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해인사 영지, 당간지주, 원표

천부인권 2017. 10. 31. 11:04



2011.08.21. 해인사 영지(海印寺 影池)


해인사 일주문 앞 공간에는 영지(影池), 당간지주(幢竿支柱), 원표(元標) 등이 있으며, 고사한 은행나무도 보존을 하고 있다. 해인사 일주문 앞 공간에 위치한 이런 시설에 대해 대략적인 이야기를 알아본다.





해인사 일주문 앞 영지에는 이런 안내표지가 세워져 있다. 『가야산 정상이 이 연못에 비친다고 해서 영지(影池)라 부른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가 장유화상을 따라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한 일곱 왕자를 그리워하여 가야산을 찾았으나 산을 오를 수 없어 아들들의 그림자라도 보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 하였다. 그러자 수행 중인 왕자들의 모습이 연못에 비쳤다.』




지리산 칠불암 명지 모습


가야산 해인사 영지(影池)와 유사한 이야기는 지리산 칠불사 앞 명지(覭池)에도 전하는데 그 이야기는 이렇다. 『칠불사 입구에 이르면 명지(覭池)라는 둥근 인공 연못이 고요한 지리산 반야봉을 담고 있다. 이 명지는 출가한 일곱 왕자들을 만나보고 싶어 수로왕과 허황후가 이곳 칠불사에 찾아왔는데 장유화상은 득도를 하려는 왕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만날 수 없다고 하면서 꼭 보고 싶으면 이곳에 못을 만들면 왕자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 하여 수로왕이 이 둥근 연못을 만드니 왕자들의 모습이 보였다고 전한다.』




불모산 성주사 어수각자



또한 불모산 성주사에는 수로왕과 허황후가 수도하는 아들을 찾았다가 절 입구에 있는 샘물에서 목을 축였다한다. 그래서 샘물 위에 뚜껑처럼 만든 석물을 만들었는데 수로왕이 물을 마셨다는 뜻으로 어수각(御水閣)이라 글씨를 새겼다. 샘물이 있던 곳은 지금의 장소가 아니라 성주사 계단 입구 쪽 느티나무 아래였다.




해인사 당간지주(海印寺 幢竿支柱)


당간지주(幢竿支柱)은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당(幢)을 달아 두는 돌기둥으로 한 쌍의 돌기둥이 마주보고 있으며 지주를 고정하기 위한 옆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가 많다. 해인사 당간지주는 구멍은 뚫려있지 않고 마주보는 돌기둥 사이에 기둥을 세울 수 있는 판석이 놓여 있다.




해인사 원표(海印寺 元標)


일주문 입구 진행방향에서 왼쪽에 사각의 석물이 세워져 있는데 원표(元標)라는 글씨가 있다. 원표(元標)란 해인사를 기점 하여 거리를 적어 놓은 이정표이다. 원표란 글씨 밑에는 음각한 글씨는 '합천군 구리삼십삼정(陜川郡 九里三十三町), 야로시 사리십삼정(冶爐市 四里十三町)'라 적혀있다. 석주 사면에는 김천군(金泉郡) 성주군(星州郡) 진주군 이십이리구정(晋州郡 二十二里九町), 거창군 십이리십삼정(居昌郡 十二里十三町), 고령군 팔리(高靈郡 八里), 대구부 십칠리이십사정(大邱府 十七里二十四町)라 적었다.


출처 및 참조
해인사 영지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