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진전면 여양리 밀양손씨 열부 여표비

천부인권 2017. 2. 5. 09:54



<2016.10.17. 진전면 여양리 들판의 밀양손씨 열부비>

 

옥방마을 입구 산기슭에 위치한 진전면 여양리 옥방마을 효열각에서 들담마을 방향으로 약 360m 떨어진 진전면 여양리 936번지 들판에는 비각은 사라지고 비만 홀로 서있는 진전면 여양리 밀양손씨 여표비가 있다. 이 비는 예전에 비각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비각을 보호하던 담장도 사라졌고 비각도 없다 다만 주춧돌 네 개가 비각이 있었음을 증거 할 뿐이다. 이 비가 밀성 박씨(密城朴氏) 노령공(魯令公)의 처 밀양 손씨(密陽孫氏)의 열녀여표비(烈女閭表碑)이다.




 

열부밀양손씨여표비에는 다음과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유인(孺人)의 성은 손씨니 밀양으로서 사인 규모의 딸이며 밀양 박씨인 노령의 아내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극한 정성이 있어 부모의 마음에 들었다. 시집을 와서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공경하니 이웃에서까지 그의 부덕을 높이 칭송하였다.

1924년 갑자년 봄에 남편이 병에 걸려 거의 1년 동안 위태롭게 되었다. 이에 부인이 병을 낫게 하려고 안 해 본 일이 없었으며, 북두칠성에 기도하여 자신이 남편의 병을 대신하겠다고 빌었더니 그제야 소생하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혀를 차면서 말하기를 지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다.”고 하였다.

그 뒤 남편의 병이 재발하여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결국 죽자 부인은 엎드려 곡하는 것과 초상을 치루는 것이 예절에 의거하여 빠짐이 없었다. 음식을 삶아 시부모에게 진상함에 조금도 얼굴에 안 좋은 기미의 빛을 나타내지 않다가 장례를 마치자마자 부인은 결국 남편 잃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결하고 말았다. 부인의 코와 입에서는 침이 흘러나왔고 곁에는 마시다가 남은 소금물 그릇이 있었으니 남편을 따라 죽을 결심을 처음부터 하였지만 참고서 잠시 동안을 보살핀 것은 시부모의 마음을 위로하고 남편의 장례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출처 및 참조

창원디지털문화대전

2005년 마산시 문화유적분포지도-경남대학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