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비음산 불곡사의 새벽 풍경

천부인권 2017. 8. 9. 06:46



2017.8.7. 불곡사 일주문


비음산 불곡사(飛音山 佛谷寺)는 『한국불교사찰사전』에 935년 통일신라 경명왕 때 봉림선문을 개창(開創)한 진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으로 가람이 전소하였다. 1930년 우담화상(雨潭和尙 1882~1968)이 이곳 절골에서 비로자나불을 발견하고 중건한 절집이다. 1974년 후임으로 중(僧) 취산이 와서 대소 전각을 지어 지금에 이른다. 불곡사는 “사단법인 대한불교 우담종문회” 소속의 절로 사찰의 종파가 조계종, 법화종 등과 다르다. 우담종문회는 2011년 7월 창원 불곡사를 본사도량으로 하여, 지역불교 발전은 물론 '불모산영산재'를 보존· 전승하는 종파이다.


불곡사의 영역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건물이 1974년 12월 28일에 문화재로 등록된 창원시 대방동 1036번지에 위치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3호 “불곡사 일주문(佛谷寺 一柱門)”이다. 이 일주문은 원래는 사찰의 일주문이 아니라 창원부 객사(昌原府 客舍)의 삼문 중 하나였다고 전하며, 일제강점기에 창원부 객사를 해체하면서 1882년 웅천향교(熊川鄕校)로 옮겨 외삼문으로 사용하다가 또 다시 웅천향교를 창원향교로 복속시켜 훼철하면서 1943년 우담화상이 지금의 불곡사로 옮겨 불곡사의 일주문으로 사용한 것이라 한다.





일주문을 지나 ‘세음루(洗音樓)’ 아래쪽 계단을 오르면 ‘비로전’이 대웅전을 대신하여 가람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기가 관음도량이라 비로전(毘盧殿)에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佛谷寺 石造毘盧舍那佛坐像)”을 모시고 있다.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창원지역 최초의 보물로 1966년 제436호로 지정되었다.





새벽 4시경인데 비로전에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과 예배를 올리는 중이 있었다.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땅에 묻혀있던 것을 1940년 우담이 비로전을 세워 모시게 되었으며, 현재 이 불상은 불신과 대좌가 완전하게 남아 있다. 불상은 육계가 분명한 곱슬머리에 얼굴은 둥글고 단아하다. 백호는 눈썹 사이로 약간 내려왔으며, 코 밑의 인중은 약간 두드러져 입까지 연결되었다. 목은 삼도가 뚜렷하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포개어 전형적인 지권인(智拳印 : 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쥔 모양인데, 오른손은 불계를 표시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일체의 깊은 뜻을 나타냄)을 하고 있다. 다리는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포갠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이다. 어깨와 가슴이 단정한 인간적인 신체 형태에 걸쳐진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가슴이 넓게 노출되었고 팔과 다리 등에 접혀진 옷주름은 얇게 빚은 듯한 평행 계단식 옷주름이다. 팔각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