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내서읍 삼풍대의 효열비 4개 소개

천부인권 2018. 3. 4. 08:04



2015.9.10. 삼풍대 효열비


내서읍 삼풍대에는 4개의 효열비가 세워져 있는데 나무 그늘 아래에 있고 맞은편 도로에서는 울타리가 있어 잘 살피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또한 국한문 혼용체로 쓴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한문이 주류를 이룬다. 다만 비신에 적혀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적어 살피기에 좋게 소개를 한다. “노부밀양박씨효행비(盧婦密陽朴氏孝行碑)”는 한문이라 다음에 해석을 해서 밑에 첨가 할 것이다.






효열인동장씨지비(孝烈仁同張氏之碑)
기축삼월삼일(己丑三月三日) 1949년 음력 3월 3일에 세운 것이고
부송갑준(夫宋甲俊)이라 썼으니 지아비는 송갑준이다.





선부인곡부공씨사행비(善夫人曲阜孔氏事行碑)
선의(善矣)라 부인이시여 부인은 곡부공씨 휘소자(諱紹字)의 명조(明祖) 후예(後裔)로서 천성지자(天性之姿)가 관후(寬厚)하고 묵중(默重)하고 또는 근검(勤儉)하신지라 의창군 동면 덕천리(義昌郡 東面 德川里)에서 출생하시어 16세 약년(弱年)에 우리 문중 노갑수씨가(盧甲洙氏家)에 출가하였으니 기시시택(其時媤宅)의 가세(家勢)는 불성모양(不成模樣)이라 부인은 넉넉한 도량(度量)과 주밀(周密)한 재능으로써 가사를 전담(專擔)하였으니 치산지규(治産之規)는 변모전일(變貌前日)이라 시봉구고(侍奉舅姑)에 극진성력(極盡誠力)하고 대어제족(對於諸族)에 정서(情緖)가 진진(津津)하니 화기(和氣)가 만정(滿庭)하고 가산(家産)이 점진(漸進)이라 지어만경(至於晩境)하야 차부공(且夫公)의 10년병상(十年病床)에 와기지책(臥起之責)을 불임자질(不任子姪)하고 노양지력(老襄之力)으로 시종여일(始終如一)하였으니 선천적 자질(先天的 資質)과 실천적 품행(實踐的 品行)을 누구 아니 감탄(感歎)하리요.
내어향당(乃於鄕黨) 유림지석(儒林之席)에서 부인의 미덕선행(美德善行)을 높이 포창(褒彰)하였으니 차적오문지애(且赤吾門之愛)이라 오문화수지정(吾門花樹之情)으로 화수설금(花樹楔金)이로서 석물을 마련하여 부인의 선행을 길이 찬양하겠기에 종인(宗人) 노병엽(盧秉燁)은 대략선행(大略善行) 사실을 석면에 기록함이라.
서기 1982년 3월 일
삼계 교하노씨 화수회 건립





