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봉수대

칠원 안국산봉수를 찾아

천부인권 2017. 11. 23. 20:31

 

 

 

2017.11.22. 칠원안국산봉수

 

임진왜란 당시 가덕도 말곶망(응봉)봉수와 연대봉수에서 피워 올린 봉수의 신호가 한양 멱목산(남산)으로 가기까지 거쳤을 봉수대를 따라 시간이 날 때마다 한곳씩 둘러보려고 한다. 그러나 옛 지명과 현재의 지명이 달라 쉽게 어디인지 알기 어렵다. 결국 옛 지도와 동국여지승람 및 각 읍지의 기록을 찾아보고 현재의 지명과 대조해야 어디에 위치하는 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몇 개의 봉수를 둘러보면서 봉수대가 위치한 곳은 군사목적의 진이 있거나 전통시대의 통신수단인 역(驛) 인근의 산봉우리에 만들었다는 공통점을 보았다. 웅천현에서는 청성진과 완포진의 인근에 위치했고, 창원부에서는 근주역(近珠驛) 인근 성황당산에 건설했으며, 칠원현에는 창인역(昌仁驛) 인근의 안곡산(안국산)에 봉수를 두었다.

 

 

 

 

광여도-칠원현

 

옛 고지도인 광여도와 지승(地乘)에는 칠원안곡산봉수(漆原安谷山烽燧)로 기록을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안곡산이라 표기 했다. 그러나 칠원읍지(漆原邑誌)에는 안곡산(安谷山)이 아니라 안국산(安國山 해발 344.2m)으로 기록 되어있다. 칠원읍지에 의하면 칠원안국산봉수(漆原安國山烽燧)는 현에서 서쪽으로 10리 되는 곳에 있으며, 남쪽의 창원성황산봉수의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영산소산봉수(靈山所山烽燧)에 알리며 서로의 거리가 30리 이다. [在縣西十里 南應昌原城隍山 北報靈山所山 相距三十理]

 

 

지승-칠원현

 

 

가덕도 천성연대봉수→ (12.88km)웅천 사화랑봉수 →장복산봉수→ (10.87km)장복산봉수 실체고산봉수→ (9.6km)창원 성황당봉수→ (13km)칠원 안곡산봉수 →영산 소산봉수1, (15.16km)영산 소산봉수2→ (4.58km)창녕 여통산봉수 → (14.35km)창녕 합산봉수 [봉수노선 제2거 간봉(6)] [봉수노선 제2거 간봉(6)]

 

 

2017.11.22 안국산 봉불사 입구

 

 

칠원안국산봉수는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 산 251-2와 대산면 대사리 산 90-1의 경계가 지나는 지점의 산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다른 등산로를 통해서 안국산 정상을 올라 갈 수는 있겠지만 가장 쉽고 안전하게 오르는 방법은 안국산 정상에서 380m 아래에 있는 봉불사(奉佛寺)를 찾은 후 조금 아래의 빈터에 차량을 주차하고 마을 뒤쪽으로 오르면 도래솔 2그루가 있는 위쪽으로 오르면 된다. 

 

 

 


무덤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래솔이 서있다. 우측의 두 번째 소나무 옆의 산등성으로 오르면 정상부로 가는 길이 나온다.

 

 

 

칠원안곡산봉수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나무계단을 만들어 두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산정으로 오르는 경사는 제법 심하지만 거리가 짧아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안국산 정상에 오르니 봉수대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점심시간이 다되어서 인지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면 오늘은 쉬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봉수대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자리를 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비지정문화재 관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 할 때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직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지 않다고 해도 다른 봉수대들은 이미 문화재 등록을 마친 것도 많다. 이곳 봉수대 역시 옛 문헌이나 지도에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볼 때 문화재가 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라 봐야 한다. 앞으로 봉수대를 찾는 관광객이 많아질 것이고 문화가 상품이 되어 지역경제의 밑바탕이 될 소지가 많다. 옛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지 못하면 문화민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많은 부분 우리의 옛 문화가 파괴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지키며 활용해야 문화의 발전이 있다.

 

 

 

칠원안곡산봉수대는 일반적인 봉수대의 모양과 조금 다르다. 보통의 봉수대는 봉수대를 높게 쌓고 봉수 밑이나 조금 위쪽에 장작이나 땔감을 넣어 불을 지필 수 있는 모양이지만 안곡산봉수는 봉수 밖의 담장은 없고 원형의 대를 돌로 쌓은 후 중앙에 불을 피우도록 만들었다. 불을 피우는 중앙으로 사람이 내려 갈 공간이 없다.

 

원형 대 중앙에 불을 피운 흔적인 숯이 남아 있다.

 

 

원형의 대 중앙 불을 피우는 자리는 발굴 흔적을 보니 숯이 남아 있어 중앙에 놓은 약간의 돌 위에 나무를 놓고 불을 지핀 것으로 보인다. 영산소산봉수대에서 볼 수 있는 큰 불이나 연기를 만들려면 어떤 방법을 이용 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원형의 대는 산불감시초소를 세울 정도로 폭이 넓은 편이고 중앙의 원형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나 장치는 없다. 중앙 원형 안에 작은 원형의 불을 피우는 곳을 만들었지만 안쪽에 사람이 불을 피운 후 움직일만 한 공간은 없다.

 

 

 

문화재 발굴 작업을 진행 중에 있는데 동서남북 사방으로 흙을 파고 있다.

 

다른 위치에서 칠원안곡산 봉수를  바라본 모습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이처럼 기록했다.

칠원안곡산봉수(漆原安谷山烽燧) 현 서쪽 10리 지점에 있다. 남쪽으로는 창원부 성황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영산현 봉산에 응한다. [安谷山烽燧 在縣西十里 南應昌原府城隍山 北應靈山縣峯山]

 

 

날씨가 흐려 전경이 조망되지 않는다. 칠원읍 방향

 

 

북쪽 영산소산봉수 방향

 

 

날씨가 흐려 볼 수 없기도 했지만 주위에 잡목들이 많이 자라 경관을 가리고 있다. 이곳 칠원안곡산봉수대는 사방이 훤히 뚫려 있는 곳인데 봉수대 주위에 자란 잡목으로 조망하는 것이 어렵다. 발굴 작업과 함께 주위의 잡목을 제거하여 경관을 볼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