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통영 서피랑-문화동 배수시설

천부인권 2018. 7. 14. 05:43



2018.7.9 통영 서피랑의 서포루


통영시 명정동 일대의 가파른 절개지에 위치한 주거시설을 일러 통제영의 서쪽에 위치한 절벽이라는 뜻으로 서피랑이라 부른다. 서피랑의 가장 높은 곳에 요즘 들어 건설한 옛 통제영의 부속건물인 서포루(西鋪樓)가 우뚝 솟아있어 산정상을 올랐다. 서포루에 접근하자 통영시가지와 바다가 그림처럼 나타난다. 이 서피랑의 한쪽에는 접근이 금지된 문화동 배수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150호 문화동 배수시설


문화재청에 의하면 『이 시설물은 1933년에 이 지역 일대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립된 배수시설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침탈의 기반 시설로서 만들어진 배수시설로, 현재는 시멘트로 덧칠되어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배수지 출입 시설물 상부에 있었던 일본 왕을 찬양하는 “天祿永昌”이란 글씨의 지워진 흔적은 일본인이 자행했던 침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통영 시내가 잘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 위에 있으며, 육각 형태에 돔형 지붕, 아치형 입구, 석조를 돌출시켜 장식하였으며, 당시 표현주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문화동 배수시설은 경남 통영시 뚝지먼당길 74-10, 외 2필지 (문화동)에 위치하며 2005년 04월 15일 등록문화재 제150호 지정된 건물이다.





통영시사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통영을 지배한 일인들은 통제영시대에 군영에서 ‘뚝장군’을 섬겼던 사당을 헐고 1933년 배수시설을 지었다. 지금은 통영시민이 진주 남강물을 공급받지만 일제 때에는 미륵산 용화사의 물을 끌어와 문화동 배수지에 저장했다가 읍민들에게 공급했다. 미륵산 용화사 저수지에서 이곳 배수지까지 수돗물을 공급하게 된 것은 통영 해저터널을 완공하면서 물길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 결정적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배수지 제수변실의 형태는 콘크리트 구조의 원통형과 육각형이고 벽돌조는 사각으로 만들어졌다. 원통형이나 육각형의 상부는 돔 지붕으로 처리하고 최상부에는 파총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제수변실의 외벽은 원통형이나 육각형의 밋밋함을 해결하기 위해 붙임기둥과 가로돌림띠로 입면을 나눴다. 또한 출입문 좌우에는 장식 몰딩을 설치하고 상부에는 그리스신전 건축의 형식을 띤 페티먼트장식이나 활모양의 석재몰딩을 달아 고전적인 환상을 연출했다.
통영 문화동 배수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 세[워진 취수탑, 배수탑, 제수변실 등도 규모상의 차이는 있으나 돔형지붕을 올린 원통형 구조물인 경우가 많고 장식수법도 우리나라의 것들과 비슷하다. 문화동 배수지 기계실 출입구 상부에는 “천록영창(天祿永昌)”이란 글을 적은 화강석 현판이 있으나 2004년 통영 시민단체가 반일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시멘트로 메워버려 글귀가 보이지 않는다. “천록영창(天祿永昌)”이란 “하늘로부터 받은 복록이 길이 창대하고 영원하리라.”는 뜻으로 배수지에서 집집마다 나가는 물에 복이 있기를 기원한 축원문이다. 오늘날 통영 문화동 배수지는 근대 건축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 자료로 간주되지만 일제가 통영의 정기를 억제하려는 의도로 지은 건물이라는 측면에서 시민들이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거부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는 등록문화재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출처 및 참조]

문화재청

통영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