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주한일본공사관 기록
진해만의 섬과 지명들이 등장한다. 현재의 지명과 일치하는 것도 있고 아닌것도 있다. 지도상의 초현도는 지금 초리도라 부르고 설진은 원전이라 부른다. 원전 앞 실리도는 보리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포도비, 박법구, 도내포, 명주만 등은 생소한 지명이다.
1900년 왜놈이 본 러시아군 행동보고서
이 보고서를 보면 지금의 귀산동은 웅천현에 속한 곳이다.
왜국(倭國) 일등영사 이시누(伊集院彦吉)가 쓴 마산포 보고
1898년 7월 1일
통상항으로 새로이 개항하려고 하는 마산포는 경상도 창원군의 관하에 있고, 부산항에서 서쪽으로 해륙이 모두 약 150리 떨어져 있다. 육로 운수 편은 마산포가 경상도에서는 심한 언덕과 험로가 없다고 하지만 낙동강 지류 세 강을 건너야하는 불편이 있다. 경로가 매우 험하고 좁아서 인마의 통행이 곤란하므로 마산포를 개항할 때에 부산항과의 운수 편은 오로지 바닷길에 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본관은 이번 행로를 특히 바닷길을 선택하여 그 사항을 시찰했다.
부산항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나아가면 약 8해리(14.816KM) 떨어진 곳에 가덕도가 있다. 그 맞은편에 거제도가 있는데 이곳은 조선해협의 해면으로 반구를 이루고 웅천 진해 양군의 본 육지에서 약 15해리의 내해를 형성하며 작은 섬이 늘어서 있어도 해저가 깊다. 그 섬의 서북 모퉁이에서 정북 쪽으로 다시 바닷물이 만입하는 7해리쯤 떨어진 곳에 항만을 이룬 것이 마산포이다. 마산포 만은 동서로 길어서 약 3해리, 남북으로 좁으며 넓은 곳이라 해도 1해리 반에 지나지 않는다. 만내의 수심은 동북부가 얕고 점점 서남쪽으로 갈수록 깊다. 만 입구 중앙에 작은 섬이 있는데 저도라 한다. 주위가 5.6정이고 그 좌우 육지와의 거리는 6정 남짓으로 어느 곳이나 해수가 깊어 큰 배가 자유롭게 통과한다.
만의 서북쪽에 무학산맥이 솟아 있어 육지의 후면을 포위하고 동북에는 용이 서려있는 것 같은 높은 봉우리가 있다. 동남쪽에 웅천군의 험한 산을 끼고 있으므로 만내는 사계절 풍향과 관계없이 해상이 온화하므로 극히 안전한 정박지이다.
육지는 해면에 접하고 평탄한 땅이 많으며 특히 동북부, 즉 마산시가 부근이 가장 평탄하다. 서남으로 감에 따라 점차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칠원군 경계에 이르러서는 거의 평지가 없다.
마산포의 현 시가지는 만 입구의 서북에 해당하며 평탄한 땅에 있고 해안에 돌제가 있다. 그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화물의 선적, 하선에 편리하다. 호수가 약 800, 인구 5,000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해안은 인가가 즐비하고 작은 땅도 없다. 한국 배의 출입이 항시 빈번하긴 하지만 그 부근 해저가 조금 얕아서 돌제에서 300칸 남짓 떨어진 곳이 겨우 24척 정도 밖에 되지 않아 큰 배의 정박지로는 조금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이상은 마산포 지세의 일반이다. 이에 의하여 거류지의 위치를 보면 현재의 마산포 시가가 있는 곳은 전전과 같이 이미 인가가 즐비해서 작은 땅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해안 돌제와 같은 것도 규모가 작고 통상항의 설비가 되어 있긴 하지만 적합지 않고 부근의 해지는 얕아서 기선의 계류 정박이 편치 않으므로 새롭게 다른 거류지를 잡아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별지 약도에 주선으로 표시한 바와 같이 마산 시가지에서부터 7,8정 남짓 떨어진 서남 해안에서 다시 14, 5정 사이에 약 30만 평의 지구를 택한다면 좋은 거류지를 얻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정박지는 만내의 저도 왼쪽과 그 내면으로, 이곳 만내는 해수가 깊어서 거대한 선박이 정박할 수 있으며 육지는 무학산 아래 척산, 완월, 월영의 여러 마을 전답으로 해안을 향하여 약간 경사면을 이루지만 경사도가 그다지 급하지 않기 때문에 수십만 평의 평지를 얻기에 어렵지 않다. 종래 신개항장을 조성할 때 한국 정부는 재정 곤란으로 인하여 그 설비를 지연시켰으므로 우리 국민의 경영상 큰 불편을 느꼈는데 마산포 같은 곳은 새로 거류지를 골랐다고 하지만 목포 등과 같이 토목공사에 많은 경비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는 그 해안의 간조면이 겨우 간사를 이루고 토석의 재료가 부근에 넉넉하기 때문에 이것을 매립한다면 화물을 쌓아둘 곳, 세간 부지 등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새 거류지로 충당하려고 하는 지구는 그 일대가 전답뿐이며 인가가 없기 때문에 토지 수용에 곤란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음료수는 무학산에서 흘러오는 계류가 두세곳 있고 수질도 좋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면 후일 몇 천 명의 인구를 수용하더라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거류지의 위치를 대략 전술한 변두리에 설치한다면 우리 영사관 부지는 각국 거류지에서 서북단 해안에 가까운 작은 언덕에서부터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 약 1만여평으로 한다면 뒷날 설계에 편리하며, 만약 또 전관거류지 일수 있다면 별지 도면에 보는 바와 같이 되도록 마산포 시가에 접근하여 평지가 많은 지구를 우리 거류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함 면이 평탄하기 때문에 영사관 부지로는 각별한 다른 장소가 없고 우리 상업 경영을 방해하지 않는 한 해안에 가까운 일대의 지구로 한다면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현재 상황에서 영사관으로 차입할 만한 가옥으로 개인 소유의 건물은 하나도 없고 다만 마산포 시가 중 옛 전운사 관아가 있다. 이미 황폐해졌고 비좁기는 하지만 조금만 수선을 하면 영사관용으로 일시 견딜 수 있겠지만 개항을 실시하는 경우에는 한국 정부에서도 위의 가옥은 필요할 것이므로 이것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고 특히 새로 거류지를 선정할 때에은 그 부근에 한 채의 가옥도 없으므로 바라크라도 건설치 않으면 관무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이상은 한 번의 조사로만 그쳤으니 다른 날 전문가의 답사를 거쳐서 충분히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마산포의 현상과 개항에 대한 지방 한국인의 의향
위 출장한 결과를 토대로 마산포 현재의 상황과 기타에 관하여 조사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본관이 출장하기 까지는 마산포의 한국인은 개항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는 단지 인민뿐만 아니라 창원군수 같은 사람도 정부로부터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사정이므로 군수 등은 더욱 자신에게 직접 관련된 이해관계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아서 냉담한 점이 있지만 토지의 중개자 기타 일반 인민은 개항 한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는 모양이었고 오직 개항이 빨리 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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