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전면 양촌리 개양마을 초계 변씨 거연정 居然亭

천부인권 2018. 3. 20. 20:40

 

2018.3.20 진전면 양촌리 개양마을 거연정 입구

 

진전면은 갈 때마다 느끼지만 전통마을의 형식을 잘 갖춘 곳이며 사람의 도리를 버리지 않고 지키려는 정신이 살아 있는 박물관 같은 지역이다. 마을 곳곳에 전통형식의 재실과 사당 및 정려와 포창비를 세웠으며 도심에서는 사라진 노거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우연히 시작한 노거수의 정리가 거의 끝나는 시점이라 창원시에 산재한 비문들을 찾아보면서 함께 재·루·정(齋·樓·亭) 등을 살피고 있다. 한문을 많이 몰라 어려움이 있지만 모르니까 공부하는 것도 점점 재미를 더한다.
거연정(居然亭)은 변상용(卞相瑢)이 자신의 선조를 그리며 지은 정자로 창원시 진전면 개양길 9-24에 위치한다. 개양마을은 양촌리에 속해 있지만 양촌리와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으며 마을규모는 작다. 이 마을의 가장 위쪽 산자락에 위치한 거연정은 적석산을 정면으로 마주 본다. 거연정의 입구에는 분홍빛이 도는 만첩매화나무가 화려한 꽃을 피워 운치를 더한다.

 

담장 넘어로 본 거연정

 

* 거연(居然)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 12수 중에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딴 것으로 물 과 돌이 어울린 자연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琴書四十年(금서사십년)  거문고와 책읽기 사십 년
幾作山中客(기작산중객)  거의 산중의 나그네 되었네
一日茅棟成(일일모동성)  하루에 띠집 지을 수 있으니
居然我泉石(거연아천석)  그렇게 나는 천석 사이에서 사노라

 

[출처] 누정기행(樓亭紀行)_선비문화 탐방/작성자 엽토51

 

외삼문인 대문 정문에서 마주한 거연정

 

居然亭1)言志楔會吟 거연정 언지계에 모여서 읊다 
層雲2)如樹樹如家 나무는 층층 구름과 같고 집은 나무에 파묻혀,
天末3)輕塵不敢加 하늘 끝 티끌 하나도 날아오지 않는 곳.
可憐北馬4)長嘶櫪 가련하다 호마(胡馬)는 북풍에 북쪽 그리워 울고,
誰識南禽5)強借柯 월조는 남쪽 그리워 남쪽 가지에 앉는다는데.
幾度徘徊6)今世界 고향 떠나 이 세상을 헤맨지 몇 번이던고ㅡ.
獨傷復見舊文華7) 다시 옛 고향 문물을 보니 홀로 마음 아파라.
以亭會友知何意 정자에 벗들 모이는 뜻이 무엇임을 알겠나니,
難可居然8)此日過 편안히 이 날을 지나기가 마음에 짐이 된다.

•註
1) 居然亭(거연정) : 창원시 진전면 양촌리(鎭田面 良村里) 개양동네의 뒷산 기슭에 있는 변씨(卞氏)의 정사(亭舍). 당시 거연정에서는 매년 음력 5월 5일의단오절(端午節)에 원근(遠近)의 선비들을 청하여 시회(詩會)를 베풀었는데 술과 음식이 풍족(豊足)하였다.
2) 層雲(청운):적운(積雲). 층층으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3) 天末(천말) : 하늘 끝.
4) 北馬(북마):호마(胡馬). 중국 북부에서 나는 말. 고시(詩)에 '호마는 북풍이 불면 북풍에 의지하고 월조는 남쪽이 그리워 남쪽 가지에 깃든다(胡馬依北風越烏巢南枝).'라 하였다.(역): 마판(마구간에 깐 판자). 마구간.
5) 南禽(남금):월조(越鳥). 중국 남쪽의 새 (註 4)를 참조). 柯(가): 가지.
6) 徘徊(배회):정처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님. 世界(세계): 세상이라는 뜻.
7) 文華(문화):문명이 번영하는 모양. 문장의 화려한 것. 
8) 居然(거연) : 편안한 모양. 당(唐)나라 고적(適)에 '집 안에는 귀뚜라미 어지러이 우는 소리, 마음 편하여도 어쩐지 쓸쓸하구나 (舍下蛋亂鳴 居然自蕭索).’라는 시구가 있다.

