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지리산 둘레길 송문교~용유담을 걷다.

천부인권 2017. 11. 8. 06:30

 

2017.11.05 송문교에서 본 와룡대

 

이번 11월 5일에 중학교 동창들과 지리산 둘레길 중 제4코스를 걸었다. 걷기를 좋아하는 A팀은 원기마을에서 용유담까지를 걸었고 몸이 불편한 두 친구는 송문교에서 용유담까지 약 4km를 걸었다. 문정교를 지나면서 처음 본 것은 엄천 안쪽에 위치한 와룡대(臥龍臺)라는 큰 바위이다. 와룡대로 출입하는 다리가 있었으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송문교를 지나 맞은편에서 보니 비석이 있어 찾아가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았다.

 

 

2017.11.05. 와룡대

 

2017.11.05.와룡대 안내판
2017.11.05.용유담을 향해

 

엄천강을 따라가는 이 둘레길은 아스팔트도로와 가끔 엄천강에 근접하여 가는 길들로 만들어 졌으나 길을 몰라 계속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걷기만 했다. 다행히 차량의 왕래가 많지 않아 둘이서 오순도순 걸을 수 있었다.

 

 

길을 걷다보니 이 길이 용유담과 마적도사라는 사람의 전설이 남은 ‘전설탐방로’라는 표지판을 만났다. 이 전설의 내용을 보면 아끼는 나귀의 애닮은 죽음과 용유담에 살고 있던 용들을 쫓아버려 이후 용들이 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이처럼 전설은 비극으로 결말이 난다.

 

 

용유담이 3.4km 남았다는 이정표와 엄천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길을 재촉했다.

 

 

송전가든을 지나면서 걸어 온 길을 사진에 남겼다. 아마도 이곳에 있는 다리가 통천교(通川橋)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다랑이 논의 가을걷이는 이미 끝났고 계곡의 나무들도 얼룩얼룩 단풍이 들기 시작했으며 산 위쪽은 단풍이 짙게 물들었다.

 

2017.11.05.마애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233-2번지에 이르러 마적도사의 전설탐방로를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 걷는데 도로변의 큰 바위에 두 개의 마애비가 새겨져 있다.
郡守李鳳和愛民御灾碑(군수이봉화애민어재비)-군수 이봉화가 백성을 사랑하고 재앙을 막은 공로의 비.
警察署長 道警部 上木屋喜 左衡門 恤灾碑(경찰서장 도경부 상목옥희 좌형문 휼재비)-함양경찰서장 상목옥희가 재앙을 막은 비.
面長 許南 布德捄灾碑(면장 허남 포덕구재비)-휴천면장 허남이 덕을 베풀고 재앙에서 구한 비.
議官 姜渭秀 施惠賑灾碑(의관 강위수 시혜진재비)-의관 강위수가 은혜를 베풀고 재앙에서 구한 비.
大正 拾五年 咸陽郡 休川面 細洞 監役 申鶴均(대정 십오년 함양군 휴천면 세동 감역 신학균)-1925년 휴천면 세동에서 신학균이 새김.

 

2017.11.05.통천교시성通川橋始成

 

그 옆의 다른 바위에는 “통천교시성(通川橋始成) 유경환(劉景煥) 갑인칠월일(甲寅七月日)”이라 새긴 글이 있는데 처음 통천교를 만든 이가 유경환으로 그를 기리기 위해 갑인년 칠월(1914년)에 마애비를 새긴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마애비가 있는 풍경

 

 

마애비를 뒤로 하고 세동마을 입구에 다다르니 정려각과 근래에 세운 비석이 보인다. 정려각 안에는 편액에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평산신영언지려(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平山申永彦之閭)라 적고 그 내용을 기록했다.

