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봉수대

창원시 웅천 사화랑봉수를 찾아서

천부인권 2017. 11. 20. 20:19

 

2017.11.19. 웅천사화랑봉수

 

11월 16일 가덕도 천성연대봉수(天城烟臺烽燧)를 다녀 온 후 천성연대봉수를 처음으로 연락 받는 웅천사화랑봉수(熊川沙火郞山烽燧)를 찾아보았다. 진해구 명동 뒷산 성실봉(해발 160m) 아래 해발 80m에 위치한 명동왜성의 본성(本城)과 성실봉 정상에 위치한 천수각(天守閣) 터를 지나 사람의 왕래가 없어 오솔길도 제대로 없는 사화랑산으로 무작정 걸었다. 우측 숲 사이로는 명동과 음지도의 솔라타워가 계속 보이고 좌측은 석산개발로 시끄러운 소음이 사화랑산 봉우리가 보일 때까지 들린다. 처음에는 성실봉 정상의 성곽이 왜성의 모습이 아니라 거의 조선의 성곽처럼 보여 여기가 사화랑봉수 인가하고 한참을 살폈는데 다른 곳에 남아 있는 성곽을 보고 왜성의 천수각 자리라 추정했다.

 

 

2017.11.19 사화랑봉수 서쪽 경사면에는 조개, 굴 등을 먹고 버린 조개무지가 있다.

 

웅천사화랑산봉수(熊川沙火郞山烽燧)가 위치한 사화랑산(해발 196m) 정상에 오르니 근래에 산 정상 봉수대 자리와 인근의 잡다한 나무들을 잘라 내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해두었다. 사화랑산 정상부 서쪽 경사면에는 조개무지가 있어 이곳에서 봉수군이 생활을 했음을 알게 한다. 웅천사화랑봉수는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안내판이나 문화재 지정 구역이라는 표시는 전무하며 인근의 주민들도 이 산 이름을 모르고 있어 이름 없는 산으로 알고 있었다.



사화랑봉수의 남쪽 풍경

 

성실봉으로 불리는 명동 뒷산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는지 모르겠고, ‘삼포 가는 길’이란 노래 때문에 알려지기 시작한 삼포마을 뒷산이 사화랑산인데 추측컨대 삼포마을과 제포마을 앞은 예전에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갯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거친 모래가 펼쳐진 곳이라는 뜻으로 이곳 바다 일대를 사화랑이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창원시 의창구에는 사화(沙火)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 역시 바닷가 모래밭이 펼쳐진 마을이라 이름 붙어졌다.

 

 

서북 방향

 

경상도에서 서울 남산(목멱산)에 이르는 조선 시대 봉수에서 웅천사화랑봉수는 제 2거의 간봉(間烽)으로 동쪽의 가덕도 천성연대봉수(天城烟臺烽燧)의 신호를 받아서 서쪽 창원 여음포봉수(餘音浦烽燧)와 고산봉수(高山烽燧)로 연결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웅천 읍지』와 『동국여지지』에 따르면 사화랑 봉수의 봉수군보(烽燧軍保)는 100명으로 이루어졌고, 군 25인, 보 75인(민간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화랑봉수는 1894년(고종 31) 팔로(八路)의 봉수가 폐지될 때 함께 없어졌다.

 

 

동쪽 가덕도 방향

 

웅천현 읍지의 봉수 편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어 웅천현의 봉수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북쪽 방향으로 천자봉 팔판산 불모산이 펼쳐진다.

 

천성연대봉수(天城煙臺烽燧)-웅천현 읍지의 봉수 편
현에서 남쪽으로 수로 35리 지점에 있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대마도를 바라 볼 수 있다. 동쪽으로는 김해 성화례 봉수대로 알리며 거리는 수로 30리가 되고, 서쪽으로는 본 현의 사화랑 봉수대로 알리며 수로 35리가 된다.
[在縣南水路三十五里 南望對馬島 東報金海省火禮烽燧相距水路三十里 西報縣沙火郞烽燧相距水路三十五里]

 

 

동쪽 가덕도 방향 수도, 솔섬, 연도, 가덕도와 가덕수로가 조망된다.
서쪽의 고산봉수를 마주하며

 