● 해설 
8·15광복 전에는 독립운동으로 동지들과의 연락으로 또는 사업으로, 광복 후에는 계속되는 타향살이에 또한 정치와 사회단체의 일로 고향에 들르는 일이 어려웠다. 간혹 들른다 해도 나그네가 여관을 스쳐가는 것과 같았으니 옛 친구들과 정담(情談)을 나눌 겨를이 있었으랴! 어찌 어찌하여 거연정(居然亭)의 시회(詩會)에 자리를 같이 하니 만감(感)이 교차하는 것이다.
말(馬)도 새(鳥)도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새삼스럽게 다시 대해보는 고향의 문물(物)과 정(情)에 홀로 제외되어 온 것처럼 생각되어 마음이 상한다. 거연정(居然亭) 시회(詩會)에 모이는 뜻은? 친구들과의 정의(情), 고향을 지키는 긍지 (수)! 마음에 와닿는 무엇이 있다. 편안하게 그저 이날을 보낼 수 없는 깊은 감회(感)가 우러나는 것이다.
고향에 와서 느껴보는 고향의 향수(鄕愁)가 짙다.

[출처] 憂愁와 憤怒-번역 변지섭-발행 정소순/도서출판 경남

 

측면에서 거연전 전경을 담았다.

 

寓意1) 생각하는 바를 담아서 
危機一髮2)國存亡 나라가 있느냐 망하느냐 위기일발일 때,
義士全身鐵欲剛3) 의사의 전신은 무쇠처럼 굳세었다.
此際敵丸容有地 이때 적의 탄환이 들어박힐 여지 있으랴!
彼天何意遠蒼蒼4) 저 하늘은 무슨 뜻으로 저토록 아득히 푸르른가.

•註
1) 시의 제목은 역자(譯者)가 붙인 것.
2) 危機一髮(위기일발) : 조금도 여유가 없이 위급한 처지에 다다른 것.
3) 鐵欲剛(철욕강) : 무쇠처럼 굳세다.
4) 蒼蒼(창창): 하늘이 푸르게 개인 모양.

● 해설 
나라의 존망(存亡)이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놓였을 때 우리의 독립투사(鬪士)들은 태산(泰山)도 무너뜨릴 굳센 의지(意志)와 반석(盤石)도 깨뜨릴 높은 기상(氣像)과 용기로 일어섰다. 어찌 일제(日帝)의 총탄이 들어박힐 여지가 있으랴!
의사(義士)들의 그 거룩한 마음을 아는지 보라! 하늘도 저토록 아득히 맑고 푸르지 않느냐!

[출처] 憂愁와 憤怒-번역 변지섭-발행 정소순/도서출판 

 

거연정의 동백나무에 꽃이 피었다.

 

동백나무는 조매화(鳥媒花)다. 그 새는 동박새라 부른다. 동박새는 꽃의 꿀을 찾다가 머리와 부리에 묻은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 수정을 하게 된다. 동백나무와 동박새에 대한 전설이 전하는데 "옛날 어느 왕국에서 자식이 없는 왕이 동생의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 줘야 했지만 권력을 주기 싫은 왕은 동생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고 동생은 아들을 죽이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화가난 왕은 조카들도 죽여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벼락이 왕의 머리에 떨어져 왕도 즉사했다. 동생이 죽은 자리에 한그루의 나무가 자랐는데 그 나무에 꽃이 피자 하늘에서 동박새 두마리가 내려와 나무 가지 위에 앉자 살았다한다." 그 나무가 동백나무이다.

 

거연정의 정면
거연정 편액

거연정기(居然亭記)

 

