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내서읍 호계입구 읍풍대 기적비

천부인권 2017. 11. 29. 13:30



2016.11.6. 내서읍 안성천변 읍풍대 모습


내서읍 안성리에서 발원한 안성천이 평성리를 거쳐 호계 입구에 이르면 안성천 둑 회원구 내서읍 평성리 689번지에서 노거수 느티나무를 만난다. 이 느티나무의 지금 모습은 쌍수로 심은 듯 보이지만 몇 그루가 고사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안성천을 건너는 다리가 놓여 있는 노거수 느티나무 아래에는 5개의 비석군이 세워져 있는데 모두 이 느티나무와 관련한 이야기에서 세운 것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워진 비들을 소개하면 전의관경주최병화자선찬양비(前議官慶州崔炳化慈善讚揚碑), 전의관경주최병화기혜비(前議官慶州崔炳化記惠碑), 통정대부승정원좌부승지경주최익백혜휼비(通政大夫承政院左副承旨慶州崔益伯惠恤碑), 전의관경주최병화송덕비(前議官慶州崔炳化頌德碑) 및 읍풍대기적비(挹風臺記蹟碑)가 있다. 아래에는 읍풍대기적비의 비문을 수록한다.






挹風臺記蹟碑
有蒼然古本盤欝聳立於虎溪之洞口者吾先人通政大夫副承旨府君慶州崔公之所手植也先人在世日相杖屢於此點檢稻梁以適其志矣及沒于世而樹尙無恙其秀柯茂葉彷佛乎先人之豊貌厚髥不肖每過之不覺躑躅不忍去而起風樹之慟矣詩云維桑與梓必恭敬正傳曰望喬木而下車古人之重其祖先之手澤者如此不肖於是樹獨無感于心乎居人築石爲臺名曰挹風以先人之好施多種德於人故慕挹其遺風也不肖嘗欲治石以鐫蹟居人聞而樂助焉謹敍以如云爾

檀紀 四二七七年 四月
不肖子通政大夫中樞院議官秉化謹識
不肖孫 慶烈 謹書



읍풍대기적비(挹風臺記蹟碑)
푸르런 고목이 호계동 입구에 넓고 높게 솟아 있는 것은 우리선조 통정대부 좌부승지부군 경주 최공께서 손수 심어서 있는 것이다. 선인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매일 지팡이 들고 이곳에 나와 농사 점검하기에 적합했다.
세상을 떠났어도 나무는 아무 탈 없이 쑥쑥 자라 그 빼어난 무성한 가지와 잎은 선인의 풍모와 무성한 수염과 방불하구나 불초는 매일 지나도 깨닫지 못하였다. 왔다 갔다 하면서 부모를 오래도록 모시지 못한 죄스러움 금할 수가 없다.
시경에 이르기를 뽕나무와 가례나무를 보면 반드시 공경심이 생긴다 하였고 정전에 이르기를 높은 나무를 보면 수레에서 내린다고 하였다. 옛 사람들은 이렇게 그 선조의 유품조차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불초도 이 나무에 대해 특별한 느낌이 어찌 없을 손가 주민들이 돌로 탑을 세우고 읍풍대라 명하고 말하기를 선인께서 좋은 것을 베풀고 많은 덕을 사람들에게 심었으니 사람들이 그 유풍에 경의를 표하는 구나. 불초는 일찍 돌을 다듬어 선인의 행적을 새기려 하니 주민들이 소문을 듣고 와서 즐겁게 도왔다. 삼가 이와 같이 서술하여 적었다.


단기 4277(1944) 갑신 4월
불초자 통정대부 중추원의관 병화가 삼가 짓고
불초손 경렬 삼가 쓰다.




전의관경주최병화자선찬양비(前議官慶州崔炳化慈善讚揚碑)



전의관경주최병화기혜비(前議官慶州崔炳化記惠碑)


前議官慶州崔炳化記惠碑
卓矣維公 繄古心德
可哀匪窮 借田稼穡
嗟我百室 賴以爲食
平稅廉分 改換無亟
有或不贍 亦助其力
婦子寧止 彧彧黍稷
自公先公 仁惠有勒
噫嘻薄夫 監此爲則
鑱辭昭示 維石不泐




통정대부승정원좌부승지경주최익백혜휼비(通政大夫承政院左副承旨慶州崔益伯惠恤碑)



전의관경주최병화송덕비(前議官慶州崔炳化頌德碑)



읍풍대기적비(挹風臺記蹟碑)



출처 및 참고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2004.1)-삼덕정판인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