 

孝子 贈朝奉大夫童蒙敎官 平山 申永彦之閭
孟子曰 古之人修其天爵 而人爵從之 天爵也者 仁德是已 而仁之實 德之本 乃孝也 夫孝始於養送之盡禮 終於立揚之顯節 是固植天綱 立人紀之大關棙也 一有篤乎此 而實踐卓異者則 自 朝家必褒旌之 是 昭代樹風之典禮 孝之道 顧不大歟 走常庸是自勖 而亦厚冀於人者推矣 故咸陽申公卽其人也 公諱永彦 鼻先 壯節公 而襲忠貞之餘緖 自髫齔 性姿不侔 事兩親 至孝闔境贊之 以出天 至若奉甘旨 祈代命 夢魚 泣血之誠 自有口碑及實狀之播傳者 則不待贅枚 而孝之事 具乎其中矣 惜乎 其壽不永 竟未及褒旌而卒 爲其子孫者 常齎恨 而士友聞知者 亦爲之慨歎 然一脉遺芬不朽於冥冥之中 今幸値 聖睿 孝理之晟際 其賢允抱 相翊 賢抱正均成均甫 克紹先孝齎狀叫閽 特蒙華誥綽楔之典 遂使榮被枯骨 聞望益彰其於 奉誥 苾芬之日 靈若不昧則庶洋洋而格感矣 抑古之修天爵人爵從者 其不在玆乎 噫 孝之始終 公能盡之 而士君子之能事畢矣 走乃目其狀 耳其名尙友 而賢之 將壽于傳 苟能世趾其美 觀感而興孝 則庶無爽乎 仁明之實 云爾
崇禎五辛卯仲秋下休 通政大夫 禮曹參議 善山后人 惺臺 尹始榮 敬敍

 

[해석-김정현]

효자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 평산 신영언의 정려

맹자가 말씀하길 “옛 사람은 천작(天爵)을 닦으면 인작(人爵 公卿大夫)이 따라 온다.”라고 했으니, 천작이란 인덕(仁德)으로서 인(仁)의 실체이면서 덕(德)의 근본이 되는 것이 곧 효이다. 대저 효는 살아서 봉양과 죽어서 상장(喪葬) 제사에 예를 다하는데서 시작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으로 마침을 삼는 것이니 이것이 드러난 절목이다. 이것이 진실로 하늘의 기강을 세우고 사람의 기강을 세우는 큰 관건(關鍵)이다. 한 사람이라도 이에 돈독하여 실천을 탁이하게 하는 자가 있다면 곧 국가로부터 반드시 포상하고 정려한다. 이것이 태평성대에서 교화를 세우는 전례(典例)이니, 효의 도리에 돌아본다면 크지 아니한가! 나는 항상 이로서 힘쓰고 또한 남에게 두텁게 기대하면서 추구했는데 옛 함양의 신공(申公)이 바로 그 사람이다. 공의 휘(諱)는 영언(永彦)이고 시조는 장절공(壯節公:申崇謙)으로 충정의 전통을 이어왔다. 7~8세부터 천성자품이 비범하여 양친을 섬김에 지극한 효도로 하니, 지역 내에서 칭찬하기를 “하늘에서 타고난 사람이다.”라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거나, 자신의 목숨을 대신해 달라는 기도나, 꿈에 고기를 본 일과, 피눈물을 흘리는 정성의 일들은 저절로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고, 실상 전파됨이 있으니 하나하나 군더더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효자의 일이 그 가운데에 갖추어져 있다. 아깝도다! 효자가 그리 오래 살지 못하여 마침내 포상과 정려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죽었으니, 그 자손 된 자가 항상 한을 가졌고, 사우들로서 듣고 아는 자들도 또한 그 때문에 개탄했다. 그러나 어둡고 어두운 저승에서도 한줄기 향기가 썩지 아니하였으니 지금 다행이도 성상(聖上)께서 효도로 다스리는 밝은 세상을 만나서 그 아들 상익(相翊)과 손자 정균(正均)과 성균(成均) 보(甫:어르신에게 붙이는 글)가 선대의 효도를 이어서 글을 가지고 대궐에 호소하여 특별히 교지로 작설을 허락하는 은전을 입게 되었다. 드디어 돌아가신지 오래 된 효자로 하여금 영광을 입게 하여 명망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교지를 받들어 향기로운 제수(祭需)를 올리는 날에 혼령께서 어둡지 아니하시다면 양양(洋洋)하게 이르러 느끼셨을 것이다. 그러하니 “옛날 천작을 닦으면 인작이 따른다는 것이 이에 증명이 되지 아니하는가!”
아! 효도의 시종(始終)을 공이 능란하게 다했고, 사군자(士君子)의 능사를 공이 마쳤다. 내가 곧 그 글을 보았고, 그 이름을 들었기에 위로 벗을 삼아 어질게 여겼다. 장차 오래도록 전하여 함에 진실로 그 아름다움을 세세로 실천하면서 보고 느낀 대로 효를 일으키면 거의 인명(仁明)의 진실에 어긋남이 없으리라.
숭정 기원 후 제5 신묘(辛卯:1891)년 8월 하순 통정대부 예조참의 선산후인 성대 윤시영 공경히 서문하다.