자식(子息)된 사람이 효를 하는 것은 그 일이 다단(多端)한데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고 사업을 잘 전술(傳述)하는 것이 크다. 덕선(德善)과 청취(淸趣)로 어버이가 일찍 하고 자 하는바에 마음을 쓰는 것은 자식이 그 선세(先世)에 욕됨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부모에 있어서 어질게 되고 효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진양(晉陽)의 양전(良田)은 산수가 넉넉하고 풍토(風土)가 아름답다. 변공 기연(卞公 箕淵) 자 응서(應瑞)가 그 속에 은거(隱居)하면서 선(善)을 행하였다. 공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였는데 열심히 농사를 지어 가정을 이루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봉양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여 편모(偏母)를 모심에 그 정성을 다하였으며 선대를 받듦에도 정성을 다하였으며 사람을 구제(救濟)하는 것을 좋아하여 의리로서 당연히 하여야 할 일에는 어렵게 반평생에 이룬 재산을 즉석(卽席)에서 천금(千金)을 내 놓는 것을 아끼지 않아 고을 사람들이 다 한결같이 그 어짊을 칭송(稱頌)하였다. 공은 일찍 한 구역(區域)의 경치(景致) 좋은 선영(先塋) 아래에 터를 잡아 놓고 매년 성묘하고 나면 그 사이를 거닐면서 즐거이 세속의 더러움을 잊었다. 견씨(甄氏)의 사정(思亭)과 주자(朱子)의 한천(寒泉)과 같은 정자를 지을 것을 생각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그 아들 상용(相瑢)이 선대의 법을 지켜 잘못하지 아니하며 잊지 아니하였다. 또 선공(先公)의 청취(淸趣)의 자취가 없어져 가는 것을 차마 견디지 못하여 경치(景致) 좋은 곳에 좌우(左右)가 넓은 정자를 지으니 산수가 채색(采色)을 더하고 마룻대 위에 얹은 기와와 서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데 거연정(居然亭)이라고 현판(懸板)한 것은 주자의 시에서 취한 것이다. 상용군(相瑢君)이 천리를 달려와서 나를 보고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일찍 나의 선인과 지헌(持憲) 일가 어른과 함께 정성(精誠)을 다한 것이 진실로 오래 되었는데 선조의 사당을 지을 때에는 천리를 멀다 않고 몸소 와서 찬양(贊襄)하셨는데 지금 선인의 정자를 짓는데 어찌 한 말씀으로 기문을 지어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일어서서 말하기를 「아버지가 착하고 아들 또한 착하며 아버지가 성품(性稟)이 깨끗하고 아들 또한 성푼이 깨끗하니 이는 선인의 뜻을 장 이어 일을 잘 전술()하는 뜻 있는 선비의 아름다움이니 어질도다 아버지여! 효자로다 아들이여! 내가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일을 이 사람에게 보게 되었으니 이 또한 대행(多幸)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남의 부자(父子)된 사람들은 다 이를 본받으면 어찌 인륜(人倫)이 없어지고 사람이 사람답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더니 상용군(相瑢君)이 안색(顔色)을 변하며 감(敢)히 당치 않는다고 사절(謝絶)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또 말하기를 「군의 겸손(謙遜)도 또 착하다. 군의 집에 아들 여덟 사람이 훌륭한 사람의 뒤를 이었으니 때를 만나면 창대(昌大)하여질 것이다. 요(堯)임금과 같은 성인도 아들이 많으면 오히려 근심이 많다고 하였는데 지금 여덟 아들 된 사람들이 부조(父祖)의 선을 이어 전술(傳述)하면은 그 몸과 마음이 청백(淸白)하여져서 좋은 천석(泉石)을 대하여도 부끄럽지 않아 거연정(居然亭) 가운데에 아름다운 자손이 어진 아버지의 두터운 마음이 풀어질 뿐만 아니라고 장차 변씨가문(卞氏家門)의 으뜸가는 문중이 되어서 세상에 무궁(無窮)하게 뻗어 나아갈 것이다.」하니 상용군(相瑢君)이 기뻐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이 또한 훌륭합니다. 돌아가서 편액(扁額)을 사치(奢侈)하게 꾸미겠습니다.」하였으니 부자가 서로 느낌이 있을 것이다.

丙子(1936)年 가을에 首陽 오운영(吳雲泳)이 서운산(瑞雲山)의 망화재(望華齋)에서 쓰다.

 

居然亭記

人子爲孝其事多端而繼述爲大德善之與淸趣皆親之所嘗致力而成之其人父子之爲賢爲孝孰大焉晉陽之良田饒山水風土之景卞公箕淵字應瑞隱居行善於其中盖公早孤貧力穡成家痛不逮嚴君養偏慈無所不用其誠誠於爲先樂於濟人義所當爲則以其艱難半生所成之財不惜立地用下千金鄕人咸一口誦其賢公嘗卜一區淸泉白石於先壟下每省楸餘徜徉其間樂而忘歲之塵穢也準擬置一亭如甄氏之思亭晦翁之寒泉而不及就而卽世克家子相瑢遵先法而不愆不忘又不忍先公之淸趣無跡有亭翼然臨于泉石爲之增色棟甍相與稱美而扁以居然盖取諸晦翁詩也因千里而見余曰子嘗於吾先人與持憲族公盡誠誠久先祠之役不惜千里躬榮而贊之今此先人之亭又惡可不一言以記之余興曰尊公之善而子又善尊公之淸而子又淸是以繼述志士之懿美賢者父也孝哉子也吾猶及見斯人斯事於斯世不其亦幸歟世之爲人父子者咸斯之法焉則安有倫亡而人不人相瑢甫忧然謝不敢自當若無所容其身余又曰子之謙又善矣子之家有八龍善人之後宜其有時昌大堯之聖猶懼有多男子今不爲八龍者若又克繼述父祖之善而淸白其身心不愧對好泉石而爲居然亭中佳子孫不但賢父之釋露心將卞門甲於世而無窮相瑢甫喜曰子之焉亦善矣歸而侈之楣父子相感戒

時柔兆困敦之蕭晨首陽吳雲泳書于瑞雲山之望華齋

[출처] 마산문화지(2004)-마산문화원

 

 

