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남해 임진성

천부인권 2017. 10. 22. 06:00



2017.10.18. 도기념물 제20호 남해 임진성(壬辰城)


남해군 남면 상가리 291번지에 위치한 임진성은 1974년 12월 28일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이 되었으며 토석혼축 테뫼식산성으로 둘레 283.3m, 높이 1~6m이고, 면적 16,460㎡이다. 임진성(壬辰城)이라는 이름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축조 되었다하여 붙어진 이름이라 전한다. 그러나 성곽의 유물들에는 고려시대 토기와 파편이 수집되어 최초의 성은 고려시대에 축성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급하게 다시 조성 되었을 것으로 보여 진다.
임진성은 평산진성과 마주보고 있으며 왜적을 막기 위해 관.민이 합심하여 축성하였기에 민보산성이라 불리고 성곽 내 토루를 만들어 통로로 이용했다. 옛 날에는 성루, 감시사, 망대, 탑대, 서당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고 우물지로 추정 되는 곳만 남아 있다. 또한 접근이 가능한 동문지와 서문지만 남아 있으며 옹성은 토성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구전에 의하면 임진성과 평산진성 사이의 포구를 옥포라 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1차 출정이 거제도 옥포에서 승전하자 이름이 같은 이곳 남해 옥포로 왜적이 재침한다는 소문이 퍼져 임진년(1592년)에 관.민이 합심하여 단시일에 축성한 성이라 전한다.




임진성으로 가는 길 초입 모습



임진성 동문지 입구에는 정지장군의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경렬공 정지장군 사적비'
경렬공(景烈公) 정지(鄭地1347∼1391)장군은 1390년(공양왕2)위화도 회군의 공으로 2등 공신이 되면서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병사하였으며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장군은 고려말 정치적으로 어지러울 때 오직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고려의 충신이었다. 이성계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 등에게 모진 고문과 투옥 생활에도 굴하지 않은 지조와 기개를 지키다 간 명장이다.




무너졌던 성곽을 보수한 모습이 나타나는 곳이다.




임진성의 위치를 보면 명산봉의 꼬리처럼 흘러내린 한 지류가 바다위에 떠있는 형상으로 남북서쪽의 삼면이 바다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곳을 지키면 남면으로 가는 길목을 막게 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농지로 바뀌었고 남쪽 바다가는 골프장이 되어 있다.




동문지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