 

효자 신영언 정려각과 비

비각 내부의 정려기 편액

 

용유담의 전설 때문인지 정려각 내부의 벽에는 한마리의 청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며 구름 위를 날고 있는 그림 장식을 하고 있다. 보통 용 그림은 청룡과 황룡이 얽혀있는 모습이지만 이 정려각은 암용을 뜻하는 청룡 한마리만 그렸다. 

 

 

모전마을에 다가오니 전설을 간직한 용유담을 가로지르는 용유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리산 골짝에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걸으며 맑은 공기로 호흡을 하는 것이 이 날 동창들과의 일과였다. 덤으로 외진 골짝에도 사람이 살고 풍류를 즐겼던 선인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 좋았던 하루이다.

용유담은 지리산이 20억년 동안 애써 남긴 지질학적으로 자연과학 박물관이라 불릴 만한 자연유산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화강암 사이로 현무암이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용이 용트림을 하면서 하늘을 향해 기어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곳에 댐을 만들면 이런 자연유산은 영원히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한다. 이 용유담은 휴천면에 속하며 신령한 기운이 뭉쳐있는 곳이라 조선시대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휴천면의 이름이 '물이 쉬어가는 곳'이란 의미인데 바로 용유담에서 나왔다. 마천면의 이름은 홍수가 나면 마치 '말이 일어나 달리듯이 물이 흐른다'해서 붙어진 명칭이다.

 

 

잠시 동안 즐겼던 전설의 이야기 길은 용유담을 향하며 추억이 되었다.

 

 

용유담(모전마을)에서 벽송사(금계마을)로 가는 둘레길 입구 모습

 

 

용유교 입구에는 반야정사라는 절집이 있지만 아직은 전통 가옥의 형태가 아니고 수도하는 중이 기거하는 모습이다. 이곳도 점점 발전을 하다보면 인근의 절들처럼 유명세를 탈 것이다.

 

 

용유교 위에서 모전마을이 있는 엄천의 하류방향을 사진에 남겼다. 마적도사의 장기 알이 바위로 남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모습 그대로 이다.

 

 

상류 방향에는 강 가운데 거북바위가 엄천을 건너려고 걸어가는 모습 그대로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킨 듯 서 있다. 아직도 이곳 용유담에는 기복을 빌었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여행에서 보는 것은 아는 것만큼 보게 되고 느끼게 된다. 예전에도 이곳을 지났지만 오늘처럼 걷지 않고 차량으로 지나다 보니 그냥 스쳐 지났는데 그나마 오늘은 이 골짝의 작은 이야기를 보고가게 되어 다음에 다시 온다면 필요한 부분의 사진을 예쁘게 담을 것이다. 항상 지난 후에 그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정성을 들였다면 좋은 사진을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 선조가 남긴 용유담을 읊은 싯구가 있어 14대 선조가 보았던 곳을 지금의 후손이 보는 마음을 담아 소개를 한다.

 

遊龍游潭 용유담 유람에서


適意由來貴 뜻에 맞는 일이 본래 귀한데
尋山不必花 산을 찾음이 꽃 때문만은 아니네.
村居春爛熳 살고 있는 시골엔 봄기운이 무르익고
靈洞雪橫斜 신령스런 마을의 눈은 옆으로 누웠네.
萬象看來別 만물은 보다보니 구별되고
三淸路未賖 삼청은 길이 멀지 않았구나
悠然動詩興 유연하게 시의 흥취 일어나는데
吟罷酌流霞 읊기를 마치며 신선의 술 마시네
鷗洲公 姜大適(1594~1678)


*용유담은 함양군 마천면 모전마을에 위치한 마적도사의 전설을 안고 있는 엄천강에 있다.
*삼청은 도교에서 옥청, 상청, 태청의 삼청을 말한다.
*유하주란 신선이 마신다는 좋은 술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