거연정기(居然亭記)2
진양의 한 시골에 변처사(卞處士)가 계셨는데 은거(隱居)하면서 의(義)을 행한지 79년에 종족(宗族)이 그 효성(孝誠)에 감복(感服)하고 향당(鄕黨)에서 그 덕을 칭송(稱頌)하였다. 처사가 돌아가자 아들 태견군(泰見君)이 흙을 높이 쌓아 무덤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묘역(墓域)을 표시하고 또 제유(祭儒)를 정결(精潔)히 장만하여 경건(敬虔)하게 제사(祭祀)를 받들며 가문을 이어 칭송(稱頌)이 있었다. 처사가 넉넉한 마음으로 한가(閑暇)로이 반환(盤桓)하던 곳에 자못 경치의 아름다움을 아끼어 정자(亭子) 한 채를 지으려다 끝내 이루지 못하고 드디어 몇 간(間)을 얽어매고 돌아가시자 그 아들들이 집을 완공하고 거연정(居然亭)이라 현판하였으니 그 뜻은 주자의 시어(詩語)를 취(取)하였으며 천리를 달려와서 나에게 기문을 요구하였다. 내가 보건대 남의 자손된 세상 사람들이 널리 전원(田園)을 두고 높이 담을 쌓아 집을 짓고 또 물 맑고 산 높은 곳을 택하여 별도(別途)로 정대(亭臺)를 농고 스스로 효도를 지극히 다하였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자손들이 호화(豪華)에 익숙(益熟)하고 뜻이 방자(放恣)하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옥(田屋)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고 정대(亭臺)에는 잡초(雜草)만 무성(茂盛)하게 되는 것이 열 사람 중에 팔·구명은 될 것이다. 그러니 후손들에게 넉넉함을 물러준 계책(計策)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듣건데 처사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집이 가난하여 힘써 농사를 지으며 편모를 봉양하면서 남루(藍褸)한 옷을 입고 험(險)한 음식(飮食)을 먹으며 궁한 사람들에게는 변통(變通)하여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구휼(救恤)하여 그 후손들로 하여금 보고 듣게 하며 성실하게 법도(法度)를 행하여 비록 윤리와 도덕이 없을 때를 만나도 홀로 고가(古家)의 풍도(風度)를 보존하게 하였다. 아아! 처사는 참으로 덕을 쌓아 후손들에게 넉넉함을 물러 주는 도를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청천(淸泉)과 백석(白石)이 어느 곳인들 있지 않으리요마는 현자(賢者)의 아름다운 발자취는 숭상(崇尙)할만 하구나 이에 그 덕을 칭송하여 거연정의 기문(記問)으로 삼는다.
戊寅年 四月 20일에 안동 김영한(金寗漢)은 벽오산(碧梧山)의 와운소(臥雲巢)에서 쓰다.


居然亭記2
晋之鄙有卞處士焉隱居行義七十九年宗族服其孝鄕黨薫其德及其歿也哲嗣泰見甫旣固封樹且潔烝嘗有克家稱矣處士於薖軸之地頗愛泉石之佳嘗欲置一亭而竟未就也故遂締構幾間以卒其志取朱夫子詩語扁之曰居然千里而徵余文余觀世之人未嘗不爲其子孫廣置田園高起垣屋又点泓崢別築亭臺自以爲至矣盡矣然若子若孫習於豪華放意肆志一瞚之頃田屋屬之別人亭臺鞠爲茂草如是者十居八九矣然則裕後之計果安在哉盖聞處士蚤孤而貧耕稼養母縮衣貶食通窮而恤匱能使其子孫習熟規矱雖逢閉寒之會獨保古家之風鳴呼處士眞智裕後之道者也淸泉白石何處士有賢者芳躅是可尙焉乃頌其德以爲居然亭記黃虎乾之再吉
安東金寗漢書于碧梧山之臥雲巢中

[출처] 마산문화지(2004)-마산문화원

 

 

居然亭銘
亭在晋陽之良田卞君相瑢爲其先大人處士公作也 處士公諱箕淵嘗卜一區泉石於先隴之下擬置一亭 不幸未就而卽世君克承其志竭心力以成之扁曰居然 居然盖取晦前詩中語也 君旣沒之二年其孤仁燮曳衰來請以銘銘曰 有亭有亭良田一方維此良田卞氏之庄 君大人公行著家鄕爰卜一區齎志未遑孝哉 惟君一意承先肯構爲亭扁以居然 此亭何有我石我泉白石齒齒淸泉涓涓 詩云桑梓必恭敬止矧伊先人菟裘之地謦欬如聞 杖屨如侍來孝不匱益追以誠嗣葺用光永觀厥成
晉山河謙鎭

 

거연정명 居然亭銘[해문-백촌거사/김창현]