노부밀양박씨효행비(盧婦密陽朴氏孝行碑)
창원삼계리 교하노씨(交河盧氏) 세거지야(世居地也) 자고로 인문(人文)이 배출호기간(輩出乎其間)하야 명저향성(名著鄕省)이라 근유기문(近有其門)에 유효부(有孝婦)하니 성박씨관밀양성부왈(姓朴氏貫密陽城父曰) 환생사화리년십칠(煥生沙火里年十七)에 성혼례이(成婚禮而) 18에 기부로재승급서(其夫盧載勝急逝) 분상가우시가(奔喪家于媤家)하여 상장이필이욕종부(喪葬已畢而欲從夫)나 구고년노이무시봉지인(舅姑年老而無侍奉之人)에 박씨사인비통(朴氏舍忍悲痛)하고 효양구고(孝養舅姑)나 가우빈구(家于貧寠)하여 난계조반석죽(難系朝飯夕粥)에 궁집역농(躬執役農)하여 진기심력이봉사조선(盡其心力而奉祀祖先)하며 효양구고(孝養舅姑)에 일문막불칭탄야(一門莫不稱嘆也)라 구몰송종지제절(舅沒送終之諸節)을 유어제(踰於制)하여 진지체지효우고(盡志體之孝于姑)하야 서불간가야(書不間暇夜) 불은침(不隱寢)하여 시병(侍病)에 극진기성이고이천년(極盡其誠而姑以天年)으로 몰애(沒哀) 근감인(勤感人)하고 상장과례(喪葬過禮)하여 우기일(遇忌日)에는 치여재지성(致如在之誠)하니 차호(嗟乎)라 박씨지효기손어한지진효부야(朴氏之孝豈遜於漢之陳孝婦耶)아 연이진효부(然而陳孝婦)는 국군작설려(國君綽楔閭)하고 주자서우소학내칙편(朱子書于小學內則篇)하여 수우천고(垂于千古)하여 풍화세교(風化世敎)나 연금세강숙계(然今世降叔季)하야 강상(綱常)이 추지이지삼강자(墜地而知三綱者)가 선(鮮)이은 국가미능정기려이이교풍화(國家未能旌其閭而以敎風化)하니 병장지사기불통탄재부지어구고야(秉葬之士豈不痛嘆哉婦之於舅姑也)에 무혈영지상종이종부이의속지(無血泳之相終而從夫而義續之)니 기혈지상선자능기효자한(氣血之相禪者能其孝者罕)이은 황박씨(況朴氏)는 소종자몰이이의자수(所縱者沒而以義自守)하여 존기부지지(尊其夫之志)이 효양구고어장륜퇴패지세이이형년칠십(孝養舅姑於葬倫頽敗之世而以亨年七十)에 졸(卒)하니 향리유지지사막불탄상(鄕里有志之士莫不嘆賞)하고 노씨지문(盧氏之門)이 공세유구이박씨효행수이민몰(恐世愈久而朴氏孝行隨而泯沒)하여 벌석수비동전(伐石竪碑洞前)하야 이포영세이오우노병엽(以褒永世而吾友盧秉燁)이 방여청문(訪余請文)에 인섭(仁燮)이 하감사지(何敢辭之)아 접보서술계지명왈한지진효부(接洑叙述系之銘曰漢之陳孝婦)는 국가기강숭장지일금노효부(國家紀綱崇獎之日今盧孝婦)는 삼강두(三綱斁) 패지시이지득일편석(敗之時而只得一片石)하니 막일편석(莫日片石)하고 과자필식(過者必式)이며 아술명장(我述銘章)에 심무괴구(心無愧求)이라
西紀一九八六年 丙寅 春分節
咸安鄕校 典校 載寧 李仁燮 撰






