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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면 다구리 풍욕대 風浴臺

천부인권 2017. 12. 5. 09:59



2014.12.27. 진동면 다구리 풍욕대와 쌍수


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332번지는 진동면의 한가로운 바닷가 다구마을과 들판이 펼쳐진 중앙에 위치하고 그 가운데로 물길이 지나면서 노거수가 쌍수로 서 있다. 노거수는 수종이 서로 다른 푸조나무와 왕버들이다. 그 쌍수 아래 비갈이 세워져 있으니 전면에 풍욕대라 적었다. 이 비에 새긴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내가 서호의 임공을 위하여 그 논두렁길 이름 지을 때 대략 풍욕대의 실적을 서술하는 지라 그대가 다구리 앞 들 가운데 있음에 위로 노거수가 둘러 있고 아래는 맑은 샘이 흐르니 가히 바람하고 목욕하는 것이며 눈앞의 넓은 바다가 가이없으니 먼 날 생각할 것이요. 좌우로 산림이 둘러 있으니 가히 기밀한 취미를 부탁한 즉 진실로 일방의 승지이며 숨은 은인의 휴식처라 할 것이다.
공이 취하여 이름 짓은 것이 풍욕대라 그 뜻이 깊고 아들이 또한 돌에다가 각자(刻字)하여 표적하니, 차마 그곳을 황무지라 못하는 것은 효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시 나에게 명을 부탁하거늘 이에 명하여 이르데 옛날 증자는 공자를 모신지라 늦은 봄에 풍욕 할 새 그의 뜻을 말하는 것이 여기에 있다.
극히 내가 칭찬하는 것은 공부자가 거룩함을 발설하려 한 것이다. 대개 이러한 일은 눈앞에서는 쉬운 일인데 어찌하여 성인이 특히 이를 취하심인고. 공자의 다른 제자들의 뜻은 정치하는 것을 구구한 것인지라 속세를 초월함은 탁월하여 티끌이 없다.
봉이 천길을 날려하는 것에 가히 더불어 비할 지라. 몽춘풍욕은 봉황새와 같이 천추를 지난 오늘 날에 높은 풍치를 앙모하는지라. 공이 말세에 특히 이를 사모하여 대를 쌓아서 이름을 정할 때 그 흥을 늦은 만춘에 부탁하는지라. 이 대에는 무엇이 있는고, 청천과 수목이 있으니 누구와 더불어 한가로이 놀았을고.
어른 셋과 어린 아이 다섯이면 나와 아홉이 놀았으니 가히 바람하고 목욕할 것이요 휘파람을 불며 놀지라. 느긋한 내 마음은 바다와 하늘과 한가지로 넓은지라. 여기에 놀아서 한해를 보내니 이밖에 무엇을 도모해야 하는가. 고인돌의 짝함에 부끄러움이 없는지라 돌은 닳지 않을 것이요 우물 또한 마르지 않을 것이니 공의 유풍도 더불어 다함이 없으리라.


화산 권용현 짓고
전주 이숙제 씀
단기 4304년 신해(1971) 3월 세움





風浴臺記
余爲西湖林公 銘其阡道 略敍風浴臺之實矣 盖臺在多求里前平郊之中 老樹擁其上 淸泉流其下 可以風可以浴而眼前之滄溟 無際 可以寄遐想矣 左右之林麓 環抱 可以託幽趣矣則洵可謂一方之勝區而幽人之捿遲也 公之取而名之 其意邃矣而嗣子又欲副石以表之 盖出不忍荒發之孝思也 復蜀余以銘 乃爲之銘曰惟昔曾氏 聖門列侍 暮春風浴 言志在是 亟稱吾與 聖發其喟 夫此一事 眼前平易 云何聖人 特此之取 諸子之志事爲規規 超然物外 卓乎無累 鳳翔千仞 堪可與比 千載之下 想仰高致 公生衰李 特此之慕 築臺命名 託興春暮 斯臺何有 有泉有樹 誰與同遊 冠童三五 可風可浴 可詠可嘯 悠悠胸次 海天同浩 優遊卒歲 外此奚謨 庶幾無愧 古人之徒 有石不泐 有泉不渴 公之遺風 與之不歇


花山 權龍鉉 撰
全州 李叔帝




風浴臺


雙樹林亭歲不記-두 그루 늙은 나무 정자는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至今無主待吾歸-지금 와서는 주인 없어지고 내가 오기를 기다린 듯하네.
天壽滄海當前在-천수를 누린 듯 드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있고
萬古靑山列海國-만고토록 푸른 산이 해국에 늘어서 있네.
堪笑餘年留未洋-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聊知此樂恐還非-그런대로 이곳 즐거움이 잘못되지 않을 줄 알겠구나.
排鋪雖小貽漠遠-주변의 경물이 비록 소소하지만 광막하고 아득히 보아야 하니
戒爾兒孫亦莫違-너희 아손들은 경계하고 이치를 어기지 말지니라.




다구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