거연정居然亭은 진양晋陽의 양전良田마을에 있으며, 변군卞君 상용相瑢이 그의 선친 처사공處士公을 위해 세운 정자이다. 처사공處士公 휘諱 기연箕淵은 일찍이 천석泉石 한 구역에 터를 잡고 선영 아래 정자 하나를 마련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불행히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로 세상을 떠남에 변군 그대가 그 뜻을 계승하여 마음과 힘을 다해 정자를 이루었고, 편액을 거연居然¹⁾이라 하였다.
변군卞君<卞相瑢>이 세상을 떠난 지 2 년 되던 해 그 아들 중에 첫째 아들 인섭仁燮이 상복을 입고 찾아와서 거연정居然亭에 새길 글<銘>을 부탁하였다. 새길 글의 내용을 말하기를 ‘정자亭子가 있고, 정자는 양전良田마을 한쪽에 있으며, 이 양전良田마을은 초계 변씨의 경작지가 있다.’고 하였다.
변군(卞君)의 선친께서는 고향에서 두드러진 일을 행하였으며, 이에 한 구역에 터를 잡아 공경의 뜻은 있었으나 효성을 행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군은 한 가지 뜻으로 선친이 시작한 일을 계승하여 정자의 편액을 거연이라 하였다.
이 정자는 어찌해서 내 돌과 내 샘이 있고 흰 돌이 줄지어 있고 맑은 샘물이 졸졸 흐르는가.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삼가 공손히 섬긴다.’하였는데, 하물며 조상님 은거하신 곳에서 살아가니 기침소리 들리는 듯하구나.
조상을 모시는 듯 정자에 와서 효성을 다 하고, 더욱 조상을 기리면서 정성으로 지붕을 잇고  오랫동안 공사하여 길이 그 완성을 보게 되었다네.
진산晉山 하겸진河謙鎭²⁾

 

【주석】
거연居然¹⁾ : ‘거연居然’이라는 말은 주자朱子의 시 가운데서 취한 말이다.<정사잡영精舍雜詠12수중 정사精舍에 있는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을 취함>
하겸진河謙鎭²⁾ : 고종 7(1870~1946)년 생으로 본관은 진양晉陽. 자字 숙형叔亨 호號 회봉晦峯 외재畏齋이고 아버지는 하재익河載翼이며, 어머니는 김해허씨金海許氏다. 『주어절요』, 『도문작해』, 『동유학안』 등을 저술 했고 문집으로 회봉집晦峯集이 있다. 진양의 덕곡서당(德谷書堂)에서는 1957년부터 사림들이 매년 석채례(釋采禮)를 행하고 있다.

 

거연정居然亭 화운和韻 시 【국역】 안동 김가 청음 후손 백촌 창현.
知君家世舊氈靑 그대 집안 내려온 옛날 유물 아는데.
幾葉南州起此亭 몇 대 내려 남쪽 땅에 이 정자 세웠도다. 
十載經營斯翬革 십년을 계획하여  번듯하게  이루었고,
當時遊釣某邱汀 그 당시 아무 언덕 물가에서 낚시 했네. 

群龍滿室眞荀傑 많은 학자  방안 가득  순자 같은 인걸이고,
旅雁來賓盡楚醒 나그네 손님 모두 굴원처럼 깬 분이네. 
異日尋芳如屨及 다른 날 명소 찾아 발길 닿게 해 보리니
更將勝槪賀居停 다시금 좋은 경치  머물러서 축하하리.

‣ 측기식 7언 율시 九靑 平聲운인 <靑亭汀醒停>
입암(立巖) 박헌수(朴憲脩 1872 고종9 임신) - 1959(기해) 
자  永叔(영숙) 호 立庵(입암) 본관 밀양(密陽) 거주지  산청 단성 (山淸 丹城)
문집 입암문집(立庵文集)<남명학고문헌 시스템>

 

嘉祥十世一氊靑 상서로운  세월 걸친 가보 하나 푸른데
早卜金岡晩起亭 금빛 언덕 일찍 잡아  늦게 정자 세웠네.
洞闢藤蘿雲萬堞 깊은 골짝 등 넝쿨에 구름은 성첩 같고
軒通溪澗月千汀 난간 통한  시냇가엔  많은 달이  비추네.

詩書滿架經秦劫 시렁 가득 시와 글씨 진 나라 화 겪었고,
蘭菊成叢想楚醒 떨기 이룬 난초 국화 굴원(屈原)대부 연상되네.
如或亭人勤肯構 행여나 후손들이 부지런히 지었다면
夢魂來去暫無停 꿈속 혼이 오고가며 오랫동안 머무르리.