사화랑봉수(沙火郞烽燧)-웅천현 읍지의 봉수 편
현에서 서남간 6리 지점에 있다. 동쪽으로 천성연대 봉수의 신호를 받아 서쪽으로 창원 여포 봉수대로 알린다. 그 사이 거리는 수로 25리 이다.
[在縣西南間六里 東應天城煙臺烽燧 西報昌原餘浦烽燧 相距水路二十五里]
*여포(餘浦)는 여음포(餘音浦)를 말하며 당시 여음포는 칠원현의 구산진의 영역이었지만 봉수대는 창원부에 속했다. 현재 마산합포구 구산면 난포리 156-1번지의 천주교마산교구교육관이 위치한 봉화산의 봉수대를 말한다.

 

 

동쪽의 가덕도 연대와 말곶만(응봉)봉수가 조망된다.

고산봉수(高山烽燧)-웅천현 읍지의 봉수 편
현에서 서쪽으로 35리 지점에 있다. 동쪽으로 사화랑 봉수대의 신호를 받으며 그 사이의 거리는 육로로 35리 이다. 북쪽으로 창원 성황당 봉수대에 알리며 그 사이는 육로 25리 이다.
[在縣西三十五里 東應沙火郞烽燧 相距陸路三十五里 北報昌原城隍堂烽燧 相距陸路二十五里]
*고산봉은 창원시 진해구 비봉동 뒤쪽 현 통제부 동문지 위쪽에 위치한 산.

 

웅천 고산(熊川 高山)에 대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웅천현(熊川縣) 산천(山川)에는 완포현 북쪽 5리 지점에 있는데 본 현과는 45리 거리이다. [高山 在莞浦縣北五里 距本縣四十五里]라 기록하고 있다. 

 

 

웅천읍성과 평발고개가 조망된다.

 

가덕도 천성연대봉수→ (12.88km)웅천 사화랑봉수 →장복산봉수→ (10.87km)장복산봉수 실체고산봉수→ (9.6km)창원 성황당봉수→ (13km)칠원 안곡산봉수 →영산 소산봉수1, (15.16km)영산 소산봉수2→ (4.58km)창녕 여통산봉수 → (14.35km)창녕 합산봉수 [봉수노선 제2거 간봉(6)]

 

삼포로 가는 길 노래 비가 있는 곳

 

교남지권지73(嶠南誌卷之七十三) 웅천군(熊川郡)의 기록 중 봉수(烽燧)에 대한 기록은 이렇게 적었다.

 

加德島烽燧 : 在郡南水路三十五里南望對馬島 東應金海省火禮山相距水路三十里 西應沙火郎山相距水路三十五里
가덕도봉수 : 군에서 남쪽 바닷길로 35리에 있으며, 남쪽의 대마도를 바라본다. 동쪽에 응하는 것은 김해 성화례산봉수이며 서로의 거리는 바닷길로 30리이다. 서쪽에 응하는 것은 사화랑산봉수이며 서로의 거리는 바닷길로 35리이다.

 

沙火郎山烽燧 : 在郡西南六里 東應加德島 西應昌原余音浦及本郡 長福山相距水路二十五里
사화랑산봉수 : 군에서 서남쪽 6리에 있으며, 동쪽으로 가덕도봉수에 응하고 서쪽으로 창원 여음포봉수에 응하며 본군에서 관리한다. 장복산봉수와 서로의 거리는 바닷길로 25리이다.

 

高山烽燧 : 東應長福山 南應昌原余音浦 西報昌原城隍山
고산봉수 : 동쪽으로 장복산봉수에 응하고, 남쪽으로 창원 여음포봉수에 응하며, 서쪽의 창원 성황산봉수에 알린다.

 

長福山烽燧 : 在郡西三十五里 東應沙火郎山 北應報昌原城隍山相距陸路三十五里
장복산봉수 : 군에서 서쪽으로 35리에 있으며, 동쪽으로 사화랑산봉수에 응하고, 북쪽의 창원 성황산봉수에 알리며 서로의 거리는 육로로 35리에 있다.

 

城山烽燧 : 燕山丙寅移加德島烽燧于此
성산봉수 : 연산(제비산)에 있던 것을 병인년에 가덕도봉수로 이전했다.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있는 곳에서 본 사화랑봉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