놀란 파도 큰 물결 하늘에 닿아있네
如將此海變成酒(여장차해변성주) 지금 이 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
奚但只傾三百盃(해단지경삼백) 어찌 한갓 삼백잔만 마실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