소정小庭 김준영(金駿永 1890 고종27경인) -1953 (건국6 계사) 
본관 서흥瑞興  호 소정小庭

 

次居然亭原韻 차거연정원운 【국역】 안동 김가 청음 후손 백촌 창현.
特地金岡入眼靑 금빛 언덕 특별한 땅 눈에 들어 푸르니
箇中端合置名亭 그 가운데 이름 난 정자 세움 마땅하네.
吟餘爽氣秋生壑 골짝서 가을 일자 상쾌한 기운 읊고,
坐久閒情鷺下汀 백로 내린 물가에서 오래 앉아 한가롭네.   

肯構元來知孝思 가업 계승 원래는 효심임을 알았고,
儲書要是爲心醒 책 쌓음은 요컨대 정신을 깨움이라.
若敎世世能繩述 만약에 세대마다 이어 받을 수 있다면
卞氏休風永不停 변씨 가문  좋은 풍속 오래도록 안 멈추리.

권재규權載奎 1870년(고종7 경오)~1952년(임진)
자 : 君五(군오)    호 : 이당而堂   
본관 : 안동安東 거주지 : 산청 단성山淸 丹城
문집: 이당선생문집而堂先生文集

 

金岡山水孝心靑 효심 깊은 금빛 언덕 산과 물 푸른 땅에
構得尊公未就亭  부친께서 완성 못한 정자를 지었구나. 
林壑增光雲裡壁 빛 더한 숲 골짜기 구름 속의 담이고,
鳥魚呈態鏡中汀 새•물고기 즐겨 노는 거울 속 물가이네. 

旣成一日堂輪奐 하루만에 지어진  정자는 장대 했고,
又護當年石醉醒 정자 보호 그 해에 돌 취하고 깨었다네.
想是九原先處士 아마도 이것은 황천 가신 선친이라
朝朝來格此中停 아침마다 오셔서 이 가운데 머무시네. 

이천夷川 남 창희南昌熙 1870(고종7 경오) ~ 1945 (을유) 
본관 의령宜寧 자  명중明重,명부明夫  호  이천夷川 문집 이천집夷川集

宜陽書院 1861년(철종 12)창건 남효온南孝溫, 1454~1492) 남진南振 남용익南龍翼(1628~1692) 남창희南昌를 모심

 

 

거연정居然亭의 화운시和韻詩 【국역】 안동 김가 청음 후손 백촌 창현.
芸楣花墨換丹靑 예쁜 처마 꽃 글씨에 단청도 바꾸어서
泉石居然起此亭 자연<泉石> 속에 편히 살려 이 정자를 세웠네.
坐愛琴書憑古案 방석 기대 거문고·책 앉아서 즐기고
步隨?鷺向空汀 걸음 따라 물새들은 빈 물가로 향하네. 
先祠密邇追誠感 선조 사당 가까워 정성 쫓아 감응했고,
勝地淸閒喚夢醒 뛰어난 곳 맑은 여유 꿈을 불러 깨우네.
爲賀賢孫思肯構 어진 자손 위하여  정자 세움 생각하니
東南車轍幾多停 동남쪽 수레들이 얼마나 머무를까

 

진성眞城 이충호李忠鎬(1872년∼1951년)는 고종 9 태어났고, 자 서경恕卿, 호 하정霞汀 본관 진성眞城으로 경상북도 예안禮安 출신이다. 이황李滉의 종손宗孫이며, 장릉 참봉章陵參奉, 청산도첨사靑山島僉使 ,경상도후영장慶尙道後營將, 구례 현감求禮縣監을 지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13대종손宗孫이며, 부친은 이중경李中慶이다.
주자학과 퇴계 학에 전념해 <주서절요(朱書節要)>, <고계문집(古溪文集)>, <계몽전의(啓蒙傳疑)>, <도산문현록(陶山門賢錄)>,<교남빈흥록(嶠南賓興錄)> 등의 문집이 있다.

 

百年長物舊氊靑 백 년 세월 남은 물건 옛날의 유물인데,
有赫其家肯構亭 빛나는 그 집에서 정자를 지었구나. 
仲統園林環一壑 중장통의 숲 동산 한 골짝에 둘러있고,
平泉花石滿前汀 평천장 화석들이 앞 물가에 가득 찼네. 
福田圓餉應多報 공양 보시 베풀어 마땅히 많이 갚고
塵世深藏是獨醒 속된 세상 깊이 감춘 이곳에서 홀로 깨네.
春日巴陵方渙水 봄날에 하동에서 바야흐로 물 갈라도
洄遊魂夢不須停 물길 타고 꿈속에서 머무르지 않는다네. 

이대원李大源의 본관은 여주驪州이고 이대원 처는 평산 신씨李大源 妻 平山申氏이다.
변인섭의 配 驪州 李氏는 98세까지 장수 하셨다고 함.