부인여주이씨효열비(夫人驪州李氏孝烈碑)
宇宙의 영숙지기(靈淑之氣)가 강산을 형승기절(形勝奇絶)케 하고 강산의 정기는 시대의 흐름 따라 충효열절(忠孝烈節)이 출현하여 인세윤리(人世倫理)를 시범(示範)케 함을 천도(天道)라 한다.
부인이씨는 여주인(驪州人) 삼열당선생(三悅堂先生) 경향후(景萫後) 휘정구지녀(諱正九之女)로 비(妣)는 재령이씨(載寧李氏)인데 단기4251년 무오(戊午) 12일 3일 함안군 여항면 외동리(餘杭面 外洞里)에서 출생하니 성품(性稟)이 온순강직(溫順剛直)하고 언행이 현숙(賢淑)하며 부모슬하(父母膝下)에서 삼강행실지도(三綱行實之道)를 닦은 후 28세 귀우(歸于) 창원군 내서면 삼계동 김해김씨 문(門)하니 부군은 가락국 시조 대왕원손(大王遠孫) 휘 호위중조(灝爲中組)하고 관왕록삼중대광광록대부례빈승동정륙세손(官王鹿三重大匡光祿大夫禮賓承同正六世孫) 휘이형관조선별시위사정시생(諱利亨官朝鮮別侍衛司正是生) 휘구호금산관시사마륜림공(諱龜號琴山官始司馬輪林公) 조참판정헌대부 의정부참찬원공(曹參判正憲大夫 議政府參贊元公) 23세손(二十三世孫) 농암처사 휘찬원공(農菴處士 諱贊元公)의 장남(長男) 병완(炳婉) 일명 필용(必容)이요 층층시하독자(層層侍下獨子)로서 가세(加勢)가 궁색(窮色)하여 생계가 쓸쓸한 처지였다. 여차환경중부인(如此環境中夫人)은 출가하던 날 친정자당(親庭慈堂)의 훈계 말씀에 진인사(盡人事)하고 대천명(待天命)이란 말씀을 명심하고 중시하시종(重侍下侍從)과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소임을 소홀(疏忽)한 바 없이 9년세월이 경과하자 슬하에 여식(女息) 셋이 출생하자 부군왈(夫君曰) 이선무사자(以先無嗣者)는 불효지죄(不孝之罪)라 하고 재취(再娶)한 류씨(柳氏)와 일본으로 떠난 후 상시하솔(上侍下率)의 중책을 자신이 감당(勘當)해야 할 운명임을 생각하고 폭풍한설(暴風寒雪)과 삼복염천(三伏炎天)에도 불철주야(不撤晝夜)하고 연약한 부녀(婦女)로서 형기불언(形其不言)하고 필난진기(筆難盡記)할 험한 일들을 감내(堪耐)하면서 시봉하솔(侍奉下率)에 일무여념(一無餘念)하였고 시조모(媤祖母)와 시부양친(媤父兩親)의 환후수년중(患候數年中)에도 진성갈역(盡誠竭力)하였으나 시모고부(媤母姑婦)께서 순차로 별세하시니 상기범절(喪期凡節)을 성심껏 마치자 시부병세(侍父病勢) 중태(重態)로 와석불기처지(臥席不起處地)라 간호지공무궐정성(看護志供無闕定省)하였으나 종지영서(終至永逝)하시니 치상의절(致喪儀節)을 일무흠결(一無欠缺)하니 인개감탄(人皆感歎)이라 양친이 구몰종상후(俱沒終喪後)에 부군(夫君)이 병환으로 환고(還故)함에 평생지계(平生之計)로 정해진 부부라 사불변심(死不變心)이라 하고 환대요양사년간(歡待療養四年間) 극진방약(極盡方藥)으로 도천결유(禱天決瘉)하였으나 단기 4212년 기미 11월 28일(己未十一月二十八日)에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당한 부인은 애루탄식왈(哀淚歎息曰) 인지생사(人之生事)에 행불행(幸不幸)이 운지소관자(運之所關者)요 사기암사(死旣唵士)는 세속지풍야(世俗之風也)라 하고 창원군 내서면 삼계리 연자등 임좌(壬坐)에 안장후(安葬後) 상중범절(喪中凡節)을 진기의례(盡期儀禮)하니 사린칭송(四隣稱頌)이 자자(藉藉)해 향리추천(鄕里推薦)으로 서기 1971년 3월 27일 제43호 경남지사 효부표창(孝婦表彰)을 수상(受賞)하고 동년(同年) 3월 13일 제199호적 경남지사효부표창(慶南知事孝婦表彰)을 받았고 1986년 5월 24일 제37호 창원군 내서면 노인회효부표창패를 받은 후 향중사림(鄕中士林)의 천양(薦揚)으로 1990년 경오(庚午) 4월 4일자 제1559호 성균관장(成均館長)의 효부표창장을 수상 하였으니 사친결신(事親潔身)으로 각진기도(各盡其道)하고 적약행인(積若行仁)이 만세귀감(萬世龜鑑)이 되므로 진시효재(眞是孝哉)아 열재야(烈哉也) 후사(後嗣)에는 유씨(柳氏) 생웅하극하(生雄河克河) 고하규하(估河圭河)요 여서(女壻)에 진양 강이곤(晉陽 姜二坤) 해주 오상봉(海州 吳相鳳) 영산 신철수(靈山 辛철수)다. 거중춘족숙병도씨(去仲春族叔柄道氏)가 포지창장(抱持彰狀)하고 상여왈부인지행적(相余曰夫人之行蹟)이 세구연심(歲久年深)하면 구부인멸고(懼夫湮滅故) 삼계문중제족(三溪門中諸族)이 주선차사(周旋此事)하고 전석수비(鐫石竪碑)코져 청여기지(請余記之)로 사불덕이(辭不德已) 접기가보창장(接其家寶彰狀)하고 략진실기(略陳實記)하여 어사만년(於斯萬年)에 소시후인(昭示後人)이라
檀紀四三二三年 庚午 八月 五日
族姪 駕洛崇善殿參奉 尙河 撰竝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