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해인사 길상탑

천부인권 2017. 10. 30. 09:25



 2011.08.21. 해인사 길상탑(海印寺 吉祥塔)


길상탑은 해인사 일주문 밖 동남쪽으로 약 50m되는 지점인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에 위치해 있다. 이 탑은 오랜 내란으로 해인사 주변에서 전몰한 승려와 백성을 위해 문수사리보살의 가피를 빌고자 해인사의 훈혁 승이 895년에 세운 위령탑이다. 규모는 작지만 전형적인 신라계통의 3층탑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1966년 탑 속에서 최치원이 지은 탑지와 157개의 소탑 등 유물이 도굴되었으나 범인을 잡고 물품을 압수하면서 1985년 11월 14일 지정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3호를 해제하고 1996년 05월 29일 보물 제1242호로 지정했다.





탑은 바닥돌 위에 아래층 기단을 받고, 윗면에 얇은 괴임을 새긴 후 위층 기단을 얹었다. 위층 기단은 하나의 돌로 짜여져 다른 탑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모습이다. 탑신은 1층의 몸돌이 2·3층의 몸돌보다 크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각 층 모두 5단이다. 지붕돌의 처마는 반듯하다가 네 귀퉁이에서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남고 모두 없어진 상태이며, 받침돌 윗면에 철주를 꽂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탑에서 나온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 중 조그만 탑이 157개가 있으나, 소탑은 원래 99개, 77개를 두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없어진 듯 하다. 탑에 대한 기록인 탑지(塔誌)는 4장인데, 통일신라 후기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글에는 신라 진성여왕 8년(895) 통일신라 후기의 혼란 속에 절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탑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탑지에 따르면, 탑의 건립에 있어서는 통일신라시기에 유행하였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한 추복탑(追福塔)이 신라 말기까지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장사(匠士) 승려 난교(蘭交), 청유(淸裕)와 부장사(副匠士) 거불(居弗), 견상(堅相), 구조(具祖) 등 총 5인의 장인을 특별히 초청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신라의 수공업 체계에서 승려 장인의 직능이 세분화되어 있었고 여러 곳의 불사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석탑을 통하여 탑의 건립에 필요한 경비와 물품 등을 알 수 있어 당시 사원경제를 파악하는데 결정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건탑 이유와 건립 과정을 통해 신라말기 사회의 혼란상과 경제사, 도량형 등을 밝히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는 탑으로 평가될 수 있다.


출처 및 참고
문화재청-해인사 길상탑
네이버 지식백과-합천해인사길상탑[陜川海印寺吉祥塔](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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