 

 

 

 

居然亭原韻
屹立金崗古色靑  금강에 높이 선 정자 고색이 창연하니
經營十載築斯亭  경영한지 10년 만에 이 정자 세웠노라.
軒窓靜對玄猿窟  마루와 창이 고요히 마주하고 검은 원숭이 굴속에 있으니
徑路廻通白鷺汀  지름길은 돌아 통하고 흰 백로 물가에 있구나.
四壁圖書心界淨  네 벽면에 쌓인 도서 심기가 조촐하며
一區泉石耳根醒  한 구역의 천석은 귀뿌리까지 깨우치네.
微誠敢曰追先志  작은 정성으로 감히 말하니 유훈을 따름이라
汎掃朝朝不暫停  매일 아침 넓게 쓸어 잠시도 쉬지 않으리.
不肖子 相瑢     불초자 상용

 

거연정원운居然亭原韻 [해문-백촌거사/김창현]
屹立金崗古色靑 금빛 언덕(金崗) 우뚝 솟아 우아하게 푸른 곳에
經營十載築斯亭 경영한 지 십년 되어 거연정(居然亭) 세웠구나.
軒窓靜對玄猿窟 창문을 마주하니 원숭이 굴¹⁾ 보이고
徑路廻通白鷺汀 오솔길 돌아드니 물가엔 백로가 나네.

 

四壁圖書心界淨 네 벽에 쌓인 책들 마음이 깨끗하고
一區泉石耳根醒 한 구역 샘과 돌²⁾은 귀뿌리를 깨우치네.
微誠敢曰追先志 작은 정성 선조의 뜻 과감히 따르고
汎掃朝朝不暫停 아침마다 물청소 잠시도 안 멈추네.
不肖子 相瑢     불초자 상용

 【주석】
원숭이 굴¹⁾ : 현원굴(玄猿窟)은 원숭이 굴로 표현하였으나 우리나라에는 야생 원숭이가 살지 않으니, ‘은자의 처소’를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샘과 돌²⁾ : 천석(泉石)은 샘과 돌로 자연을 말하며, ‘거연정 현판 이야기’에서 설명한 주자(朱子)의 시구 ‘居然我泉石(거연아천석)’을 떠올리게 한다.

 

 

居然亭上樑文
在澗在阿以永薖?之自矢 肯堂肯構克致繼述 之斯誠 居然我主人允矣 其君子竊惟八溪卞氏 文行右族忠義古家體髮衣冠 乃賢祖之家法樵採耕稼 矧良田之生涯多子孫兮 繞膝芝蘭養性情焉 滿目流峙敦宗族有模範 張公之忍字可與儔今敬墳墓 如事生甄君之思 亭岡專美 古積年經營於心上 不日突兀於眼前 是誠 豺獺之知 豈偶山水之愛松楸孔邇 如見 陟降之靈雨露 旣濡自有怵惕之感 宿齊豫 戒于是藏修歌哭於斯觴咏之娛 只足爲風致一 也 輪奐之美惡可謂能事畢焉 宐後嗣聿修其身俾家聲不墜於地試看 近日之尙侈孰 若斯亭之致精玆陳短謠以颺 好事
兒郞偉抛梁東 金岡沓翠葱瓏 望其睾如咫尺 神理幽明感通
兒郞偉抛梁西 上芳山下淸溪 溪上誰有召我 春來花發鳥啼
兒郞偉抛梁南 問道松此心涵 是亭也淸且豁 讀書室兼墳庵
兒郞偉抛樑北 勝狀巴陵水色 彼無源奚以哉 請看晝夜不息
兒郞偉抛梁上 前輩餘韻可仰 風景不殊古今 何處彷彿遺像
兒郞偉抛梁下 靑編黃卷暎架 這不換滿籯金 吁此世知者寡
伏願上梁之後 絃誦不絶禮讓 克敦矜式斯存 明綱常扶植之 道學業相勸講 人已修治之方 如復鄒魯之鄕 可矯叔季之俗 所望者此奚求乎 
他歲 旃蒙 大淵獻 剝之 下澣
德殷 宋曾憲撰

 

거연정상량문 [해문]안동 김가 청음 후손 백촌 창현
물가와 언덕에 길이 은거하리라 스스로 맹세한 뒤 선조의 업적을 계승하고 이어받은 정성을 다하였으니 평안한 우리 주인 되시는 분은 진실로 훌륭한 군자이시다. 삼가 생각건대 팔계변씨(八溪卞氏)는 시서예악(詩書禮樂)을 실천한 명문거족의 집안이요, 충성과 절의를 지킨 오래된 집안일세.신체발부[身體髮膚]와 옷과 관은 바로 어진 조상의 가법이고, 나무하고 농사짓는 것은 하물며 양전(良田)마을의 생애임에랴 자손의 번성했음이여 지초, 난초 같은 인물이 둘러있고, 성정을 길렀음이여 산과 물이 눈에 가득하도다. 종족을 도타이 함에 모범이 있으니 장공(장공예(張公藝))의 인忍자 백인설百忍說를 짝할 만하고 지금은 산소를 공경하기를 살았을 때와 같이하니 옛날의 진군(甄君)<진사도(甄師道)>의 사정(思亭)같은 정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로다.

