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전면 고사리 거락마을 청송심씨 죽포정 竹圃亭

천부인권 2018. 3. 26. 19:23



2018.3.20. 고사리 거락마을 청송심씨 죽포정


창원시 진전면 의산삼일로 120-63에는 청송심씨 재실인 죽포정(竹圃亭)이 위치해 있다. 이 정자(亭子)는 죽포공(竹圃公) 심예택(沈禮澤)의 학문과 행적을 추모하기 위해 1935년 후손들의 정성으로 심예택이 거처하던 곳에 건립하였다. 이후 상당히 낡았던 것을 2005년 기와를 새롭게 고치는 등 수리를 하였다. 당시에 입구 솟을 문에 ‘경앙문(敬仰門)’이라는 편액을 건 건물을 새롭게 지어 청송심씨 안효공파 좌의정공 거락종중(靑松 沈氏 安孝公派 左議政公 巨洛宗中)의 사무실 겸 정자의 부속실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의 문화재급 서책과 서류들은 도둑맞아 모두 사라져 버려 사료의 기록이 없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출입문인 경앙문



측면에서 본 죽포정





죽포정(竹圃亭) 편액




죽포정기 역문(竹圃亭記 譯文)
여항산(艅航山) 아래 거락동(巨洛洞)의 기슭은 옛 죽포(竹圃)이신 심공(沈公)께서 오랫동안 기거하시던 곳이다. 공이 돌아가신지 몇 해만에 그의 사손(嗣孫)인 영섭군(永燮君)이 차마 황폐(荒廢)하여 가는 것을 방관할 수 없어 정자(亭子)를 짓고 현판(懸板)을 ‘죽포(竹圃)’라 달고 봉호(鳳鎬)에게 부탁(付託)하여 기문(記文)을 청하였다. 내가 사사(辭謝)하였으나 좀처럼 받아드리지 않았다. 영섭군(永燮君)이 유고(遺槁) 한권을 보이는데 향리(鄕里)의 선배(先輩) 어른이 지으신 서문기(序文記)에 이르기를 「그분의 시는 순박(淳朴)한 고풍(古風)이 담담(淡淡)한 방탕형(放宕形)이며, 그분의 절조(節操)는 견정(堅貞)하며, 심지(心志)는 통랑(通朗)하여 곧으면서도 더렵혀지지 않았으며 맑으면서도 속(俗)되지 않으시어 공은 그야말로 대(竹)와 같았다.」하였다. 슬프도다! 이 글로서 충분(充分)히 공의 진상(眞像)을 그려 내셨는데 내가 무엇을 덧붙쳐 할 수 있으리오. 내가 공의 말을 정중히 받아드려 회고해 보건데 지난날 도(道)가 상(喪)하고 문(文)이 폐(弊)하여 짐으로서 세상의 선비들이 한갓 화려(華麗)한 꾸밈만 숭상(崇尙)하였지 순박(淳朴)한 것과 진실(眞實)되고 귀(貴)한 것이 되는 줄 알았으랴. 천하가 분주(奔走)하게 이윤과 명예의 소굴(所窟)로 빠져 들어가는 판에 누가 절조(節操)을 가(可)히 숭상(崇尙)해야 하는 건지 누가 알았으며 썩은 이빨처럼 고집으로 막힌 자가 많았는데, 그 마음 능히 통랑(通朗)할 수 있겠으며 아첨하고 때낀 자(者)들을 모두 옳게 여기는 판국에 누가 능히 청직(淸直)으로 스스로를 가다듬겠느냐? 대개 공의 사람됨이 또한 다른 사람의 사람됨과 다름이 이상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은 낙척(落拓)하고 불우(不遇)하여 몸을 궁산(窮山)의 적막(寂寞)한 기슭에 의탁(依託)하여 대나무와 더불어 벗을 삼았으나 그렇다면 공의 재질(才質)은 가늘고 굵은 대나무와 같고 고운 옥돌과 같았으면서도 우전(虞殿)의 공(貢)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그 시(詩)는 주현(朱弦)과 소월(疏越)의 음(音)에 맞으면서도 주묘(周廟)의 풍악(風樂)이 되지 못하였으니 아는 者들은 公을 위하여 애석(哀惜)하게 여기었다. 그러나 역시 나의 분수(分數)를 지키고 나의 도(道)를 얻어서 행할 따름이었고 잘되고 못되고는 무엇이 만족스럽고 기쁘게 하고 슬퍼 할까보냐 지금 자네가 이미 정자를 지었으니 진실(眞實)로 능히 여러 자손(子孫)들로 하여금 여기서 놀고 쉬면서 여기에서 수양(修養)하여 죽포(竹圃) 조부(祖父)님의 풍모(風貌)와 운치(韻致)를 이어 닦아 계승한다면 후일(後日)에 열매를 쪼으는 영금(靈禽)과 음율(音律)을 고르는 영륜(伶倫)을 반드시 장차 정중(亭中)으로 찾아와서 구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어찌하여 서로 힘쓰고 가다듬지 아니할 소냐? 가령 그 좌우(左右)에 흘러 내려가는 듯한 산줄기의 장려(壯麗)함과 꽃들의 향기로움과 고기와 새들의 날고 헤엄치는 것과 또는 풍연(風烟)과 운물(雲物)의 기이(奇異)함은 마땅히 그 관람(觀覽)하신 분들이 터득할 것이므로 거듭 이야기하지 않겠노라.
현익(玄黓)[壬] 돈장(敦牂)[午]년(年) 양복(陽復)지(之)남지(南至)일(日) 남평(南平) 문봉호(文鳳鎬) 기(記)


竹圃亭記
航山下巨洛之涯 故竹圃沈公樓息之所也 公沒有年其嗣孫永燮君不忍荒廢築亭扁以竹圃託鳳鎬爲記余辭謝不敢則君出示公遺槁一局有鄕先輩所撰序記云其詩淳古淡宕其節操堅貞其心志通朗直而不汚淸而不俗公其猶竹鳴呼此足以畵出公眞像余何贅焉鳳就其語而演之曰奧自道喪文弊世儒徒尙華藻孰之淳古之爲可貴天下奔趨利窟孰知節操之爲可尙齪齷固滯者多矣 有能通朗其心乎 阿諛炎孚者皆是疇淸直自勵乎 盖公之爲人其亦異乎人之爲人而無怪其落拓不遇托身於窮山寂寞之濱而竹君爲友也 然則公之才質是篠蕩琅玗而不入乎虞殿之貢其詩格有朱弦疏越之音而未得爲周廟之樂識者爲公惜之然亦得以守吾分行吾道己耳遇不遇何足爲欣慽哉今君啄實之靈禽造律之伶倫必將來求於亭中矣境相與勖勵哉若其左右流峙之壯麗花奔之芬馥魚鳥之翔泳興夫風烟雲物之奇宜其覽者自得之不復道也
玄黓敦牂 陽復之 南至日 南平 文鳳鎬記