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진전면 양촌리 변씨 삼강려

천부인권 2017. 6. 19. 07:45

 

2015.3.12. 양촌리 변씨 삼강려 성역지

 

 

옛 국도2호를 따라 진주로 향하다보면 ‘양촌온천’이라 말하는 동산리가 나온다. 진전면 동산리에서 양촌마을로 곧장 가면 도로 옆에 잘 정돈된 ‘양촌리 변씨 삼강려(良村里 卞氏 三綱閭)’가 보인다. 이곳의 지번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235-1이다.

 

 

 

 


계단을 올라 삼강려각이 있는 곳으로 가다보면 삼강려에 대한 안내문이 금석문에 새겼다. 그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원(吾元) 변연수(卞延壽 1538~1592)장군은 조선 중종33년(1538년)에 이곳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주부의 벼슬에 올랐으나 휴관으로 향리에서 쉬고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이하게 되자 아들 변립(卞岦)과 함께 “신하된 자 몸을 던질 때로다.” 이르고 즉각 격문을 내어 원근에서 의병을 모아 연해의 출몰 왜적을 격퇴하고 이순신 장군 휘하에 합류하여 옥포와 당포해전에서 적선을 크게 무찔러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1597년) 때 당포해전에서 아들 변립과 같이 사력을 다해 적과 싸우며 용전하다 전사하니 나라 위해 충으로 죽었다. 아들 변립은 전사한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며 마지막까지 분전하다 그 또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효로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이 소식을 접한 변립의 부인 안동김씨는 식음을 끊은지 8일 만에 자절함으로써 남편 뒤를 따라 열로서 죽게 되니 나라에서는 변연수 장군에게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아들 변립에게는 증좌승지(贈左承旨), 부인 안동김씨에게는 증숙부인(贈淑夫人)의 첩지를 내리고 忠孝烈의 일가삼강(一家三綱)을 기리는 정려를 내려 후세 귀감으로 삼게 하였다.』 한메 조현판 쓰다.

 

 

 

 


삼강려 앞에는 근래에 세운 증병조판서 변공신도비명(贈兵曹判書 卞公神道碑銘)이라 적은 비석이 있다. 변연수 장군의 활약상은 신도비에 기록되어 있듯이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휘하에서 활동 했으며 옥포해전에서는 30여척의 왜선을 격파하고 해전마다 전공을 세웠다. 그의 위패는 적석산 아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 820-1의 성구사(誠久祠)에 모시고 향사를 하고 있다.

 

 

 

 

2011.8.27 제일여고에 있는

증병조판서 변공신도비(贈兵曹判書 卞公神道碑)


알 수는 없지만 문충공 연제 송병선(文忠公 淵齋 宋秉璿)이 찬(撰)한 옛 비석은 제일여고 정문 우측 생활관 입구에 있다.

 

 

 

 


삼강려각은 잘 다듬은 돌로 만든 담장 안에 있으며 입구의 좁은 협문을 지나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전통기와 집이다. 려각의 내부에는 정려 편액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