여러 해 마음으로 경영하여, 하루가 되지 않아 눈앞에 우뚝 세웠으니 이는 참으로 시달(豺獺)도 아는 바이니, 어찌 우연히 산수를 좋아하는 것이겠는가. 선영이 매우 가까우니, 마치 오르내리는 신령을 보는 듯하고 비와 이슬에 젖으니, 절로 슬픈 감상이 생겨난다네. 재계하고 미리 경계하여, 이에 학문에 전념하고, 여기에서 노래하며 술 마시고 시 읊는 즐거움이여, 단지 풍치가 매한가지가 되고 성대한 아름다움이여, 어찌 능히 일을 끝마쳤다고 하리요. 마땅히 후손들이 그 몸을 닦아서, 가문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한번 근일의 사치를 숭상하는 것을 보라, 어느 게 이 정자의 정교함만 같은가. 이제 짧은 노래를 진술하여, 좋은 일을 드날리노라.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저 동쪽에 금빛 언덕 겹겹이 푸르고 무성하네.
그 못을 바라보니 손닿을 듯 가깝고 신령은 이승 저승 오가며 통하도다.
어영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져라 정자 위 꽃다운 산 정자 아래 맑은 시내네.
냇가 위 누가 있어 나불러 오게 했나. 봄이 와 꽃이 피고 새가 우네.
어영차 들보를 남쪽으로 던져라 소나무 길을 물어 여기에 마음 담네.
이 정자만 깨끗하고 한층 더 뚫려 있어 책 읽는 방도 있고 묘 지키는 재실 있네.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저 북쪽에 파릉 지역 물빛은 아름다운 풍경이라.
저 근원이 없는 물 어디서 이뤄질까 청컨대 밤낮으로 쉬지 않음 보리라.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저 위쪽에 선배들의 남은 운치 우러를 만하네.
풍경은 예와 이제 다르지 않으니 어느 곳의 남긴 형상 비슷할까.
어영차 들보를 아래쪽에 던져라 푸른 책과 누런 서적 시렁에 비치네.
이것은 상자 가득 금과도 안 바꾸니 이 세상에 아는 이가 적음을 탄식하네.
엎드려 바라오니 들보를 올린 후에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예의와 겸양이 돈독하고 법도를 보전하며, 강상(綱常)을 부지하는 도를 밝히고 학업을 서로 권장하여 남과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을 강론하여 추로(鄒魯)의 고을로 회복하고 말세의 풍속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바라는 바가 이것이니 다른 무엇을 구하겠는가.
을해년(1935년) 구월 하순
덕은 송증헌 지음

[주석]
송증헌(宋曾憲) : 1878~1947, 호 後菴, 송시열 후손, 문집 후암집.
甄君之思亭(진군지사정) : 진사도(陳師道)의 思亭記(사정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甄君에게 어버이가 생각나는 정자 이름을 짓도록 하여 자손들의 효심을 일으키게 했다는 내용.
豺獺(시달) : 승냥이와 수달, 하찮은 짐승.
兒郞偉(아랑위) : 들보를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들 때 나는 “어기여차”, “어영차”라는 의성어로 보는 견해와 젊은 사람을 뜻하는 아랑(兒郞)의 복수형으로, 도목수(都木手)가 장인(匠人)들을 싸잡아 부를 때의 표현으로 보는 견해가 있음. 후렴부에는 아름다운 주변 경관의 묘사와 조상의 은택이 길이 전해지길 기원.
抛樑 : '들보 던지기'는 동서남북상하 여섯 구(句)로 作詩
巴陵(파릉) : 악양의 옛 지명으로 동정호 물이 양자강으로 흘러가는 출구에 위치, 거연정 주변 경치를 비유한 것으로 사료되며 주련과 차운시에도 나옴.
綱常(강상) ; 三綱과 五常, 사람이 지켜야 할 道理.
鄒魯(추로) : 공자는 魯나라 사람이고, 맹자는 추鄒나라 사람이라는 뜻, 공맹(孔孟)을 가리킴.
旃蒙(전몽) : 天干의 乙. 大淵獻(대연헌) : 地支의 亥, 따라서 乙亥年.
剝之(박지) : 음력 9월. 下澣(하한) : 下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